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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증오를 주장하는 이들과 종교를 공유할 것인가

[경향신문] 2020년 11월14일자 '사유와 성찰' 코너에 실린 칼럼.

12월에 마지막 칼럼을 쓰고 [경향신문]과의 인연을 마감할 예정이었는데, 12월 칼럼 무렵 너무 바뻐서 양해를 구하고 쓰는 걸 포기했다. 그러니까 아래 올린 11월14일자 칼럼이 5년간의 인연을 마감하는 글이 되었다. 이런 일은 별로 없었는데, 올해 몇 개 글을 이렇게 포기했으니, 글쟁이의 수명이 끝나간다는 신호인 모양이다. 

2021년부터는 제3시대의 '연구기획위원장' 직도 내려놓았고, '목사'라는 타이틀로 부르지 말아달라는 요구를 좀더 적극적으로 하고자 한다. 하지만 칼럼을 그만 두는 것이 글도 그만 쓰겠다는 생각은 아직 아니다. 다만 점점 낡은 생각을 말하는 사람이 되어 가고 있으니, 아직 용기가 없어 글쓰기를 내려놓지는 못하지만 아마도 글쟁이의 삶도 얼마 남지 않은 듯하다. 그날이 언제일지 두렵기도 하고 새삶이 어떨지 상상하면서 호기심이 생기기도 한다. 사람들의 마음에서 추방당하기 전에 먼저 떠나겠다고 말하는 게 좋을 텐데, 두려움이 뒤꽁지를 붙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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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오를 주장하는 이들과 종교를 공유할 것인가

 

차별금지법에 반대하는 개신교의 총공세가 드세다

그런데 많은 신자들은 동의하지 않았다. 그 동의 없는 무뢰함을 더 용인해야 하는가

 

9월 말 온라인으로 개최됐던 총회는 반나절만에 폐회했다. 그래서 조용했던 모양이다. 한국기독교장로회(이하 기장) 총회가 119일에 속개되었고, 거기서 소란이 벌어졌다. 말할 것도 없이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 이들이 그 주역이다.

그 직접적 발단은 71, 기장 교회와사회위원회가 차별금지법 지지성명을 발표한 것에서 시작된다. 당시 많은 언론들은 개신교 교단 중 처음으로 기장이 차별금지법을 지지했다고 보도했다. 교단 산하 위원회의 성명이 교단의 공식적 입장인지 여부는 논란이 있을 법하다. 해서 몇몇 교회들이 교단을 탈퇴하겠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고 한다. 즉각 반대성명을 발표한 목사와 장로들도 있었다. 또 교단 게시판에서는 격렬한 반대 주장이 연일 게재되었다.

다른 교단들은 더 심각하다. 규모로 한국개신교 최대교파들인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파와 통합파, 그리고 세 번째인 감리교단도 반대 입장을 단호하게 폈다. 세계최대 교회 둘을 보유하고 있는 순복음계열의 교단들도 마찬가지다. 이쯤 되면 한국개신교는 거의 모두가 차별금지법 반대 입장임이 분명하다.

과연 그런가. 반대입장을 대변하는 최대 교회연합기관인 한국교회총연합(한교총)92일에 발표한 조사결과에 의하면 찬성 40퍼센트, 반대 48퍼센트였다. 전문가들에 의해 설문구성에서 형평성 문제가 지적된 조사에서 신자들의 40퍼센트가 차별금지법을 찬성했다. 이와는 달리, 공신력이 높은 연구기관인 아산정책연구원의 2014년 조사에서는 개신교 신자 중 찬성이 반대 의견을 10퍼센트 이상 앞섰고, 올해 10월에 발표한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찬성이 4퍼센트 정도 많았다. 국민 일반이나 가톨릭과 불교 등 다른 종파들은 절대적 다수가 차별금지법을 지지한다. 올해 6월에 발표된 국가인권위의 조사에서는 국민 중 무려 88.5퍼센트가 차별금지법을 지지한다고 답했다.

어느 조사든 개신교 신자에 국한해서 보더라도 찬성의견은 결코 소수가 아니다. 그런데 교단들의 공식적 주장에 따르면 반대의견 일색이다. 심지어 찬성의사를 표명한 교수, 목사, 신학생 등에게 초강경의 징계를 연이어 내리고 있다. 여러 교단 대표자들이 신자들의 의견을 무시한 채 권력을 남발하고 있다.

다시 기장 교단 얘기로 돌아가 보자. 기장 교단의 경우는 통상 신자 일반보다 훨씬 보수적이라고 추정되는 총회 대의원들조차 반대론이 대세를 형성하지 못한 듯하다. 실제로 이날 총회에서 성평등 관련 안건들은 거의 모두 보수적 입장의 패배로 귀결되었다. 그래서 반대론을 편 이들은 차별금지법의 공론화에 적극적이지 않은 듯한 태도를 보였다. 총대들의 입장이 이렇다면, 추정컨대 기장 교단 소속 신자들의 다수는 교회와사회위원회의 지지성명에 동조했다고 추정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반대론자들은 답해야 한다. 지지선언 때문에 교단을 떠나겠다는 교회와 신자들이 얼마나 되는지, 반대로 자신들의 반대주장 때문에 교단을 떠날지 모르는 교회와 신자들은 얼마나 될지에 대해 말이다.

차별금지법에서 개신교 일부의 극렬한 반대의 중심에는 동성애 문제가 있다. 한데 반대론자은, 국민 대다수가 차별금지법을 지지하는 것이, 그들 모두가 동성애에 동의한 결과가 아님을 알아야 한다. 수많은 조사에서 드러나듯 동성애를 부정적으로 보는 이들은 굉장히 많다. 동성애에 관한 인권의식의 수준은 평균적 인권의식보다 현저히 낮다. 그럼에도 압도적 다수가 지지를 표명한 것은, 설사 부정적 생각을 갖고 있더라도 차별은 옳지 않다는 의견을 표명한 것이다. 그런데 일부 교회 지도자들은 자신들이 싫어하는 이들을 모욕하고 공격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그 생각을 정당화하는 것은 그들의 신앙관이다. 또 그 배후에는 성서가 그렇게 말하고 있다는 믿음이 있다. 단언컨대, 성서가 그렇다는 주장은 그들의 가짜뉴스다.

근거 없는 성서 해석에 기반을 둔 증오의 종교, 이것이 그들이 주장하는 종교의 본질인가. 그렇다면 나는 그들과 종교를 공유할 생각이 전혀 없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진지하게 물을 것이다. 그런 교회에 여전히 신자로 남아있는 것이 그리스도를 따르는 길인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