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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3.1운동에 관한 기억, 극우의 실패에 대하여 - 그들이 기억전쟁에서 놓쳐버린 하나, ‘사람’

[창비주간논평](2019 03 06)에 실린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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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에 관한 기억, 극우의 실패에 대하여

그들이 기억전쟁에서 놓쳐버린 하나, ‘사람

 

 

탑골공원 뒷길 카페에 앉아 창밖을 몇 시간째 바라본다. 태극기를 든 다소 긴 행렬이 지나가고, 그 방향과 같거나 다르게 움직이는 몇 명 혹은 개별 행인들이 태극기를 손에 쥐고 수없이 오간다. 낯설다. 평소 익숙하게 보였던 이들과는 다른 풍모의 사람들이 적잖다.

내가 모르는 사이에 세상이 달라졌나? 당혹감이 머릿속을 스쳐 지났다. 서둘러 카페를 나와 그 대열에 다가갔다. 이상하다. 과장된 비장함도, ‘증오를 부추기는 구호도, 시끄럽게 내지르는 고함도 없다. 소곤소곤 정담을 나누며 걷는다. 그들이게 물을 것도 없다. ‘태극기부대는 분명 아니다.

물론 그 길에는 태극기부대에 일원이었을 법한 이들도 없잖다. 카페의 내 옆자리로 찾아들어온 네 명의 노인들이 그랬다. 하지만 흔히 볼 수 있던 시국토론 대신 스마트폰으로 어떤 트로트가수의 노래를 들으며 얘기꽃을 피운다. 저녁 JTBC 뉴스룸의 한 기자는 오늘 본 태극기가 3.1절 태극기인지 태극기부대의 태극기인지헷갈렸다고 말했다.

유난히 북적댄 그날 그 거리, 오랫동안 입장이 갈려 날선 대립을 거듭하던 이들은 여전히 아무런 대화도 화해도 없이 각자 자기의 길로 갔지만, 서로를 불편하게 할 만한 시선도 말도 행위도 없었다. 대책 없는 반목이 그치지는 않겠지만 나는 그날 그런 정도로도 위안을 받았다. ‘함께 살면 됐지 뭐!’

그곳에 간 것은, 지인과의 약속 때문이기도 했지만, 우파에 의해 점거되었던 ‘3.1절 기억의 탈환전이 본격화된 시내 한복판에서 수세에 몰려 낡은 기억을 사수하려는 이들의 반응을 보고 싶었던 이유도 있었다. 특히 상투적 고함과 구호만 넘치는 행사장 앞보다는 뒷길이 궁금했다.

잘못짚었다. 이날 태극기부대의 집회는 여기가 아니다. 몇 곳 중, 새문안교회 앞에선 개신교 극우의 절대 1전광훈 목사가 집회를 주도했다. 한기총 주최의 행사다. 그 위세가 추락일로에 있지만, 그가 대표회장이 된 올해 그 급락추세는 가파르다. 하여 이 집회는 군소단체 주관 행사 같았다고 한다.

20033.1절 구국기도회에 참석한 개신교도는 20만 명이 넘었다. 그날은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한 지 6일 후다. 그로부터 1년 뒤 대통령 탄핵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개신교 보수파 사이에선 19463.1절에 버금가는 승전의 기억이었다.

해방되고 처음 맞이한 3.1절 기념식에서, 그러니까 역사상 처음 거행된 그 기념식에서 남한의 우익과 좌익은 총력전을 폈다. 당시 미군정청 조사에 의하면 남한의 이념지형도는 2377로 좌익의 절대우세 상황이었다. 그러나 집회 결과는 세 배나 많은 대중을 동원한 우익의 완승이었다. 이후 3.1절 광장집회는 이승만 정권이 결코 포기하지 않았던 정치선전의 장이었다. 그런 점에서 1년 후 돌아온 20033.1절 구국기도회의 승전보는 1946, 그 오래된 기억이 환생한 사건이었다.

이명박 정권을 정점으로 개신교 우파의 분화가 본격화되었다. 한기총 중심의 이념적 우파는 이념전쟁에만 몰두했다. 하지만 그 무렵 강남-분당권에서 압도적 성공을 거듭하고 있던 신흥대형교회들에선 시장주의적 우파 엘리트들이 교회를 주도하고 있었다. 또 그곳엔 함을 삶의 대원칙으로 삼는 보보스(보헤미안 부르주아) 류의 웰빙주의적 우파 성향의 신자들도 많았다.

그런 이들의 공통점은 좀처럼 냉전적 이념주의로 수렴될 수 없다는 것이다. 처음에 그들은 반대의사를 소극적으로 표현했지만, 최근엔 꽤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2018년 초, 국정원장과 법무장권을 역임한 극우인사로 전광훈의 열렬한 동지인 김승규 장로는 3.1절 구국기도회 참여를 꺼리는 목사들을 향해 지금이 어느 때인데 교인들의 반대에 몸을 사리느냐고 호통을 쳤다고 한다.

