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에세이

리메스를 확장하라 - 5.18사건에 대한 망언을 둘러싼 규제논쟁에 대하여

[공동선] 2019년 05+06월호에 실린 글

 

201517일 오전 1130, 두 명의 남자가 회사에 난입해서 총기를 난사했다. 이들의 총탄에 사옥 안에서 열 명, 건물 밖에서 경찰관 2명이 사망했고, 10명이 부상당했다. 범인들은 이틀 후 경찰특공대와 교전 끝에 사살되었다. 세계를 경악케 했던 풍자전문 시사주간지 샤를리 에브도(Charlie Hebdo) 테러 사건이다.

프랑스 풍자전문 시사주간지 《샤를리 에브도》가 2012년 9월에 실었던 만화. 이슬람 예언자 무함마드가 알몸으로 누워 “내 엉덩이 맘에 들어?”라고 말하는 장면이 논란을 일으켰다.

2012년 이 잡지에 실린 한 컷의 풍자만화가 직접적 원인이었다. 이슬람의 절대 예언자 무함마드가 나체로 엎드려서 백인인 듯 보이는 카메라맨을 향해 내 엉덩이 맘에 들어?”라고 말하는 장면. 당연히 이것은 전 세계 무슬림들에게 커다란 충격과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수많은 항의와 시위가 잇달았다. 그리고 표현의 자유, 그것이 어디까지 가능한지를 둘러싼 논쟁이 촉발되었다. 그런데 자신의 종교심에 대한 열정에 불타고 있던 일단의 과격한 열광주의자들은 이런 시위나 논쟁으로는 성이 차지 않았다. 응징을 다짐했고 실행에 옮겼다.

프랑스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온오프라인 공간을 아우르며 내가 샤를리다(Je suis Charlie) 캠페인이 벌어졌다. 이 캠페인은 테러에 대한 세계 시민사회의 규탄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하지만 이 캠페인에 묻혀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진지하면서도 간단치 않은 토론이 세계 곳곳에서 벌어졌다. 주제는 표현의 자유인가 혐오주의인가의 문제였다. ‘표현의 자유는 직접적으로 19685, 이른바 ‘68혁명의 반권위주의 투쟁의 사회적 산물이었다. 어떤 권위도 비판할 수 있고 야유할 수 있는 것, 그것이 바로 그때 권위주의에 도전했던 시민들이 얻어낸 표현의 자유의 정신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것이 종종 혐오주의의 다른 표현이라는 점에 있다. 권위주의에 대한 도전이 아니라, 다수자들, 곧 다수의 행위를 조직할 수 있는 주류사회의 편견이, 혐오의 대상으로 낙인찍힌 이들에게 가하는 보이지 않는 테러에 다름 아니라는 것이다. 하여 주류사회의 집단적 편견에 짓눌린 이들에게는, 바닥까지 떨어져 있는 자존성을 아예 분쇄시켜 버리는 극한적 폭력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프랑스를 포함한 서구 국가들은 불과 얼마 전까지 주변 대륙의 수많은 사회를 강제 병합해서 식민지로 착취했다. 그리고 그 사회들이 독립국가가 된 이후에도 막대한 영향력을 유지하면서 그 나라들의 건강한 발전을 가로막아 왔다. 하여 그들이 사회적 모순에서 헤어나오는 것을 방해했다.

뼈저린 가난과 극심한 사회정치적 혼란 속에서 그 지역의 많은 이들이 식민지 종주국이었던 유럽사회로 이주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다. 그리고 유럽의 발전된 국가들은 자국 시민들의 안락한 삶을 위한 저렴한 노동력으로 이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한데 그들은 허드렛일 혹은 위험한 일을 도맡아 하는 최하위의 노동자일 뿐 아니라, 그 사회의 시민적 교양을 체득하지 못한 하등인간이기도 했다. 주류사회에 속하는 많은 이들은 좀처럼 편견의 눈을 거두지 않았다. 그 과정에서 적지 않은 이주민들은 자기 자신을 무능하고 열등한 자로 생각하게 되었다. 그들 중 다수는 그렇게 그 사회의 하위주체(subaltern)가 되어갔다.

