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삼인출판사 홍승권 선생님과 만났다.
출판인 중 내가 제일 존경하는 분이다.
《당대비평》을 만들 때 처음 만났고, 나와는 불과 1년 손위의 분인데 인격이 범접할 수 없을 만큼 훌륭했다. 해서 나는 삼인을 짝사랑했고 삼인에서 많은 책을 출판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번번이 출판사에겐 별다른 도움이 못 되었다. 누가 된 경우도 여러 번이다. 그리고 이번에 또 한 권의 책을 냈다. 14명이나 되는 필자들이 참여한 책인데, 내가 중계를 했다. 《혐오와 한국교회》라는 제목의 책이다.
열심히 해도 적자를 겨우 면할 것 같은 책인데, 경제위기가 심각하니 아마도 더 쉽지 않을 법하다. 필자들은 각자의 일터에서 열심히 강좌도 만들고 토론회도 만들려 했는데, 코로나로 집회도 만만치 않다. 걱정이다.
이 책의 출판을 발의했고 기획을 주도한 이는 권지성 선생이다. 제2성서(구약) 연구자로, 스위스 취리히 대학에서 연구원으로 재직하고 있는 분인데, 이 책을 기획하기 전에 먼저 《성폭력, 성경, 한국교회》라는 책을 기획했고 출판했다.
그가 내게 처음 연락한 때는 2019년 4월6일이었다. 페이스북 메시지로 장문의 편지를 보낸 것이다. ‘혐오와 환대, 성경, 한국교회’라는, 그가 설정한 두 번째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데, 참여해 달라는 얘기다. 그 두 달 전 페북친구가 되어 간단히 인사를 나눈 것이 그와의 인연의 전부였는데, 이런 제안을 받은 것이다.
20여년 전의 내가 떠올랐다. 그 무렵 나도 기획서를 펴내는 데 관심이 많았다. 실제로 그 무렵 많은 책들을 냈다. 하지만 너무 많은 일들을 벌려 놓은 탓에, 어느 하나도 제대로 집중해서 하지 못한 탓에, 그리고 더 결정적으로는 그럴 만한 깜량이 못된 탓에 의욕은 높았지만 별로 이룬 것은 없었다.
권지성 선생은 그 무렵의 나만큼, ‘혹은 더’ 책에 대한 열정이 느껴졌다. 아마도 그런 이유로 그에 대한 호감을 가졌던 것 같다. 얼굴도 몰랐고, 어떤 성격의 사람인지도 몰랐다. 다만, 내겐 이미 사라져 버린 그의 열정이 부러웠고, 무력감에 빠진 중년이 회춘하고 싶어 열정에 넘치는 청년의 뒤를 졸졸 따라나니는 심정이었다.
그가 보내온 기획안은 무려 16명의 저자가 참여하게 되어 있었다. 그중 몇 명의 저자를, 내게 추천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들은 거의 그대로 책에 참여했다. 두 명이 포기했는데, 그것은 부득이한 사정으로 인한 것이었다. 서로 얼굴도 모르는 이들이 꽤 많았음에도, 혹여는 교회로부터 불이익을 겪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음에도, 또 기대할 수 없을 정도로 부족한 게재료에도 불구하고, 거의 이탈자 없이 참여했다.
나는 16명이나 되는 저자가 참여하는 방대한 기획안을 가지고 출판사들을 찾았다. 당연히 거절당할 가능성이 높았다. 몇 곳에서 거절당했다. 기독교 비판서가 인문사회비평 시장에서 갖는 왜소함을 누구라도 모르지 않겠기에 그런 반응은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삼인은 이번에도 이 돈 안 되는 책을 내주기로 허락했다. 그 무모함에 또 한번 감사했지만, 마음 한편에서는 착찹했고, 또 한편에서는 좀더 열심히 쓰고 홍보해야겠다는 마음을 다짐했다.
권지성 선생은 수십 통의 메일을 저자들에게 보냈다. 진행 상황을 투명하게 공지하고자 함이겠다. 때로는 저런 것까지 알릴 필요가 있을까 하는 것까지도 알려주었다. 아마도 이게 그의 힘인 듯하다. 당연한 일이지만 성서학 전문가인 그는 출판기획자로서 촘촘한 기획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니었고, 다소 방만한 책을 기획했지만, 그가 제안한 책에 거의 이탈자 없이 글을 성의껏 제출하는 것에는 필경 이런 그의 투명함과 성실함이 한몫했을 듯하다.
1년 몇 개월만에 책이 나왔다. 며칠 전 권 선생이 페북에서 책 사진을 올려놓을 것을 처음 보았고, 어제 출판사에서 그 책을 실물로 보았다. 이런 식으로 참여한 책이 내게 50권은 될 법하니(훨씬 넘을지도...), 이런 일로 그리 감회가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게다가 기획에 거의 관여한 것이 없기에, 다른 이가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 얹은 것에 지나지 않기에 어깨가 무겁게 느껴진 것도 아니지만, 뭔지 모를 친근감에 사로잡힌다. 실은 그래서 우편으로 받아도 될 것을 직접 갔다. 전날 밤 강의 원고 쓰느라 꼬박 밤을 새고 아침 8시 반에 누워서 깊이 잠들지 못한 채 있다가 2시간 만에 일어나 출판사로 갔다. 그 탓에 그날 밤에 강의 도중, 원고를 읽다가 세 번이나 깜빡했다. 마치 운전하다 0.5초 깜빡잠에 빠지듯.
지난 1월2일, 레나타 슈이사이드(Renata Suicide)가 20년 만에 낸 첫 앨범의 발매 기념공연에서 철학자 최정우 선생이 자신이 작사, 작곡한 ‘독의 노래’(Poison Song)을 타악연주자 고명진 선생과 협주를 했다. 20분 가까운 긴 연주 중 몇분간 지속된 두 사람의 미친 듯한 즉흥연주 대목에서 나는 마약에 취한 듯한 느낌에 빠져들었다. 마치 다른 공간 속으로 빨려들어간 듯했다. 1949년 제주공항북단 활주로 부근에서 학살당한 이들의 유골이 발굴되어 제주의 심방(무속인)이 미친 듯 춤을 추면서 죽은 자를 불러와 산 자와 만나게 하는 의례였다. 그 순간 나는 그 굿의 한복판에 있었다. 그리고 70여년 간 봉쇄되었던 소리들이 미친 듯이 뒤엉켜 외치고 있었다. 그날 새벽 나는 원고를 마쳤다. 이 공연의 감흥 덕이었다. 그게 이 책에 수록된 나의 글이다.
이렇게 이 책은 출간되었다. 많은 이들이게 읽혔으면 좋겠다.
(페이스북 2020 06 18에 쓴 글)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42675874&start=slay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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