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우녕 작가의 아트북이다. 홀가분은 자우녕과 올빼미만의 출판사로 만든 것이다. 거의 상업적이지 않지만 지출을 최소화해서 운영할 예정이다. 놀랍게도 이 출판사의 대표는 바로 나다. 내가 출판인 같지 않은 출판인이 되었다. 이제까지의 다른 프로필은 이미 끝났거나 거의 끝나가니 홀가분 대표가 나의 대표 직함인 셈이다. 아마도 내가 세상에서 사라질 때까지 10권도 펴내지 못할 테고 서점에서 거의 찾을 수 없는 책일 테니, 홀가분은 희귀본 출판사가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 책은 제주, 일본의 오키나와, 포르투갈의 메세자나, 세 장소에서 채집한 작가의 마음과 사상력과 성찰을 담아낸 사진집이다. 이 주제로 2022년 제주에서 전시를 한 바 있는데, 이 책은 그 연장선상에 있다.
이 책에는 자우녕의 사진작업과 소묘와 글 외에도 김정혜, 신윤주, 그리고 나의 짧은 코멘터리가 들어 있다. 다른 이의 것을 올릴 수는 없어서 내 것만 여기에 올린다. 이미 이 블로그에서 이미 올린 바 있는 글이다.(https://owal.tistory.com/670) 그래도 책을 소개하는 마당이니 한 번 더 올린다.
부서진 시사 조각들’에게 최선의 관계에 대해 묻다
‘시사’(シーサー, Shisa)는 오키나와의 대표적 상징물로, 언제나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액막이 신과 같은 존재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처음부터 그런 의미였던 것은 아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14~15세기) 시사의 표상들은 모두 류큐 왕국과 군주를 상징하고 있다. 즉 국가와 군주의 권위를 상징하는 존재다. 그러니 당연히 백성들은 누구라도 시사 상을 자신의 집이나 영역에 세울 수 없었다. 오직 왕을 위한 존재인 것이다.
17세기, 에도 막부시대(江戸幕府時代)에 일본 본토 남부 끝단의 정치세력인 사쓰마 번(薩摩藩, 오늘의 가고시마 지역)의 침공을 받아 류큐 왕국은 항복을 선언하고 막대한 공납물을 바쳐야 했다. 왕국은 존속할 수 있었지만 일종의 봉신국이 된 나라의 군주는, 그의 권력은 무너질 대로 무너졌다. 중앙권력의 무력화는 지방호족의 대두로 이어졌다. 그때 시사의 장소는 왕궁에서 마을로 옮긴다. 시사가 세워진 곳은 마을과 마을의 경계 혹은 산 자와 죽은 자의 경계를 표상하게 되었다. 마을과 마을이 경계선 이편과 저편으로 촘촘하게 잇대어 있는 것이 아니니, 사람들에게 마을의 경계란 이생과 저승의 경계로도 해석되었던 것이다. 이렇게 시사가 마을의 수호신으로 자리잡게 되었다는 점에서, 이 시기 시사를 ‘무라시사’(村獅子, 마을시사)라고 부른다.
무라시사는 ‘사쓰마 번’이라는 물리적 권력의 수탈로부터 마을을 지키는 존재다. 하지만 동시에 화재라든가 태풍, 전염병 같은 죽임의 권력의 침공으로부터 마을을 보호하는 존재이기도 했다. 마을공동체는 시사를 섬기는 마을 의례를 통해서 사람들과 상면했다. 하여 이 시대 시사는 공동체의 정체성을 지켜주는 신이었다.