아무튼 이런 적극적 반대가 본격화된 시기는 20164.13총선이었던 듯하고 그해 말 박근혜 대통령 탄핵정국에선 폭발적으로 나타났다. 사회에서 상당한 위치에 있는 파워엘리트인 주요신자들의 반응에 많은 목사들의 눈치 보기 국면이 시작된 것이다. 그 결과는 개신교보수단체 중 규모에서 절대우위를 점하고 있는 한교총(한국교회총연합회)이 진보성향의 개신교연합체인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와 연합예배를 거행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개신교 우파 중 극우화된 분파의 중심에는 전광훈이 돋보인다. 1998년 그가 만든 청교도훈련원은 2010년 무렵 위세가 절정에 달했다. 당시 이 단체가 주관한 목회자 프로그램에 참석한 숫자는 전국 목사의 7~10%에 달했다. 하지만 이후 그는 실패를 거듭하고 있다. 그가 주도한 기독정당들은 번번이 실패했고, 20173.1절 구국기도회에 참석한 개신교 신자도 2003년의 십분의 일에 그쳤다. 또한 2018년엔 몇 천 명 정도였으며, 이번 새문안교회 앞 집회에선 불과 5백 명이 모였다.

공안검사와 방통위원장을 지냈고, 노무현문재인 두 전현직 대통령을 간첩라고 떠벌린 극우인사 고영주는 최근에 애국시민이 대규모 집회를 성공적으로 하려면 전광훈 목사가 이끄는 애국기독인과 함께 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전광훈이 주도하는 극우개신교의 입지는 크게 꺾이는 추세다.

3.1절 구국기도회로 상징되는 개신교의 광장정치가 약발을 받지 못하는 추세가 명백해진 지난 해 9~10월경, ‘태극기부대내부에선 대중전략 대신 정당의 당권을 장악하자는, 이른바 기획입당 메시지가 SNS를 통해 회자되었다. 아마도 그 결과가 이번 자유한국당 전당대회에서 벌어진 극우대잔치로 나타난 것 같다.

여전히 보유하고 있는 자원은 많은 이들이니 약화일로에 있는 개신교 극우파의 위세를 극우의 몰락이라고 예단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현 단계에서 개신교가 중심세력으로 활동하는 극우세력은 대중정치에서 물러서고 있다. 아마도 그들에게 기회가 올 때까지는 그들이 과점하고 있는 제도권력의 뿔을 잡고 남은 위세를 휘두르려 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들의 기회를 차단하는 것이겠다.

그런데 그 기회란 무엇일까. 전광훈은 대중이 이승만을 다시 기억하는 순간이라고 보고 있다. 그는 문재인 정부가 벌이는 3.1절의 기억전쟁의 요체를 이승만 죽이기라고 단언한다. 그것을 달리 얘기하면 ‘1948년체제에 대한 도전이라는 것이다. 반공보수주의적 사회체제를 붕괴시키려는, 그런 점에서 내부의 적화 기획이라는 얘기겠다.

반면 3.1절 기념식 연설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1948년체제’, 그 이후를 가리키는 용어인 신한반도체제를 논하면서, 전광훈과는 다른 방식의 기억전쟁을 벌인다. 우파의 기획이 옳은지 좌파의 기획이 옳은지의 문제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람이 중심이 되는 평화공동체, 사람이 더불어 혜택을 받는 경제공동체를 이루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어느 이념이 지배적 프레임이 되는 것이 기회가 아니라 사람이 주체가 되고 사람이 혜택을 나누는 사회를 강조한다. 지난해 4.27판문점선언에서 평화가 발전을 준다는 낙관에 빠져 평등, 분배, 사람 등의 단어를 모조리 생략한 것과는 사뭇 다르다. 이번엔 괜찮았다.

1946년 첫 번째 3.1절 기념식을 둘러싼 광장정치에서 승리를 거두었던 우파는 20193.1운동 100주년기념식에선 완패했다. 주목할 것은, 우든 좌든, 이념이 사람을 압도하는 순간 그 정치는 실패한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극좌나 극우의 기획은 실패할 운명에 있다. 왜냐면 거기에는 항상 누군가를 으로 지목하려는 욕구가 넘실대기 때문이다. 간혹 그런 주장이 지배 프레임이 되기도 한다. 그때 사람은 살육의 영혼을 주입받아 다른 이들을 증오하고 학살하도록 부추김 받는다. 결국 사람은 그로 인해 서로 오랫동안 고통스럽게 된다.

예수는 말했다. “요한이 위대한 분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하느님나라에서는 가장 작은이가 그이보다 더 크다.”(루가복음7,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