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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메리토크라시의 성소 - 후발대형교회와 21세기 파시즘의 인큐베이션

한국종교문화연구소 2026년 상반기 심포를 위한 내부 집담회가 2026년 3월21일에 연구소 사무실(봉천동)에서 열렸다.

심포지엄 때 발제를 맡은 다섯 명의 연구자가 예비발제를 하고 토론을 나누는 모임이었다. 현장에는 10명 정도가, 온라인으로는 20여명이 함께 했다. 

아래는 나의 발제글이다. 급하게 준비했지만, 미리 생각을 점검해볼 수 있어서, 이 글을 토론 때의 코멘트들을 참고해서 보완해서 최종글을 만들 예정이다. 심포지엄은 5월16일에 열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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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토크라시의 성소

후발대형교회와 21세기 파시즘의 인큐베이션

 

 

 

 

Prologue_ ‘12.3이후’, 두 가지 역사의 분기점

 

‘12.3친위쿠데타는 한국민주주의의 가장 찬란한 분기점이기도 하고 어쩌면 지난 민주화를 향한 모든 노력을 수포로 되돌릴지도 모르는 위험의 분기점이기도 하다. 우선, 친위쿠데타가 실패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듯이, 매우 이례적이다. 국가권력의 가용자원을 압도적으로 장악하고 있는 정부가 주도한 쿠데타인데 그것이 실패로 돌아갔다는 것이다. 더구나, 이른바 내란재판과정에서 어느 정도 명확해졌듯이, 그 준비 과정이 길기도 했고 상당히 용이주도하게 준비된 것이지 않은가. 한데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요인들이 방해를 했다. 우선, 어떤 경로를 통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정권의 가장 강력한 도전세력인 민주당 지도층이 친위쿠데타 준비에 관한 정보를 습득하게 되었고, 매우 잘 대응하고 있었다. 게다가 민주당은 직접민주주의의 경로가 될 수 있는 당원민주주의로의 변화를 매우 빠르게 추진하고 있었기 때문에 적극적인 시민적 지지기반을 갖추고 있었다. 해서 민주당의 대응은, 주류 언론의 무관심에도 불구하고, 시민에게 잘 전달되고 있었다. 이것은 매스미디어의 위상이 격하되고 네트워크미디어의 영향력이 막강해진, 미디어 기술상의 변화와 깊은 연관성이 있다.

또한 윤석렬 정권의 무능함과 부조리함이 민주당 적극 지지층이 아닌 시민 다수에게도 잘 인지되고 있었기에 이른바 기타 시민층이 포함된 반쿠데타 네트워크가 거대하게 형성되어 있었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무엇보다도 팬덤대중이라고 불리는, 여성이 다수를 차지하는 청년층의 정치적 역할이 빛났다. 한편 1987년 이후 민주주의가 대중이 일상에 깊게 스며 있었다는 사실도 중요하게 작용했다. 특히 병사들과 하급장교들 사이에서 민주주의적 아비투스가 잘 체현되어 있었다는 사실은 정권 내 엘리트와 군부 엘리트 사이에서 기획된 친위쿠데타가 하위단위에서 제동이 걸리는 이유가 되었다. 하여 아무리 잘 준비된 친위쿠데타라고 해도, 민주주의가 성장한 사회에서는 실패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는, 새로운 기록을 세계사에 새겨넣게 되었다.

하지만 ‘12.3이후정치적 대중 현상은 민주주의 발전의 시각으로만 설명할 수는 없다. 아니, 21세기 한국 민주주의 자체가 공공성 확장의 측면만을 내포하는 것이 아니다. 공공성의 확장 자체가 비대칭적 양극화의 양상을 포함하고 있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언더클래스 대중은 은폐된 야만의 사각지대로 내몰렸고, 그런 대중은 배제 메커니즘의 알리바이를 제공하기라도 위악적 얼굴(Joker's face)로 세상과 마주하곤 했다.

