본문 바로가기

에세이

그들도 ‘하느님의 백성’이다

한백교회 2018.04.01자 하늘뜻나누기를 수정보완하여 [공동선] 2018.07+08에 수록됨.

-----------------------------




그들도 하느님의 백성이다

 

 

 

 

 

 

 

 

2014년 박종린 선생을 주인공으로 다룬 자우녕 작가의 다큐영화 옥희에게에서 최고의 장면은, 나의 주관적 생각에는, 432초부터 518초까지 나온 두 번째 씬이다. 박종린 선생이 동네산책하는 장면이다. 내가 보기엔 이 장면은 이 영화의 시작이자 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생이 아침밥을 해 드시고 나서, 동네 산책을 나가는 40여초 정도의 장면이다. 선생은 지팡이를 짚고 대문을 열어3 골목으로 나온다. 몇 걸음을 걷자 선생 뒤편 붉은벽돌담 아래편의 하얀색 시멘트 담장에 광고 한 장이 보인다. 전화번호와 함께 이사짐이라고 적혀 있다. 그 골목을 빠져나오니 이번에 전봇대에 붙은 또 다른 광고현판 두 개가 눈에 띈다. 하나는 빌라’, 다른 하나는 창고/나대지라고 쓰여 있다.

낡은 집들과 공터, 그리고 이런 광고지들, 한눈에 이곳은 디아스포라의 공간임이 드러난다. 인천시 부평구의 한 허름한 동네다. 하급 노동자들이 유난히 많은 곳, 서울과 인천 곳곳에서 신자유주의의 거센 물결에 플랑크톤처럼 떠밀려온 이들, 혹은 외국인 이주노동자들과 무연고 노인들의 공간이다. 한국 근대사의 비극의 가장 깊은 소용돌이 속에 전 생애가 휘말려버린 박종린 선생도 이곳으로 떠밀려왔고 곧 다시 어딘가로 떠밀려 갈 예정이다.

그는 연변의 훈춘에서 5형제 중 넷째로 태어났다. 부친은 항일빨치산 활동을 하다가 일본군에 체포되어 감옥살이를 하다 해방을 맞아 출소했으나 들것에 실려 귀향했다가 석 달 만에 돌아가셨다고 한다. 5형제 중 둘은 한국전쟁 때 전사했고, 중국 공산당 간부였다가 문화혁명 때 숙청되어 고초를 겪다가 정신장애가 생긴 이도 있다고 한다. 선생만이 북한 정권이 세워졌을 때 만경대학원에 입학하여 고등고육을 받았는데, 1959년 갑자기 당으로부터 소환되어 남파의 명을 받았다.

선생은 남파 5일 만에 체포되었다. 몇 달 후 이른바 모란봉간첩단 사건이 발표된다. 야당 국회의원을 포섭하여 체제전복을 꾀한 간첩단이 일망타진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를 남파한 조직의 책임자는 북한과 미국의 이중스파이로 알려졌다. 즉 북한과 미국 정보당국 간에 복잡한 공작과 역공작이 벌어지고 있었는데, 그 사이에 남한 정보부가 끼어든 것으로 보인다. 선생이 체포된 1959년 당시, 부통령 선거를 대대적인 부정선거로 기획하고 있던 이승만 정권이 이것을 간첩단사건으로 기획하였다는 의심이다. 하여 4.19혁명으로 자유당 정권이 몰락하자 관련자 모두가 무혐의로 석방되었다. 하지만 남파간첩이라는 이유로 선생은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그렇게 선생의 가족사에 뒤덮인 민족사적 비극은 선생을 피해가지 않았다.

1993, 선생은 34년 만에 출소했다. 남파 될 때 결혼한 지 14개월 된 아내와 태어난 지 3개월 된 딸이 있었다. 헤어진 이후 아내는 북한에서 의사가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2000년 비전향장기수들이 북한으로 송환되었을 때 41년 동안 꿈에 그리던 남편이 보이지 않자 쓰러졌고 얼마 후 유명을 달리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3개월 박이 딸은 어느덧 북한에서 교수가 되었다. 이 다큐 제목의 옥희가 바로 그이다. 선생이 생전에 꼭 만나고 싶은 마지막 한 사람인 딸에게 이 영상물로라도 대면하고 싶은 간절한 바람이 다큐 출연을 허락한 이유라고 한다.

