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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한기총? 더 무엇을 기대하라고?

[한겨레신문] 칼럼(야! 한국사회) 2011.3.15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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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기총? 더 무엇을 기대하라고?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신임 대표회장의 스캔들을 폭로한 전임 대표회장은 역대 회장 선거가 그래왔다고 고백했다. 그러자 신임 회장을 지지하는 한 간부가 또다른 자폭 발언을 했다. 각 교단들의 총회장 선거에서 수십억원씩 돈을 쓰는 건 다 아는 비밀인데 왜 이번만 문제시하느냐고.

사실 그렇다. 돈선거에 관한 얘기는 이젠 비밀이라고 할 것도 없다. 돈이 건네지는 구체적인 정황에 관한 증언들을 개신교 교계 언저리에 있는 사람들은 흔히 듣는다. 담임목사가 후보가 되면 그이가 속한 교회가 재정을 마련하고 운동을 하며, 그를 지지하는 목사, 장로 집단들이 움직인다. 그러면서 전국에서 모인 총대들이 묵고 있는 숙소를 오가며 돈봉투가 건네진다고 한다. 혹은 좀더 합법적인 루트도 있다. 작은 교회 지원 후원금이나 초청강연회를 통해 거마비를 두둑하게 챙겨주는 경우다. 물론 총대로 선임된 목사와 그 교회만이 선별된다.

한데 좀처럼 이해하기 쉽지 않은 것은 교단 총회장이든 한기총 대표회장이든 대체로 고작 임기 1년이라는 점이다. 1년짜리 대표직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임명권은 어느 정도까지 행사할 수 있을까. 아무래도 ‘얼굴마담’에 지나지 않을 성싶다.

알 법한 이들에게 물었다. 1년짜리 대표직을 위해 그렇게 많은 돈을 치러야 하는 이유를. 그이들의 공통된 대답은 ‘명예’라는 것이다. 대표회장급, 총회장급 인사가 된다는 건 ‘상상할 수 없는’ 상징권력이 부여된다는 설명이다. 또다른 대답으로 각 계파의 파워게임도 주된 이유라고 한다. 이번 한기총 선거도 한 교단이 대표회장을 내기 위해 노력했고, 경쟁 교단에서는 네거티브 공세를 퍼붓고 있는 것이다.

아무튼, 이 일로 대책기구들이 들고일어나 문제를 제기하고, 유력 인사들이 강력한 비판 발언을 하며, 교계 안팎의 언론들이 사건을 파헤치는 기사를 속속 내보내고 있다.

내가 속한 연구소도 대책기구 하나에 참여했고, 나 또한 여러 언론들과 인터뷰를 했다. 분명 지금은 한기총에 대해 통렬한 비판이 필요한 때임이 분명하다. 그런데 여기서 하나 더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별로 가능성은 없어 보이지만, 한기총이나 교단총회에서 금권선거를 지양하는 실질적인 조처들이 취해진다면, 과연 한국 개신교는 더 나아질 것인가. 혹은 한기총이 이참에 해체되었다고 하자. 가맹 교단이나 단체들이 잇따라 탈퇴를 하게 되고, 주요 인사들이 참회를 선언하는 일이 벌어진다면 그렇게 될 수도 있겠다. 가능성이 매우 낮지만 말이다.

한데 그러면 무엇이 달라질까. 깨끗한 선거가 되면 한국 교회가 더 민주화되고, 시민사회와 공공적 가치를 공유하며 한국 사회의 개혁을 위해 일하게 될까. 더 까놓고 말하면, 깨끗한 선거를 하는 조직으로 한기총이나 교단총회가 거듭난다면, 지금처럼 특권 계층 친화적 신앙에서 돌이켜 더 낮은 곳을 향하는 교회로 한 발짝이라도 옮길 수 있을까. 동료 신학자 몇과 목회자 몇, 그리고 성숙한 평신도 몇과 통화를 하면서 문의를 해보았다. 한기총의 해체나 교단총회의 자정에 대해 모두들 공감했음에도, 그들 중 절반 이상은 그렇게 된다고 해도 이것이 중상위 계층 친화적 교회가 낮은 곳으로 향하는 방식으로 체질 개선을 할 가능성은 별로 없을 것이라고 대답했다. 외려 그것은 작은 교회에서 기대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다.

나 또한 그러하다. 작은 교회들에서 신앙의 권위주의가 개혁되고, 사회적 신앙적 공공성에 대해 성찰을 하게 되며, 다른 종교나 시민사회의 이웃들, 그리고 낮은 곳의 ‘낯선’ 이웃들과 친구 되는 운동이 일어나게 되는 것이 훨씬 더 가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