그런 이들에게 종교는 무너지고 있는 자아에게 존재의의를 부여해주는 한 가닥 구명줄 같은 것일 수 있었다. 유럽 사회에서 이들 밑바닥 이주민들 사이에서 가장 널리 퍼진 종교는 물론 이슬람교다. 그런데 샤를리 에브도의 조롱 섞인 만평은, 파리의 자유분방한 성찰적 지식인들에게는 권위에 복종하지 않는 정신을 상징하는 것일 수 있어도, 하위주체화된 일부 무슬림들에게는 존재의 구명줄을 끊어버리는 상징적 살해행위가 될 수 있는 것이었다.

일본의 변호사로, 인권운동가이자 저술가인 모로오카 야스코(師岡康子)는 일본의 한국계/조선계 자이니치(在日)에 대한 혐오주의적 폭언들이 그이들의 존재를 얼마나 심각하게 파괴하고 있는지를, 그녀의 저서 증오하는 입혐오발언이란 무엇인가에서 예리하게 분석한 바 있다. 하여 그녀는 혐오발언들에 대한 법률적 규제를 적극 주장하는 비판적 인종이론가인 메리 마츠다(Mari J. Matsuda)와 같은 입장을 편다.

반면 저명한 퀴어이론가인 주디트 버틀러(Judith Butler)는 의견이 다르다. 그녀는 최근에 쓴 혐오발언너와 나를 격분시키는 말 그리고 수행성의 정치학에서 혐오발언들이 그 표적인 된 이들의 삶을 파괴한다는 주장들은 그런 발언들을 너무 과대평가한 결과일 수 있다고 문제제기하면서, 오히려 법적 규제론자들은 피해자들이 저항하는 주체가 되는 것을 방해하고 저항을 오직 법률대리인들이 벌이는 법적 투쟁의 공간에 가둬버린다고 비판하였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규제론자인 메리 마츠다나 모로오카 야스코도, 반규제론자인 주디트 버틀러도, 샤를리 에브도식의 표현의 자유는 언제나 옹호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그들은 표현의 자유라는 명분 아래 무수한 혐오발언들이 정당화되고 있는 것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양자는 법적 규제의 타당성과 유효성에 대해 이견이 있다. 표현의 자유에 대한 규제 문제를 둘러싼 논쟁을 아주 단순화시키면 이와 같이 양편으로 입장이 나눴다.

한국에서도 표현의 자유를 둘러싼 갈등은 꽤 많았다. 최근에는 극우주의자들이 내뱉은 혐오발언이 문제가 되면서 규제에 대한 여론이 비등해졌다. 그중 주목할 사건 둘을 언급하면 201496일 추석연휴 첫째 날, 세월호 진상규명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며 유가족과 시민들의 단식이 계속되고 있던 텐트 바로 옆에서 일베 회원들이 벌인 이른바 피자테러 사건, 얼마 전 자유한국당이 전당대회(2/27)를 앞두고 주최한 ‘5.18 진상규명 공청회에서 쏟아져 나온 이 당 국회의원들의 혐오발언들이다. 모두 시민사회의 감정적 공감이 매우 높은 사건들에 대해 가한 망동들이다. , 아직 많은 진실이 은폐되어 있지만, 사법적으로 큰 틀에서 시비가 명료하게 가려진 사건이다. 즉 사회적으로 공감대가 매우 높으며 공적인 평가가 내려진 사건에 대해 피해자를 조롱하여 상처가 될 수 있는 언행들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가의 문제다.

표현의 자유는 가능한 한 보호되는 것이 원칙이지만, 피해자가 생길 수 있는 사건이라면 다른 문제다. 하지만 피해자가 그런 발언들로 이중 삼중의 피해를 입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 입증할 수 있을까. 그건 해석의 여지가 많다. 더욱이 이 해석에서 권력이 작동할 수 있음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므로 쉽사리 판단해서 피해자의 편을 들면 언제든 그것이 빌미가 되어 악용될 가능성을 불식할 수 없다. 그러니 법의 전문가들이나 지식인들은 신중할 수밖에 없다.

