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와평화] 202(2025 10)에 실린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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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이후’, 포스트쿠데타의 시간을 위하여
난데없이 국가와 국민을 한방에 나락으로 내동댕이쳐버릴 뻔했던 정치적 기획은 실패했다. 일단 신속하게 그리고 훌륭히 극복해냈다. 하지만 그 내막을 해독하고 청산하는 일은 그리 간단치 않다. 또 ‘실패한 쿠데타’라고 안심해도 될 만큼 근사한 미래가 아직 잘 그려지지 않는다. 하여 ‘12.3이후’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를 두고 집중적 논의가 필요하다. 그 과제를 간략히 정리하면 두 가지, 즉 ‘포스트쿠데타의 시간’과 ‘포스트파시즘의 시간’을 위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포스트파시즘의 시간’은 ‘대중 현상’에 방점이 찍힌다. 사람들이 집단적으로 울화가 치밀어 있을 때, 그 울화가 언어화되지 못하면 (개인적이거니 집단적인) 병증으로 나타난다. 그때 누군가가 울화의 원인이 ‘특정 집단’ 때문이라고 떠벌리고 그것이 많은 이들에게 공감되면, 그 집단에 대한 ‘혐오주의’가 넘쳐나게 된다. 그러면 혐오주의를 부추긴 자들이 대중의 열광적 지지를 받으면서 정치세력화를 꾀한다. 바로 이런 현상을 ‘파시즘’이라고 부른다.
20세기 초는 파시즘의 시대였다. 그리고 그로부터 한 세기가 지난 21세기 초, 세계는 다시 파시즘의 광풍이 불고 있다. 한국도 그렇다. 특히 ‘12.3이후’ 파시즘적 정치세력화가 본격적으로 진행 중이다.
하지만 ‘12.3이후’ 국면은 파시즘적 현상만 분출한 것이 아니다. ‘호혜’를 강조하는 대중도 정치적 주체로 부상하여 ‘혐오주의’적 대중과 대립했다. 주목할 것은 이 싸움에서 호혜동맹은 혐오동맹을 압도했다는 사실이다.
여기에는 ‘온라인엑티비티’(online-activity)가 한몫했다. 즉 온라인 공간의 호혜담론이 호혜동맹의 공론장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것이다. 그리고 호혜적인 온라인액티비티가 혐오의 온라인액티비티를 압도한 결과, ‘12.3이후’ 한국사회는, 파시즘이 아니라, 민주주의가 약진했다. 그러나 호혜동맹이 향후 얼마나 잘 유지될지는 단언할 수 없다. 내적 분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양한 사회적 집단들의 각기 다른 조건과 이해가 공존・상생하는 방식으로 민주주의가 작동되어야 하는데, 특정 세력이 그 성과를 독식하게 되면 혐오주의가 더 위협적으로 활개치게 될 수 있다.(이에 대하여는 나의 글 〈‘12.3이후’는 포스트파시즘의 시간이 될 수 있을까〉, 《가톨릭평론》 2025년 가을호를 참조)
한편 ‘포스트쿠데타의 시간’은 어떤가. 이것은 기본적으로 ‘엘리트 현상’과 밀접한 연관성이 있다. 일단 ‘특검’의 수사가 강도 높게 진쟁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권력독점의 욕구’와 ‘이념적 극우’가 얽히설키 엉켜 있는 쿠데타 주모세력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한데 극우적이지도 않고 독재체제를 선호하지도 않는, 거의 탈이념적인 리버럴 보수 성향의 엘리트 들이 극우적 쿠데타에 적극 가담하거나 옹호하고 경우가 꽤 많다. 물론 그런 이들은 언제나 있었다. 이것은 대개 ‘출세’에 대한 욕구가 만들어낸 결과였다. 이때 이런 욕구는 대개 사회적으로나 당사자 자신에게서나 수치스러움을 동반하는 감정이었다. 하지만 최근 그런 거리낌이 거의 사라졌다. 그런 점에서 ‘출세의 욕구’라기보다는 ‘출세주의’가 만들어낸 선택이라고 하는 게 적합하다. 그런데 이 표현도 충분하지 않다. 여전히 ‘개인의 선택’에 방점이 있다. 그런 점에서 사회구조적 변동과의 연관성을 강조하는 ‘메리토크래시(meritocracy)라는 용어가 이 현상을 설명하는 데 유용하다.
한국사회에서 ‘메리토크래시 현상’의 중대한 변곡점은 민주화와 관련이 있다. 그 이전에는 군주나 독재자 수하에 있는 전문가들에게서 이 현상이 가장 잘 드러났다. 이들 최고권력자들은 대게 전문적 지식이 부족했다. 해서 그들의 결여된 전문성을 보충해주는 자들이 필요했다. 이런 이들을 ‘가신형 테크노크라트’(technocratic loyalists)라고 부른다.