19세기 말, 메이지 시대가 도래했다. 막부 시대에는 패권을 장악한 군벌이 전 일본을 통치하던 시대였다. 물론 그때에도 천왕이 있기는 했지만 통치자의 역할을 하지는 못했다. 그러니 막부 시대는 안정된 국가제도로 발전하기가 어려웠다. 반면 메이지 시대의 도래는 천왕이 명실상부 통치의 중심으로 부상하여 중앙집권적 체제가 성립하였다는 것을 뜻했다. 그리고 막부들은 천왕의 관료가 되어 그를 보좌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메이지 시대는 근대국가 일본의 탄생을 의미했다는 점이다. 특기할 것은, 서양 사회에서 근대국가는 군주가 존재하더라도 입헌군주제 사회로 구현된 반면, 일본에선 입헌적 국가제도 상위에 천왕이 존재하는 독특한 국가를 탄생시켰다는 점이다. 메이지 시대에 대한 세세한 얘기는 각설하고, 주목할 것 하나는 근대적인 지방행정제도가 강력히 시행되었다는 사실이다. 류큐 왕국은 1872년 류큐번으로 일본제국에 편입되었고, 7년 후인 1879년 오키나와 현이 되었다.
이제 류큐 왕국은 사라졌다. 수백년 동안, 독립적이든 예속적이든, 하나의 국가에 귀속되었던 이들이 다른 국가의 일부로 편입된 것이다. 강과 산과 마을들이, 마을의 골목들까지 오랫동안 너무나 익숙해서 자신들과 하나였던 그것들의 이름이 다른 것으로 개칭되었다. 그리고 그들 자신 또한 오키나와인이라는 새 명칭을 부여받았다. 국가가 바뀌는 것과 함께 모든 것의 이름들이 바뀌었다.
또한 마을 안에서 삶의 모든 것을 체험하며 살아왔던 이들은, 마을의 경계를 삶과 죽음의 경계처럼 인식했던 이들은 근대라는 전혀 새로운 체험 공간 속으로 급작스럽게 빨려 들어갔다. 마을과 마을을 연결하는 도로가 생겼고 철도가 가설되었으며, 통신망이 만들어졌다. 화폐도, 은행도, 시장도, 모두 마을 중심의 전통적 정체성을 뒤흔드는 요소들이었다. 많은 오키나와인들은 마을을 떠나 도시로 갔고, 바다를 건너 본토로 혹은 조선으로, 아니 만주나 남양군도로도 이동했다. 강고했던 마을의 공동체성이 붕괴되었다.
바로 이 시기에 시사는 새로운 장소로 이동한다. 마을이 아니라 가옥으로 간 것이다. 이런 시사를 ‘야네시사’(屋根獅子, 지붕시사)라고 부른다. 기와집 형태의 근대식 주택이 지어질 때 지붕에 기와벽돌로 시사를 만들어 세웠다고 해서, 그렇게 불렸다. 그밖에도 콘크리트 벽돌로 담벼락이 세워질 때 대문기둥에도, 현관 앞에도, 정원에도, 집안 곳곳에 시사가 자리잡았다. 이제 시사는 집을 지켜주는 존재가 된다. 외부의 액으로부터 말이다.
자우녕 작가는 오키나와 여행 중에, 특히 시골동네에서 집집마다 시사가 있는 것에 주목했다. 하지만 더욱 그이의 눈길을 받은 것은 시사가 아니라 시사의 잔해들이었다. 특히 폐가가 된 집들에는 영락없이 부서진 시사 조각들이 있었다. 그것을 주섬주섬 모아서 여행가방에 넣어 가져왔다. 그이에게 부서진 시사의 잔해는 무엇을 상징할까.