하여 위의 두 사건이 비록 시민사회를 분노케 하여 규제에 대한 여론도 매우 높고 사법적 시비도 크게는 확정된 것임에도 혐오주의적 언행에 대한 법적 규제를 둘러싸고 법률가들과 지식인들은, 진보적 입장을 가진 경우에도, 입장이 갈렸다. 게다가 위에서 소개한 주디트 버틀러의 반규제론적 문제제기는 매우 중요한 참고사항이 되었다. 피해자를 피해자로만 여기고 법률가들끼리 법정 다툼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방식이 아니라, 피해자가 사건해석의 주체가 되어 문제를 주도적으로 풀어나가는 것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여기서, 혐오주의적 언행에 대한 법적 규제가 혐오주의에 대항하는 운동들을 법정논란으로 환원시켜버린다는 버틀러식 문제제기 역시 과도한 비판이다. 실제로 법이 제정되었다고 해도 가해자들은 어떻게 해서든 법에서 빠져나가려고 법 안팎의 모든 수단을 동원할 것이고, 그들이 다방면에서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이들이라면 법의 심판을 벗어나는 경우는 허다하게 벌어진다. 그런 경우 법의 잣대가 균등하게 작동하지 않는 것에 해서 법정 안에서뿐 아니라 법 밖에서도문제를 제기하는 다양한 운동이 벌어지곤 한다. 그리고 피해자들 중 이 논쟁의 선두에서 문제를 제기하는 이들을 발견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현대사회는 국경(border)이라는 압도적 위상의 경계선만으로 포용과 배제의 작동을 설명할 수 없다. 그것은 물론 간과할 수 없는 양상이다. 하지만 사회는 훨씬 복잡하게 포용-배제의 정치가 작동되는 장이다. 특히 후기근대사회로 갈수록 국경을 넘나드는 인간의 활동이 무수히 많다. 일본의 자이니치 사상가인 강상중은 후기근대적 사회에는 국가와 국가를 가르는 ‘(외적)국경만이 아니라 일상에서 그어진 무수한 내적국경들이 매우 활발하게 작동하고 있으며, 그러한 내적국경에서 벌어지는 민주주의를 향한 싸움을 래디컬 데모크라시라고 주장한 바 있다. 그리고 이런 논점은 표현의 자유를 둘러싼 법적 규제 논쟁에도 적용된다.

여기서 래디컬 데모크라시를 이해하는 데 지그문트 바우만(Zygmunt Bauman)액체성(liquidity) 논의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그는 현대사회를 고체근대(solid modernity)에서 액체근대(Liquid Modernity)로의 이행의 과정으로 해석한다. 즉 예측 가능했던 고체적안정적 근대의 시대가 끊임없이 유동하는 예측 불가능한 액체적 근대로 변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고체근대의 시대에 민주주의를 향한 논쟁은, 마치 미국과 소련이 한반도, 그 안에서 벌어지는 모든 주체화 운동과 갈등을 단순화하여 남과 북으로 갈라놓는 선으로 구획한 ‘38처럼, 양분된 이념을 둘러싼 단순명료하게 분할된 선을 따라 전개되었다. 땅은 굴곡지어져 있고 구불구불한 물줄기가 지형을 따라 흐르면서 땅의 이편과 저편으로 분절하기도 하고 또 분절된 땅을 합류시키기도 한다. 그리고 그 물줄기의 흐름도 하나의 선을 따라 전개되는 것이 아니다. 수없이 많은 지류들로 갈라졌다가 만나기를 반복하며 흘러간다. 그렇게 물줄기는 분절과 융합의 운동을 끊임없이 한다.