다큐에서 옥희는 그가 돌아가고픈 낙원을 상징한다. 일제 강점기 시절 항일유격대 가족의 한 사람으로서 보낸 유년시절과, 북한 전역이 초토화된 한국전쟁의 혹독함을 살아내야 했던 청소년과 청년 시절을 거쳐서 선생에게 비로소 찾아온 평온의 시간이 바로 1950년대 후반이었다. 아내가 생겼고 아이가 생겼다. 그가 처음 누리는 낙원의 생활이었다. 그런데 불과 14개월 만에 그는 남북간 이념갈등의 소용돌이 속으로 떠밀렸다. 남조선으로 떠밀려왔고, 체포된 후 여기저기 끌려 다니며 심문을 받았으며, 군사정권 시절의 가혹행위가 난무했던 여러 교도소를 전전했던 감옥살이, 그렇게 34년을 보냈다. 출소한 이후에도 그는 보안감찰 대상으로 이곳저곳 저렴한 주거지를 전전했다. 그렇게 다시 25년이 흘렀다. 60년 가까이 때로는 역사의 강풍에 떠밀리고 때로는 자본의 강풍에 떠밀려 부평까지 흘러들어온 선생에게 3개월 만에 헤어진 딸 옥희는 그가 끝내 돌아가고 픈, 죽어서라도 귀향할 바로 그 갈망의 장소를 뜻한다. 그런데 그가 산책하는 길 도처엔 또 다른 유랑민의 흔적들이 널려있다. 선생뿐 아니라 그곳에 있는 이들 대다수의 현실이고 까만 미래처럼 보이는 표식들 말이다.

선생은 그 길을 지팡이 하나에 의지해서 걷는다. 무심한 듯 걷는다. 꿈꾸듯 걷는다. 옥희를, 낙원을 향한 쿨한 발걸음이다. 희망과 현실의 극단적 괴리, 그 속에서 꿈꾸는 자, 이것이 이 영화의 주제다. 물론 나만의 해석으로는 말이다.

한겨레신문토요판 특집의 하나로 고스트 스토리라는 연재물이 있다. 지난 317일부터 시작해서 1개월 단위로 진행되고 있는 기사인데, 인천의 한 공공의료원에서 2001년부터 2017년까지 무연고사망자로 처리된 195명의 흔적을 찾아 떠나는 이야기다. 그들은 생전에도 그림자 같은 존재였고 죽은 이후에도 기억에서 삭제된 이들이다. 유령이 되어 어딘가로 떠돌고 있을 그들의 희미한 흔적을 찾아 수첩과 볼펜을 든 남자는 가까스로 얻은 정보를 메모한다. 그렇게 해서 그는 195명의 이야기를 나는 여기 있다는 말에서부터 시작한다. 여기서 무연고사망자들 각각은 ‘1인칭의 발화자가 되며, 기자 자신은 ‘3인칭의 익명의 남자가 된다. 타자의 목소리를 주체화하고 주체를 타자화하겠다는 뜻이겠다.

고대로마제국이 라인강과 도나우강을 경계로 하는 길을 만들었다. 그 길 요소요소에는 방벽들로 둘러싸인 요새들이 세워졌다. 그 경계를 로마군은 리메스 게르마니쿠스(limes Germanicus)라고 불렀다. ‘리메스가 라틴어로 경계를 뜻하니, 게르만족속의 통과를 막는 장벽이라는 뜻이겠다. 반면 다른 어떤 이들에겐 리메스는 장벽이 아니다. 장벽이라기보다는 안전한 통행을 가능하게 하는 문이라는 하는 것이 더 적합하다. 순례자나 상인 같은  이들에게 말이다.


유럽의 몇몇 현대정치학자들은 이 고대로마의 리메스를 현대사회를 특징짓는 경계의 한 양상을 설명하는 레토릭으로서 사용하곤 한다. 그것은 안정과 불안, 문명과 야만을 가르는 경계다. 안정과 문명을 상징하는 존재에게는 경계가 해체되어 있지만 불안과 야만을 표상하는 이들에겐 높이 세워진 견고한 장벽처럼 존재하는 경계다. 그런데 고대로마의 리메스가 정치군사적 이유로 끊임없이 팽창과 수축을 거듭했던 것처럼 현대의 리메스도 계속 변동하고 있다. ‘포용의 기재가 강화될수록 경계는 차단보다는 통과의 기능이 중요하게 되는 반면, ‘배제의 기재가 더 강력하게 작동될수록 통과보다는 차단의 기능이 불꽃을 일으키는 것이다.

인천의 한 공공의료원의 무연고 사망자들에 관한 특집기사는 배제가 작동되는 가장 치열한 장벽의 바깥을 스케치하고 있다. 거기에는 기억을 삭제당한 이들이 유령처럼 떠돌고 있다. 하여 사회는 그들의 존재를 기억하지 못한다. 공공의료원은 그런 사회적 기억의 소각장역할을 하고 있다.

기자는 그렇게 기억을 소각당한 이들의 이름을 불러주고 그 존재의 희미한 흔적을 이야기한다. 이는 사회와 분리되어 관계의 끈이 제거된 유령을 다시 초대하여 삶과 죽음이 어우러져 함께 예배를 나누는 사회적 기억의 미사역할을 한다. 그리하여 배타성이 장벽으로 높이 둘러싸인 공공의료원의 리메스는 한 기자의 이야기로 인해 기억의 소각장과 기억의 미사, 두 사회적 기억/망각의 쟁투가 벌어지는 경합의 현장이 되었다.



