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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뜻나누기(설교)

실로 프로젝트

2021년 3월14일 한백교회 하늘뜻나누기 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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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로 프로젝트

 

 

이놈들아, 당장 그쳐라! 주님의 백성이 이런 추문을 옮기는 것을 내가 듣게 되다니, 두려운 일이다.
―〈사무엘기상2,24

 

 

 

이스라엘 군주국이 출현하는 것에 관한 성서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사사 시대가 끝나고 다윗이 다스리는 군주국 시대가 도래했고, 다윗과 그의 아들 솔로몬의 시대를 지나 그 다음 대인 르호보암 왕 시대에 북부 부족들이 다윗의 나라에서 이탈하여 이스라엘국을 창건함으로써 유다국과 이스라엘국이라는 두 군주국 시대가 도래했다는 것입니다.

성서의 이와 같은 역사 서술은 성서 스토리가 유다국 왕실사에 기초하고 있다는 점에서 객관적인 것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해서 오늘날 성서 역사학자들은 그 시대 역사를 재구성하려고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여러 가설들을 참조하고 종합해서 저는 다음과 같이 그 시대의 역사를 재구성하고자 합니다.

사사 시대는 아직 군주국 시대가 도래하지 않던 시대로, 부족들이 느슨한 네트워크로 연결된 시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학계는 그것을 부족동맹 시대라고 부릅니다. 이스라엘 부족동맹이 존속하던 시절, 팔레스티나 지역에는 두 다른 유형의 부족동맹이 존속했습니다. 먼저 풍요로운 동부 해안 지대에는 블레셋 부족동맹이 있었는데, 다섯 개의 도시(아스돗, 아스클론, 가자, , 가드)를 중심으로 하는 5개 부족국가의 연맹체가 그것입니다. 그리고 중부 고지대에는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의 부족동맹이 존속했는데, 여기에는 도시가 발달하지 않았지요. 도시가 발달하지 않았다는 것은 계급분화가 잘 전개되지 않았다는 뜻이고, 이는 권력 집중 현상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고지대여서 도시가 발달할 수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또 야훼 신앙이 권력 집중을 억제하는 장치로 작동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아무튼 이스라엘은 상대적으로 평등한 사회였습니다. 그리고 그런 사회종교적 전통을 수호하는 부족이 에브라임 부족이었습니다.

한데 부족동맹 시대 후기에 이르면 이러한 전통은 내외적 요인에 의해 붕괴되기 시작합니다. 내적 요인이란 고지대 농법이 발달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유입되어 인구가 증가하고, 이 과정에서 상당한 성공을 이룩한 계층이 등장하게 되었다는 점을 말합니다. 외적 요인이란, 점차 가치 있는 땅이 되어가는 이스라엘 지역으로 침탈하는 이웃 족속들을 막아내는 전쟁영웅이 등장하게 되는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이는 이스라엘이 더는 평등한 부족동맹으로 살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무수한 갈등과 분쟁이 끊임없이 발생하게 된 것입니다.

이런 갈등을 봉합하고자 하는 세력은 에브라임 부족입니다. 그러나 길르앗 부족의 입다, 므낫쎄 부족의 기드온과 아비멜렉은 거의 군주 같은 위상을 지녔고, 이는 부족간 전쟁으로 비화되었습니다. 겨우겨우 갈등을 봉합하면서 지탱되어 왔지만 부족동맹 와해의 시간은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그때 부상한 것이 실로 프로젝트입니다. 실로(Shilio) 성소의 사제들이 주도한 이 프로젝트의 대략은, 일체의 권력화에 반대하는 이스라엘의 전통적 기획과는 달리, 최고권력자를 적극적으로 옹립하고 그이에게 전권을 부여하되, 그이는 이스라엘의 평등주의를 옹호하는 의무를 부여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이를 옹립하는 임무는 실로 제사장에게 위임되었습니다. 훗날 왕이나 메시아로 옹립된 이에게 행해졌던 의례인 기름부음 의식은 실로 성소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부족동맹 말기 치열하게 벌어지던 군주제 대 반군주제의 갈등에 대한 3의 길이 바로 실로 프로젝트의 요체였던 것입니다.

실로 성소는 에브라임 지역에 위치하고 있지만, 실로 프로젝트의 지지세력은 베냐민 부족이었습니다. 해서 부족동맹 말기에 전통주의를 고수하는 에브라임 부족과 실로-베냐민 부족 간의 치열한 공방이 벌어졌습니다. 그러나 시시각각 조여오는 외세의 침입과 내적인 불평등의 심화는 에브라임 부족의 길이 더 이상 불가능하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프로젝트는 성공하였을까요? 일단 실로의 최고사제 가문인 엘리 가문은 카리스마적 최고지도자를 위임하는 대신 그 문중이 최고권력을 장악했습니다.

야훼의 궤, 모형도

그것이 문제였을까요? 오늘의 본문은 엘리가 두 아들인 홉니와 비느하스를 심하게 꾸짖는 장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들은 백성을 갈취하고 아녀자 겁탈의 혐의를 받고 있었습니다. 한데 엘리는 그들을 처벌하지는 않은 모양입니다. 그들은 블레셋의 침공 때에 이스라엘군을 이끌고 전투에 참여했습니다.