액체근대의 시대는 바로 이런 다중적 선들을 따라 유동하는 변화무쌍한 현장들이 그 존재감을 드러내는 시대다. 그런 현장들 곳곳에서 벌어지는 내적국경을 둘러싼 팽창과 수축의 운동, 그 속에서 배제를 억제하고 포용성을 더 높이려는 운동을 강상중은 래디컬 데모크라시라고 불렀다. 이런 관점은 5.18에 혐오주의적 언동들에 관한 법적 규제를 둘러싼 논쟁도 법정 안에서만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논의의 지형 속에서 물줄기가 뻗치며 흘러가는 수많은 현장에서 벌어진다는 것이다.

한편 변경사(history of the borders) 연구자인 윌리엄 월터스(William Walters)는 이러한 액체적 포용과 배제의 운동이 끊임없이 벌어지는 유동적 경계를 고대로마제국이 라인강과 도나우강을 따라 설치한 국경인 리메스(limes)라는 라틴어 단어로 은유적으로 표현한 바 있다. 나는 월터스의 리메스 논의를 통해 5.18사건의 혐오주의 규제법 제정이 피해자를 대상화하고 탈주체화할 수 있다는 비판에 대해 다르게 이해할 수 있는 관점을 얻을 수 있다고 본다.

고대로마제국의 라메스

5.18에 대한 이제까지의 리메스는 5.18사건의 피해자를 북한과 연관시킨다든가 적어도 사회의 안정을 위협하는 불순분자로 취급하여 법의 문밖으로 배제하는 분할의 선이었다. 그것은 피해자들의 트라우마를 불순함의 결과로 해석하게 하는 장치이기도 했다는 점에서 그들의 주체화를 가로막는 결과를 초래했다. 그런데 5.18을 둘러싼 민주화운동의 성과는 그것에 대한 리메스를 조금씩 팽창하는 경계로, 즉 그 문 안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기회를 조금씩 넓히는 계기가 됨으로써 피해자로 하여금 자신의 망각된 기억을 부분적으로나마 회상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이른바 망각의 정치학에서 회상의 정치학으로의 전환이 시작된 것이다. 그러한 전환의 역사에서 5.18사건에 대한 혹은 그 피해자에 대한 혐오적 발언이나 행위를 규제하는 법안은 직간접 피해자를 법의 문 안으로 들어올 수 있게 하고, 직간접 가해자를 법의 문밖으로 추방하는 장치가 마련된 것을 뜻한다. 즉 법의 문으로 작동되는 리메스의 문제는 법의 문제가 단순히 법률 해석 문제가 아니라 기억의 정치의 문제이기도 하다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직간접 피해자가 대상화되는 것이 아니라 기억 전쟁의 주체로 부상하는 과정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글을 마무리하면서 고대 유다국의 요시야 왕정 때의 리메스 성격의 국경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다. 이때에는 두 개의 리메스적 국경이 있었다. 하나는 그 얼마 전 멸망한 이스라엘국 난민에 대한 리메스다. 이스라엘국은 아시리아의 침공 앞에 무너졌고 결국 나라가 사라졌다. 이때 전란을 피해서 많은 난민이 국경을 넘어 유다국 땅으로 들어왔다. 이때 유다국은 이스라엘계 난민들을 어떻게 할지, 유다국 백성에 예속된 하위의 존재로 할지 백성과 동일한 위상으로 포용할지를 두고 입장이 갈렸다.

요시야 왕이 실시한 개혁법전인 신명기법에 의하면 법의 백성으로 부름받은 이들의 목록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오늘 당신들은, 각 지파의 지도자들과 장로들과 관리들을 비롯하여, 온 이스라엘 사람, 곧 당신들의 어린아이들과 아내들과 당신들의 진 가운데서 함께 사는 외국 사람과 당신들에게 장작을 패 주는 사람과, 나아가서는 물을 길어 오는 사람에 이르기까지, 주 당신들의 하나님 앞에 모두 모였습니다.” 곧 지도자들뿐 아니라, 여자와 아이, 그리고 노예들과 난민들이 모두 법의 백성으로 부름받았다는 것이다. 마치 얼마 전 문재인 정부가 헌법개정안을 만들었을 때 기본권의 주체를 국민에서 사람으로 바꾼다는 법안과 맥을 같이 하는 주장이다. 이것은 요시야 정부가 유다국에서 난민에 대한 리메스를 크게 확장하고자 했음을 뜻한다.