그렇다면 하이클래스 대중은 어땠을까. 신자유주의적인 극단적 자유주의는 욕망의 인플레이션을 동반했고, 그것을 위해 스스로를 학대하는 경쟁주의에 몰두했다. 자유라는 이름으로 말이다. 문제는 이들의 경쟁주의에 동반되는 사회적 학대와 자기 학대는 심한 스트레스와 자존감 훼손이라는, 상처받은 감정 현상을 야기했다. 일종의 지위불안(status anxiety) 상황에 놓인 그들은 한편에서는 그 지위불안을 극복하기 위한 메리토크라시 경쟁에 몰두하지만, 후방지대에서는 만만한 타자를 발굴하여 그들을 향해 지위복수(status revenge)를 수행한다. 많은 경우 지위복수는 온라인 공간에서 수행된다. 왜냐면 안전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으로 충족되지 않을 때 그들은 오프라인으로 나온다. 특히 퍼실리테이터가 그들의 집단적 지위복수의 로드맵을 제시하고 그것을 동기화하는 서사를 설득력 있게 제공하면 종종 오프라인으로 나온다. 많은 경우 이런 오프라인에서의 지위복수는 극우파시즘의 양상을 띠곤 한다.

주목할 것은 12.3을 계기로 정치적 대중, 특히 하이클래스 청년대중이 온오프라인 공간에서 극우파시스트적으로 주체화되는 양상을 보이기 시작했다. 즉 극우주의적 커밍아웃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Mind Mapping

 

이 글은 여기서 시작된다. 위의 프롤로그에서는 ‘12.3이후라는 시간적 층위가 함축하고 있는, 한국사회를 규정하는 두 가지 상반된 결을 이야기하였는데, 이 글은 또 다른 결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제목이 시사하고 있듯이 메리토크라시가 그 다른 결의 핵심 키워드다. 이는 이제까지 우리에게 익숙한 해석 패러다임과는 다른 양상을 보여준다. 익숙한 패러다임이란 보수 대 진보 혹은 보수 대 개혁 등, 이데올로기적 틀이 지배세력과 도전세력의 권력투쟁을 해석하는 주된 요소라는 것이다.

물론 메리토크라시는 과거제도가 시행되던 고려시대부터 엘리트에 대한 문화자본 형성의 주요 장치로 작동했다. 아니 그보다 훨씬 전, 후기신라의 하대 초입에 시행되었던 독서삼품제로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도 있다. 하지만 2천년대 어간 이후 한국사회의 메리토크라시 체계는 과거와는 질적으로 다른, 새로운 양상을 보여준다.

‘2천년대 어간은 한국사회가 세계화의 질서에 대단히 폭력적으로 편입되기 시작한 바로 그 시기다. 식민지 시대와 한국전쟁을 경유하면서 전근대적 계층 구조의 해체는 돌이킬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 되었다. 이때도 그 양상은 대단히 신속하고 거칠었다. 그리고 산업화로의 빠르고 폭력적인 진입은 새로운 상징권력 형성의 중요한 경로를 제시한 셈이 되었다. 이때 상류층은 학연이, 중하위층은 숙련된 기술이 메리토크라시 체계에서 매우 유용한 경로였다.

한데 2천년대 어간 사회는 매우 새롭게 재구성되기 시작했다. 일단 신자유주의적 무한경쟁의 문화가 강력하게 작동하게 되었다. 문제는 이 경쟁에서 경제적이고 상징적인 자본의 크기가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사실에 있다. 이는 메리토크라시 체계가, 과거와는 달리, 계층이동의 사다리 역할을 거의 하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세습적 메리토크라시(hereditary meritocracy)에 다름 아니다.(대니얼 마코비츠, 엘리트세습The Meritocray Trap) 이것은, 오늘의 메리토크라시가 주로 계층간 이동의 장치가 아니라 계층 내 경쟁의 장치로 작동하고 있음을 뜻한다.