군주

통치기간

재위나이

모친

모친의 연고지

비고

아하스

기원전743~728

20~36

 

 

 

히스기야

기원전727~699

25~54

아비

 

 

므낫세

기원전698~644

12~67

헵시바

 

 

아몬

기원전643~642

22~23

므술레멧

욧바

갈릴레아의 성읍

요시야

기원전641~610

8~39

여디다

보스갓

세펠라 지방의 성읍들

여호아하스

기원전609

23

하무달

립나




기원전 698년 고대유다국의 군주로 즉위한 므낫세는 무려 55년간 재위에 있던, 이스라엘국과 유다국을 통틀어 최장수한 왕이었다. 그런데 반세기가 넘는 이 기나긴 시간은 중앙의 고위관료들과 연계된 대지주세력의 가렴주구가 만연했던 기간이었다. 하여 유다의 농민과 이주민들에게 므낫세의 나라는 타자들의 장벽(limes alius)이었다. 그런데 이 지주들의 갑질의 정치의 상징이던 군주 므낫세가 죽고, 아마도 적장자가 아닌 늦둥이 아들 아몬이 왕위를 승계한다. 그의 모친이 욧바 출신 므술레멧이라는 열왕기하21,19의 간략한 묘사는 아몬의 성향에 관한 어떠한 상상도 불허한다. ‘욧바(Jotbah)는 갈릴래아 지역의 성읍이니 어쩌면 그의 모친은 몰락한 이스라엘국의 공주 혹은 귀족출신일 가능성이 높다.

아몬은 2년 만에 궁중정변으로 살해당했다. 하지만 암하아레츠가 들고 일어나 아몬의 살해자들을 척살하고 그의 아들이자 셰펠라 출신 왕비의 아들인 요시야를 왕으로 옹립한다. 요시야와 그의 아들 여호아하스는 모친이 모두 세펠라 지방 출신이다. 세펠라는 유다지역의 거의 유일한 농경지대이고, 이들을 군주로 옹립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정치화된 농민운동세력인 암하아레츠의 본거지다.

8세에 왕이 된 요시야가 친농민적 개혁정치를 본격화한 때는 재위 12년이 지난 뒤였다. 그리고 이 개혁정치의 가장 중요한 문서는 법전이었다. 오늘 우리가 갖고 있는 신명기는 이 법전을 수정보완한 것이다. ‘대지주 친화적 정부가 아닌 농민 친화적 정부임을 선언하는 법전이었다.

 

10오늘 당신들은, 각 지파의 지도자들과 장로들과 관리들을 비롯하여, 온 이스라엘 사람, 11곧 당신들의 어린 아이들과 아내들과 당신들의 진 가운데서 함께 사는 외국 사람과 당신들에게 장작을 패 주는 사람과, 나아가서는 물을 길어 오는 사람에 이르기까지, 주 당신들의 하나님 앞에 모두 모였습니다.

 ―〈신명기29,10~11

 


위의 구절은, 문맥상으로는, 광야유랑기에 모세가 이스라엘 족속에게 법을 반포하는 장면에 포함되어 있다. 시나이 산에서 십계를 받은 뒤 가나안 건너의 모압 족속의 땅에 도달했을 때다. 하지만 유랑민에게는 성문법이 존재할 필요가 없다. 법은 국가가 잘 발전했을 때, 통치를 체계화하는 과정에서 등장한다. 하여 이 텍스트를 학자들은 유다국의 법제정 장면을 모세의 이야기와 오버랩시킨 것으로 해석한다. 즉 요시야 왕이 신명기 법을 반포하는 장면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누가 이 법의 백성으로 부름 받고 있는가에 관한 것이다. 법은 고대로마에서 따온 정치적 은유로 말하면 리메스를 만드는 작업이다. 경계 안에 포섭될 백성으로 규정된 자들은 법의 문안으로 들어올 수 있는 것이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서 법학자이자 소설가였던 프란츠 카프카가 쓴 소설 심판에 나오는 저 유명한 법의 문예화에는 시골사람에겐 늘 닫혀 있는 법의 문이 언급되어 있다. 서민에게 법은 닫힌 리메스라는 얘기다. 그럼에도 무수한 민주주의체제의 법 제정자들은 서민에게 열린 법을 만들려 애쓴다. 귀족 중심의 사회를 강조하는 아르케의 정치가 아니라 대중 모두에게 열린 사회를 강조하는 데모스의 정치를 범제화하려는 것이다.