철제무기로 무장한 기마부대를 보유한 블레셋 군대의 침입은 이스라엘을 절체절명의 위기로 몰아갔습니다. 홉니와 비느하스는 실로 성소가 자랑하는 최고상징물인 야훼의 궤를 앞장세우고 치열한 방어전을 벌입니다. 하지만 대중의 지지가 무너진 탓일까요? 이 전투에서 그들은 모두 전사하고 궤도 적에게 빼앗깁니다. 그리고 그 소식을 들은 엘리도 충격으로 사망합니다.

이것은 실로 성소의 최후였습니다. 이후 이 성소는 결코 회복되지 않았고 야훼의 궤도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궤가 블레셋의 세 개 도시를 돌다 벳세메스를 거쳐 기럇여아림으로 돌아왔다고 하지만, 그것이 진짜 궤인지는 확인할 수 없습니다. 하여 이후 실로의 궤는 더 이상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상징의 지위를 회복하지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실로 프로젝트는 끝난 것일까요? 실로 성소에 예속된 하위 성소인 라마가 실로의 위상을 대체하였습니다. 그 중심인물은 사무엘입니다. 아마도 그도 엘리 가문처럼 자기 가문의 권력 집중화를 도모했던 듯한데, 블레셋의 침공 때문에 전투에 능한 베냐민의 지도자를 최고권력자로 추대합니다. 그가 바로 사울입니다. 이후 사무엘 가문도 부정부패의 오명을 쓰고 역사 속에서 사라집니다. 하여 이제 사울은 최고권력을 쥔 군주가 됩니다. 그리고 라마는 사무엘의 장소가 아니라 사울의 주요 거점의 하나로 병합되었습니다.

사울은 실로 프로젝트로 선별된 이답게 이스라엘 전통에 대해서는 존중하는 태도를 보입니다. 그렇지만 그는 부족동맹 시대에는 볼 수 없는 강력한 중앙집중적 권력을 장악한 인물입니다. 그런 점에서 그는 이스라엘 사회에서 군주제의 문을 연 첫 인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그는 부족동맹의 정신을 수호해야 한다는 의무를 짊어진 베냐민의 부족의 적장자였습니다. 그는 부족동맹 시대가 종식되었음을 상징하는 인물이지만 완전한 군주제의 상징은 아닌 것입니다.

사울은 블레셋과의 치열한 전투를 벌이다 전사합니다. 블레셋도 회복불능의 상태로 떨어졌습니다. 그리고 얼마후 사울의 가문의 나라는 사라집니다. 여러 학자들은 그것이 이집트의 침공 때문이라고 봅니다.

이후 부족동맹 이스라엘과 이름이 같은, 다른 국가들이 등장합니다. 이집트로부터 독립한 나라들로, 하나는 사마리아를 거점으로 하는 나라고 다른 하나는 예루사렘을 거점으로 하는 나라입니다. 그리고 이 두 나라는 각기 이스라엘의 계보를 잇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두 나라는 군주가 모든 권력을 장악하고 있고, 부족동맹의 평등주의 전통과는 무관한 군주 중심의 국가입니다. 그 나라들의 시대를 일컬어 군주국 시대라고 부릅니다.

그렇다면 군주국 시대에 실로 프로젝트는 좌초된 것일까요? 그 담론의 장소였던 실로는 사라졌고 라마는 군주국의 권력집중화를 상징하는 장소가 되었습니다. 한데 놀랍게도 실로 프로젝트는 살아 있었습니다. 반체제적 예언자 전통 속에 살아남아 군주와 귀족의 권력 남용을 비판하는 논리로 작동하고 있었습니다.

낡은 질서는, 그것이 보수적이든 진보적이든, 그 시대의 정신을 담아내지 못합니다. 해서 보수든 진보든 3의 길이든 낡은 질서를 개혁하자는 주장이 제기되게 마련입니다. 많은 이들은 그런 주장을 펴는 세력에게 신뢰와 지지를 보내곤 합니다. 모든 개혁이 대중의 지지를 받는 것은 아니지만, 대중의 사랑과 신뢰를 한 몸에 받는 개혁세력은 분명 존재하고, 그 지지에 기반을 둔 세력은 구세력의 탄압과 공격을 이겨내고 체제의 주도권을 장악하기도 합니다. 바야흐로 개혁의 시간이 시작됩니다.

물론 그 시간도 순조롭지만은 않습니다. 여전히 낡은 세력의 강력한 저항에 맞닥뜨리게 됩니다. 해서 개혁의 시간은 개혁을 둘러싼 공방의 시간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대중의 사랑을 한 몸에 받던 개혁이 좌초할 때가 있습니다. 특히 개혁세력 내에서 부패와 권력남용 사건이 발생할 그렇습니다. 철저한 청산이 요청됩니다. 하지만 청산을 회피한 개혁파는 대중의 지지를 잃게 되고, 결국 개혁을 주장한 이들은 자신들이 청산하고 싶은 이들처럼 청산의 대상이 됩니다. 개혁의 정신은 다시 누군가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서 계속 이어가겠지만, 부패한 개혁세력은 실패의 이력만 남긴 채 역사의 무대에서 퇴장하고 마는 것입니다. 바로 성서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