이러한 계층간 이동의 불가능성계층내 이동의 가능성을 정당화하는 것이 학벌시험이라는 공정성의 신화(myth of fairness). 이는 경쟁이 모두에게 평등하게 작동하고 있다는 가정을 전제로 한다. 민주주의 제도는 그러한 평등을 보증하는 제도적 장치다. 이렇게 경쟁을 통한 차등화의 장치가 평등을 추구하는 민주주의에 의해 보증되고 정당화하게 되면, 무한경쟁을 추구하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양편에는 날개가 달린다. 바로 이 점이 21세기 한국의 주된 특징의 하나다. 유럽의 경우는 민주주의가 신자유주의적 무한경쟁 체계에 강력한 저항의 알리바이를 제공했다. 해서 유럽은 신자유주의적 세계화가 주도건을 쥐면서 민주주의는 위축되었다. 한데 한국은, 흥미롭게도, 민주주의가 신자유주의를 보증해주고, 그러한 신자유주의는 민주주의를 강화했던 것이다.

해서 21세기 한국은 난공불락처럼 보였던 보수대연합이 위축되고, 보수와 개혁 진영이 반복적으로 교체되면서 집권세력이 되곤 했다. 한데 전반적 추세로는 보수는 점차 약화되다가 최근 거의 회복할 수 없을 만큼 무너졌다. 반면 개혁파는 더 이상 도전세력이 아니라, 기술적으로 더 잘 준비된 수권능력을 갖춘 세력으로 자리잡는 추세다. 하여 이제 개혁연합은, 집권하든 않든, 정치적 어젠더를 주도하는 세력(agenda-leading groups)이 되었다.

다시 우리의 주요 논점으로 돌아가보자. 공정성의 신화가 잘 작동하는 21세기 한국사회에서, 계층이동의 불가능성은 정당화되었으며, 계층내 경쟁의 가혹함도 정당화되었다. 단지 작은 실수 하나로 전공이 달라지고 대학이 바뀌며, 자격시험의 당락이 결정되었음에도 말이다. 이런 경우 학벌과 시험은 능력을 가늠하는 변별성의 장치로서 거의 무의미하다. 바로 여기서 메리토크라시의 또 다른 요소가 중요하게 작용한다. 그것은 인맥만들기경쟁이다. 이때 인맥은 일방적으로 주는 수직적인 것보다는 서로 거래되는 관계, 즉 수평적 네트워크에 방점이 찍힌다.

이것은 수평적 인맥 형성에 유리한 장(fields)에 진입하는 것이 극도로 중요해졌다는 것을 뜻한다. 반복되는 얘기지만, 명문대 열풍이나 수많은 자격시험 열풍은 그것들이 중요한 능력 검증의 장이 되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것이 인맥형성의 장이기 때문에 일어난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계층내 경쟁의 충분한 자원이 될 수 없다. 그들 간의 경쟁에서 성공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여 성공과 실패의 변별성을 보다 명확하게 해주는 장들이 적극 요구된다. 수평적 인맥만들기에 최적화된 귀족적 사교클럽(exclussive gated community)으로의 가입 자체가 중요한 자원이 되는 사회가 된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후발대형교회를 주목해보자. 나는 이 용어를 21세기 어간에 강남권에서 급성장한 교회를 가리키는 이념형적 개념(ideal-typical concept)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 시기 한국개신교는 급성장이 멈추었을 뿐 아니라, 정체 상태에 있었다. 게다가 사회적으로 퇴행적 범주로 낙인찍힌 종교가 되었다. 이는 개신교 신자들의 교회에 대한 귀속의식의 약화를 동반했다. 해서 이 시기 개신교 교회에는 거대한 이동의 물결이 거세게 일고 있었다. 한데 바로 이런 상황에서 급격한 성장을 구가하여 대형교회에 진입한 교회들이 있었다. 후발대형교회라는 범주는 바로 이런 맥락에서 해석의 대상에 들어오게 된다.