고대 유다국의 개혁군주 요시야도 데모스의 정치를 추구했다. 친농민적 정치를 폈던 요시야가 만든 리메스를 통과하는 법의 문은 누구에게 열려 있을까. 위에서 인용한 신명기텍스트의 전반부(10)에는 각 부족의 지도자들과 장로들과 관리들이 나온다. 그들은 므낫세의 리메스가 통과하도록 허용한 자들이다. 한데 후반부(11)요시야의 리메스’, 즉 요시야 왕으로부터 새롭게 통과를 허용받은 자들의 목록을 보여준다. 먼저 아이들과 아내들을 언급된다. 그리고 이어서 당신들의 진 가운데서 함께 사는 외국인당신들에게 장작을 패 주는 사람, 물을 길어오는 사람등도 법의 백성으로 부름받았다.

여기서 장작을 패 주는 사람, 물을 길어오는 사람은 가내노예를 뜻할 것이다. 그리고 진 안의 외국인이라는 표현은 유다사회로 유입되어 들어온 불결한 외국인을 지칭한다. 로마인들에게 리메스 밖의, 그 관문을 통과할 수 없는 게르만족처럼 진 밖의 외국인들은 무리를 지어 로마인을 위협하는 불결함과 야만을 상징하는 존재들이라면, ‘진 안의 외국인은 불결하고 야만적이지만 무력한 자들이다.

흥미롭게도 외국인이 언급되는 제1성서의 구절 가운데 신명기에는 유독 진 안의 외국인이라는 표현이 더 많이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이다(신명기5,14; 29,11; 31,12; 출애굽기20,10). 요시야 시대는 이스라엘국을 비롯한 많은 나라들이 아시리아 제국에 의해 멸망하여 무수한 유민들이 흩어져 유다 땅으로도 들어와 있던 시대다. 그들이 유다국의 많은 미경작지에 정착해서 노예보다 못한 노예처럼 살고 있던 시대가 바로 므낫세-요시야의 시대였던 것이다.

한데 이러한 노예보다 못한 노예인 이방인들을 므낫세는 무뢰배로 간주했다면, 요시야는 법의 백성으로 호명한다. 노예도, 아이도, 여자도 법의 백성인 것처럼, 이들 외국인들도 불온한 자들이 아니라 법의 백성인 것이다. 이 놀라운 고대법은 가장 폭넓게 관용의 정치로 구축된 리메스를 시사하고 있다. ‘신명기 법전이 성서의 모든 법전들의 꽃이라고 할 수 있으니, 이 법은 바로 성서의 법정신의 진수인 것이다.

얼마 전 국회에서 정족수 미달로 부결된 문재인 정부의 개헌안은 ‘88년체제인식의 한계를 넘어서는 여러 가지 의미 있는 요소들을 포함하고 있다. 그중 내가 가장 주목하는 것은 기본권의 주체에 관한 조항이다. 극우성향의 한 의원이 엉뚱하게도 종북시비를 걸어 논점이 흐려지기도 했지만 이 개정안의 골자는, 잘 알려져 있듯이, 기본권의 주체를 국민에서 사람으로 바꾼다는 것이다. 2012년 대선에서부터 일관되게 사람이 먼저라고 수없이 외쳤던 문재인식 어젠더가 헌법 기본권 조항으로 구체화된 것이다.

개정안 해설을 했던 조국 민정수석이 말했던 것처럼 한국으로 유입되어 들어온 외국인 이주결혼자와 이주노동자들도 기본권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것은, 이주외국인 200만 명 시대에 직면해서 더 이상 미뤄둘 수 없는 과제가 되었다. 기사 고스트 스토리에서 보았던 것처럼 우리사회에서 유령처럼 존재하는 이들의 이름을 불러주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는 것 또한 더 이상 간과해선 안 되는 문제다. 글 서두에서 언급한 박종린 선생처럼 역사의 희생자가 된 이나, 신자유주의의 희생자가 된 이, 국가폭력의 희생자가 된 이, 혹은 사사로운 불운이 겹쳐 운명의 희생자가 된 이, 그들 누구도 사람으로서의 기본권이 의당 보장받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개정안은 이런 문제의식을 담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 헌법 개정안은, 설사 국민의 일원이 아니어도, 대한민국의 리메스 안으로 들어온 모든 이질적인 이들’, 퀴어적 존재들(queer being)에게 열린사회를 지향하는 함의를 담고 있다.

하지만 이 개정안이 부결된 시점에서, 우리는 다시 새로운 헌법개정안을 만들어내야 한다. 이때 우리가 참조할 것은 문재인 정부보다 더 포용적인 리메스를 주장하는 신명기 법전의 정신이다. 유다백성 안에 들어온 외국인과 노예들까지 하느님의 백성이라고 선언하는 그 정신, 우리 안에 모든 퀴어적 존재들을 아무런 차별이 없는 일원으로 수용하는 바로 그 정신 말이다.   (올빼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