유다국의 두 번째 리메스는 에돔족에 관한 것이다. 유다국의 이웃국가들 중 모압, 암몬, 블레셋 등은 유다국에겐 명명백백한 이방족속이었다. 한데 에돔족은 모호했다. 우선 유다국 전통에 따르면 에돔족은 에서의 후예들이다. 알다시피 에서는 유다국의 조상인 아브라함의 아들이며 이삭의 형이다. 그러니까 에돔국은 유다국의 기억 속에는 형제국이다. 한데 에돔에 관한 유다국의 기억은 거의 대부분 분노와 멸시로 가득하다. 분노는 에돔이 유다국 백성들을 약탈했다는 역사적 기억에 근거한 것이다. 한데 실재 역사에서 에돔은 긴 시간 동안 유다의 예속국이었다. 게다가 여러 차례 대대적인 학살의 희생자가 되었다. 에돔이 유다를 약탈했던 경우도 국소적인 사건들에 불과했다. 유다는 대량학살을 자행했지만 에돔은 소소한 보복과 약탈에 그친 것이다. 그럼에도 유다국의 기억에서 에돔은 거의 언제나 분노와 조롱으로 점철됐다.

한데 두 경우에 에돔에 대한 반전의 기억이 제시되었다. 하나는 이사야서63,1 “에돔에서 오시는 이분은 누구신가? 붉게 물든 옷을 입고 보스라에서 오시는 이분은 누구신가? 화려한 옷차림으로 권세 당당하게 걸어오시는 이분은 누구신가? 그는 바로 나다. 의를 말하는 자요, 구원의 권능을 가진 자다.”라는 구절이다. 아마도 페르시아 시대 말기 혹은 헬레니즘 시대 초기쯤, 한 익명의 예언자는 메시아의 도래를 선포하는데 그이가 다윗의 고향인 베들레헴도 아니고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도 아닌, 아니 유다 땅의 그 어떤 곳도 아닌, 유다국 백성들이 가장 멸시하는 족속인 에돔에서 온다는 것이다. 가장 파격적인 메시아 선포에 속한다.

두 번째 반전의 기억은 또 다시 요시야 왕실의 문서인 신명기의 한 구절에서 발견된다. “당신들은 에돔 사람을 미워해서는 안 됩니다. 그들은 당신들의 친족입니다.”(23,7) 얘기인즉슨 저들 에돔족이 우리들(유다국 백성)의 친족임을 상기시키는 것이다. 하여 리메스 밖으로 내몰렸던 이들을 리메스를 통과해 들어올 수 있는 이들로 묘사하는 것이다.

에돔족을 리메스 안으로 포용하는 국가, 이것이 요시야 시대에 있었고 훗날 이사야서에 수록된 한 익명의 예언자가 꿈꾸는 종말의 세계 속에 다시 반추되고 있는 것이다. 배제된 이들을 포용하려는 팽창의 리메스를 향한 운동이 성서 속에 중대한 기억으로 간직되었다. 그렇게 팽창하는 리메스적 의미를 담은 성서의 정신을 오늘 우리는 국가폭력의 희생자들에게도 적용하려는 것, 이것이 내가 이 글에서 말하고자 하는 요체다. 또한 그것은 동시에 망언의 주체들을 그 경계 밖으로 추방하려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한 리메스 팽창 운동은 지금 벌어지고 있다. 법정뿐 아니라 사회 곳곳에서. 그리고 그 운동은 피해자의 내면에서도 작동된다. 하여 그들을 기억의 정치의 주역으로 부상하게 하고 있다. 그것이 바로 래디컬 데모크러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