이런 급성장한 교회들은 압도적으로 강남권에서 나타났다. 해서 이 교회들은 자산이 많고 학력이 높으며 상징자본을 더 많이 보유한 이들로 들끓었다. 그것은 이 교회들이 신앙 담론과 제도가 그런 계층친화적으로 형성되었음을 의미한다. 담임목회자는 카리스마적 리더십보다는 수평적 리더십이 요구되었고, 예전 양식도 권위적이고 엄숙한 예배이거나 격정적인 난장 같은 예배보다는 공연적 성격이 강화된 예배로 정착되었다. 교회 건축 양식도 예배 공간 중심의 수직적이고 권위적인 구조에서 벗어나, 마치 백화점과 같은 복합 문화 공간의 형태를 띠었다. 이는 성스러움을 강요하는 건조물이기보다, 대중의 다양한 욕망이 수평적으로 진열되고 소비되는 영적 포스트모던의 장(field)임을 드러내려는 것이다. 또한 굳이 예배 형식을 필요로 하지 않는, 신자들의 다양한 친교공간(사교공간)이 교회 건조물의 도처에 만들어졌다. 이것은 후발대형교회가 종교적 커뮤니티로 작동할 뿐 아니라, 사교의 공간이기도 함을 뜻한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교회의 신앙 담론과 제도적 장치 기저에 정교한 계층적 여과기제(hierarchical filtering)가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신자들의 사적 네트워크와 친교 활동 또한 고도의 전문성을 공유하거나 배타적 여가를 향유할 수 있는 이들 중심으로 편향되어 있으며, 이는 결과적으로 특정 아비투스를 가진 이들만을 수렴하는 선별된 공동체가 되어갔다. 그런 점에서 후발대형교회는 일종의 중상위계층의 아비투스 검문소(habitual checkpoints)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우리가 주지해야 하는 점은 21세기 한국사회의 치열한 인맥만들기 경쟁에서 보다 유리한 인맥의 원리 중 하나는 특정 분야에 한정되기보다는 다양한 분야에 두러 걸쳐 있는 인맥을 보유하는 것이라는 점이다. 또 다른 원리로, 이해관계에 국한해서 얽히는 인맥보다는 감정적 친밀성이 동반된 이해공동체로 엮이는 것이 훨씬 견고한 인맥이라는 점이 있다. 이것은 긴 시간 동안, 무엇보다도 특정한 자기 이해의 주체가 형성되기 이전 단계에서부터 연결된 인맥이 더 견고하며, 특정 이해로 엮이기보다는 봉사나 선교 같은 자기 중심적 이해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는 활동이나 생각으로 엮인 인맥이 더 단단하다는 것을 뜻한다.

그런 점에서 후발대형교회는 더 없이 중요한 인맥공장이다. 거기에는 수천 명에서 수만 명에 이르는, 각 분야의 엘리트로 살아가는 이들이 압도적으로 많다. 또 그들은 주 1회 이상의 공식적 모임을 수십 년 혹은 대를 이어가며 계속해왔다. 또한 무수히 많은 공적, 사적, 친교적 활동을 하고 있고, 그런 소모임들이 때로는 서로 엮이기도 한다. 이런 장은 한국사회에서 존재하지 않는다. 아니 전 세계적으로도 특별하다. 인맥만들기 경쟁이 그 어느 사회보다 치열한 한국사회에서 이보다 더 인맥공장으로 유용한 곳은 없다는 점, 이것이 바로 한국개신교의 독특한 후발대형교회적 독특성이다.