오키나와 출신 저널리스트 아라카와 아키라(新川明)는 〈토착과 유랑〉(1973)이라는 글에서 자본의 침식에 의해 토착의 질서가 붕괴되는 오키나와의 현실을 주목한다. 국가가 사라졌다는 사실, 아니 근대화의 격렬한 변화의 물결에 밀려 마을의 정체성이 산산이 부서지는 체험을 해야 했던 이들에게 ‘토착’이라는 것은 가능할까. 엄밀히 말해서 그것은 사라진 기억이며 습관이다. 오키나와인이라면 누구든 유랑민이 되지 않을 수 없다. 그럼에도 그들은 단순히 유랑민인 것만은 아니다. 왕궁에서 마을로, 다시 집으로 장소를 옮긴 시사, 이것은 군주에서 마을공동체를 거쳐서, 다시 개별 가족의 심상 속으로 시사가 개입해 들어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Eric Hobsbawm)은 근대의 파상적 물결에 휘말려 존속 자체가 사라질 위기에 놓인 된 종족들 사이에서 ‘만들어진 기억’이 탄생하였다고 말한다. 그는 그것을 ‘문화적 표상’(cultural representation)이라고 불렀다. 근데 이 표상은 전통도 아니고 근대도 아니다. 그것이 뒤섞인, ‘혼종적인 감정의 창조물’(hrbrid emotional creature)이다. 아마도 자우녕 작가가 이번 전시 제목으로 표현한 ‘최선의 관계’가 그것과 비슷한 그런 뉘앙스를 담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한데 자우녕 작가가 주목한 것은 식민지근대의 만들어진 기억의 표상으로서의 시사, 곧 ‘야네시사’가 아니다. 말했듯이 그가 관심을 가진 것은 시사의 잔해다. 특히 폐허가 된 집에서 가져온 파손된 시사들이다. 그것은 나라를 잃은, 자본의 침식에 의해 존재의 거처를 잃은, 하여 사실상 유랑민이 된, 그러나 아직은 집을 짓고 살고 있는 토착민들의 문화적 표상이 아니다. 부서진 시사는 마을을 떠난 자들, 토착민의 마지막 흔적까지도 훼손된, 언더클래스가 된 유랑민의 잔해다.
그는 다른 전시에서 부서진 시사의 잔해들을 재조합해서 새로운 시사를 만들었다. 그 잔해들은 어쩌면 다른 덩어리들이, 마치 콜라주처럼 재조합된 것인지도 모른다. 하여 그것은 본질로 회귀할 수 없는 타자적인 것들의 뒤섞임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그것은 시사다. 그것이 갖는 기억의 재조합에 대해 그는 관객과 대화를 나누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아키라와 아라키도 토착이 아니고, 유랑민적 토착도 아니고, 바로 유랑민에게서 미래의 가능성을 읽어내려 했다. 자우녕이 말하는 부서진 시사는 바로 식민지근대에 도래로 인해 유랑민이 된 자들, 자본의 침식에 의해 토착의 희미한 흔적조차 강탈당한 자들, 곧 유랑자의 시사인 것이다. 그것을 그는 이번에는 재조합하는 게 아니라 그냥 흐뜨러 놓았다. 해체된 채로.
그 골짜기의 바닥에 뼈가 대단히 많았다. 보니, 그것들은 아주 말라 있었다. ...... 나 주 하나님이 이 뼈들에게 말한다. “내가 너희 속에 생기를 불어넣어, 너희가 다시 살아나게 하겠다.”
―〈에스겔서〉 37,2~5
흩어진 뼈들이 마지막 때에 다시 살아나는 세계에 대한 성서의 묵시적 상상을 담은 구절이다. 흩어진 뼈들은 세월이 흐르면서 파손되고 흩어져 어느 것들이 원래 하나의 몸을 이루었던 것인지 알 수 없다. 근데 묵시적 종말의 시간이 오면 그것들의 조합은 어떤 양태일까. 가설1, 모든 것이 원래의 상태로 되돌아가는 것, 그리고 가설 2, 서로 다른 것들이 뒤섞이고, 파손되고 깨지기까지 한 것들을 원상복원시키는 것이 아니라, 이질적인 대로 엮어 새로운 것으로 창조되는 것. 자우녕 작가는 이전 전시에서 두 번째 가설을 채택한 셈이다. 그런데 이번 전시에는 만들어진 문화적 표상의 잔해를, 다시 원상을 상상하게 하는 창조물이 아닌, 그것까지도 해체한 잔해 그대로 남겨두었다. 시사를 알기도 하고 모르기도 하는 관람자들이 각자의 심상에서 그 조각들을 어떤 표상으로 조합하든가 아니면 그대로 내버려 두든가 하도록 말이다. 탈식민주의적 페미니스트 이론가인 가야트리 스피박(Gayatri Spivak)은 그러한 잔해가 된 기억들이 일으키는 형상해체적 상상력의 역동을 ‘탈구축’(de-construction)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자우녕은 그것에서 ‘최선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보라고 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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