한데 민주화 시대에는 그 양상이 변화했다. 시민 주권의 확대와 함께 테크노크라트도 ‘자율적 관료’(autonomous bureaucrats)로 부상했다. 문제는 그들의 전문성에 대한 적절한 견제가 결여된 영역에서 이른바 ‘관피아’ 현상이 나타났다는 데 있다. 이들은 ‘특권적 관료’(bureaucratic aristocracy)로 군림하면서, 온갖 권력의 오남용에 개입했다. 이 과정에서 정계, 재계, 법조계, 언론계, 학계 등으로 엮인 ‘권력카르텔’이 형성된다.
이런 권력카르텔이 국가 정책을 좌지우지하는 사회를 ‘파워엘리트 사회’라고 부른다. 2천년대 전후, 한국사회는 빠르게 파워엘리트 사회로 전환되어 갔다. 그때는 세계화의 시대이기도 했다. 즉 무한경쟁의 시대라는 얘기다. 한데 가장 치열한 경쟁은 놀랍게도 파워엘리트 사이에서 벌어졌다. 초특급의 교육 시스템이 작동했다. 이런 훈육체계를 통해 파워엘리트는 최고의 전문가 반열에 올랐다. 하지만 그들의 경쟁은 학력이 전부가 아니다. 파워엘리트 간의 사적 연줄망이 잘 형성될수록 그들은 더 강력한 경쟁자원을 확보하게 된다. 이때 누가 더 다양한 분야의 파워엘리트들과 사적 연줄을 맺고 있는지 여부가 경쟁에서 제일 유리했다.
‘파워엘리트 근접계층’(elite-adjacent class)도 최선을 다해 그 경쟁에 뛰어들지만 그들은 여간해서는 충분한 경쟁자원을 확보할 수 없었다. 즉 출세의 장벽이 훨씬 높아졌다. 한데 그만큼 출세주의는 더 강렬한 욕구로 자리잡았다. 만약 이때 비정상적인 기회가 있다면, 그들 중 많은 이들은 물불 가리지 않고 거기에 뛰어들곤 했다. 쿠데타 같은 위험천만한 모의여도 말이다.
여기에 주목할 것은 ‘후발대형교회’다.(이하 ‘후발’) 시기적으로 1990년대 중반 이후 강남권(강남, 강동, 분당 지역)에서 출현 러시를 이룬 대형교회들을 가리킨다. 수만 명의 고학력 자산가층이 매주, 수십 년간 친분을 유지할 수 있는 장소다. 많은 파워엘리트인 신자들과 ‘근접계층’인 신자들이 수두룩한 교회다. 하여 파워엘리트 경쟁에서 매우 유리한 공간이다. 즉 종교성과 메리토크래시적 경쟁의 열정이 가장 잘 겹쳐지는 곳이 바로 ‘후발’이라는 얘기다.
세계화 시대 헤게모니 세력은 ‘글로벌보수’다. ‘후발’의 경우도 가장 영향력이 강한 이들은 그런 이들이다. 그들은 극우주의를 별로 선호하지 않고, 독재보다는 민주주의를 좋아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자본주의가 가장 잘 활개치는 곳은 파워엘리트 체계가 굳건히 구조화된 민주주의다. 그런데 ‘후발’에는 극우주의적이고 독재적 품성이 강한 파워엘리트들도 적지 않다. 그들이 다른 범주의 파워엘리트들과 엮인 카르텔이 ‘후발’을 하나의 거점으로 삼아 옹아리를 틀고 있다. 하여 파워엘리트 경쟁은 글로벌보수든 극우든, 민주파든 독재파든 서로 뒤엉켜 사적 연줄을 맺으면서 벌어진다.
그런데 윤석렬 정부가 집권하게 되자, 독재지향적 극우가 출세경쟁에서 유리한 변수로 작용했다. 이 체제가 얼마나 갈지 예상할 수 없지만, 출세경쟁에 뛰어든 이들은 그런 약간의 미래조차 가늠할 여지가 없었다. 해서 ‘12.3이후’, 극우주의도 독재도 선호하지도 않았던 많은 이들이 쿠데타 옹호 대열에 가담해 있는 경우가 허다하게 드러났다. 결국 ‘포스트쿠데타의 시간’이 추구하는 ‘더 많은 그리고 더 깊은’ 민주주의로의 길은 파워엘리트 사회를 해체하는 험지를 통과하지 않으면 안 되는 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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