이데올로기적으로 후발대형교회 신자들은 신자유주의에 더 친화적인 이들이 많다. 유학을 다녀왔거나 이중국적을 가진 이들도 대단히 많고, 직업상 국제관계가 많은 이들도 많다. 해서 민족적 귀속의식 못지 않게 세계시민으로서 자긍심도 상대적으로 강한 이들이 많을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런 교회에도 여전히 냉전적 세계질서를 선호하는 이들도 적잖이 있다. 강력한 반공주의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는 생각을 가진 이도 많다. 게다가 이른바 강남좌파같은 진보적 신자들도 꽤 많다. 해서 교회 안에는 이데올로기적으로 미묘한 긴장이 있곤 하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후발대형교회는 글로벌보수주의가 좀더 강한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데올로기적 요소가 신자들의 인맥만들기 경쟁에 미치는 영향을 그리 많지 않다. 더 중요한 것은 경제적 자산이 얼마나 되는지, 그리고 상징자본을 얼마나 갖고 있는지 등이다. 해서 친밀성의 공동체로 엮인 신자들의 네트워크 속에는 이데올로기의 영향력은 그리 높지 않다. 즉 후발대형교회는 경제적상징적 자본 중심의 실용적 연대로 구축한 한국적 파워엘리트의 전형을 보여주는 최적의 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12.3친위쿠데타가 발생했다. 해방 이후 내내, 냉전적 질서가 과잉 규정하는 세계 유일의 사회가 21세기 어간, 치열한 생존경쟁을 하면서 빠르게 전략적 자산 공유 공동체로 재구축되어 갔고, 후발대형교회는 이러한 변화를 추동한 사회적 단위로서 작동하고 있었다. 한데 ‘12.3이후는 규정력이 현저히 축소되었던 이데올로기가 과격하게 소환되었다. 사회는 이데올로기적으로 양분되었고, 중간의 자리는 침묵의 공간이 되었다. 이렇게 다시 소환된 이데올로기의 시간에서 승자는 민주진영이었다. 여기엔 개혁파도 진보파도, 심지어 중도파도 엮였다. 거대한 민주연합이 냉적적 친위쿠데타 세력을 거세시켰다.

해서 이제 ‘12.3이후의 시간은 쿠데타를 도모했던 세력을 청산하는 과제를 떠안는 시간이 되었다. 이른바 내란청산의 시간이 된 것이다. 한데 놀랍게도 내란 가담 세력에는 이데올로기적 극우주의자들만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적어도 그들과 친화적인 이데올로기적 요소가 아주 희미한 이들도 연루되었다. 게다가 내란 청산 정국의 방해자들로 나선 이들 중에도 너무나 많은 이들이 이데올로기에 과잉동원된 이들이 아닌 자들이 무수히 많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21세기 한국 엘리트 형성의 전형인 후발대형교회의 인맥 만들기 경쟁은 이데올로기의 변수를 사소화하며 작동한다. 이렇게 구축된 탈이데올로기적 메리토크라시 네트워크는 이념적 지향과는 무관하게 오직 집단 이익의 보존과 상호 보호라는 폐쇄적 프로그램을 가동시킨다. 이는 쿠데타 세력조차 인맥의 그물망 안에서 보호받게 함으로써, 민주주의를 파시즘적 위기로 몰아넣는다는 비판 속에서도 자기 집단 수호에 집착하는 양상을 보인다.

물론 내란 주범의 청산의 실패가 곧바로 파시즘으로 직결된다는 주장은 다소 단순화된 논리일 수 있다. 하지만 민주주의의 토대 위에 위험한 불씨를 남겨두는 것은 결코 현명한 선택이 아니다. 이것은 보수 진영 내 파시즘적 목소리를 온존시켜, 향후 정치적 공론장을 '민주주의 대 파시즘'이라는 퇴행적 구도에 함몰시킬 위험이 크다. 따라서 후발대형교회식 인맥 경쟁의 위험성을 공론화하는 것은 ‘12.3이후의 한국 사회가 더 많은(the more) 민주주의뿐 아니라 아직 거의 공론화되지 못했던 더 깊은(the deeper) 민주주의를 지향하게 하는 하나의 유의미한 담론적 계기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