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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후쿠시마 이후’의 한국은 없는가

[한겨레신문] 2011.4.26에 게재된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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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시마 이후’의 한국은 없는가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하게 되었다는 사실이 한반도의 안전에 나쁜 신호일 수 있다는 주장은 의심의 여지없다. 그렇다면 원전은 어떤가? 남한은 세계에서 단위면적당 가장 많은 원자력발전소를 가지고 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따르면 전 세계의 전기 생산량 가운데 원자력이 차지하는 비중은 15% 정도인데, 한국원자력문화재단에 따르면 한국은 약 40%나 된다.

그런데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사고는 원자력발전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가를 각인시켜주었다. 일본은 후쿠시마 제1원전 반경 20킬로 내 지역을 ‘죽음의 땅’으로 선포했다. 그 면적은 서울시 면적의 두 배가 넘는 크기다. 체르노빌 원전사고 이후 구 소련은 반경 30킬로 이내 지역의 출입을 통제했다. 그것은 서울의 다섯 배 가까운 크기다. 방사능의 반감기는, 가장 긴 우라늄238의 경우 45억년이나 된다. 한마디로 지구가 멸망할 때까지 이 땅은 치명적으로 방사능에 오염된 땅이라는 뜻이다.

체르노빌 사고 때 방사능 낙진은 약 1,100킬로 떨어진 곳에서도 검출되었다. 그 거리는 후쿠시마와 한국까지의 거리와 비슷하다. 해서 외국의 여러 나라 정부는 자국민의 한국 방문을 자제할 것을 권한다. 또 한국에서 개최하기로 했던 각종 국제 프로그램 등이 취소되기도 했다. 국제무역을 하는 이들로부터 한국제품의 판매가 한결 어려워졌다는 얘기도 들린다. 이렇게 ‘후쿠시마 이후’ 원전 문제는 경제적 문제로까지 확산되고 있다. 한편 원전이 세워졌거나 세워질 계획에 있는 지역들에서는 주민들의 반대가 거세다. 이것은 사회적 통합을 위해 국가가 지불해야할 사회적 비용이 훨씬 커졌다는 것을 뜻한다.

이렇게 ‘후쿠시마 이후’는 원자력발전의 장밋빛 이데올로기가 허구에 지나지 않다는 생각을 전 인류에게 심어주었다. 그것은 더 이상 화석연료의 폐해를 대체하는 값싸고 안전한 에너지시스템이 아니다. 위험을 계산에 넣지 않은 가격의 허황됨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여실히 보여주었다.

하여 독일 정부는 주정부들과 협의하여 2020년까지 모든 원전의 폐쇄 계획을 표명했다. 일본도 원자력의 비율을 더욱 높이려고 했던 에너지 기본계획의 재수립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후쿠시마 사고 직후 고리의 원전 1호기에서 사고가 일어났다. 하지만 한국의 정부는 30년으로 정해진 수명을 10년 연장하기로 한 지난 2008년의 결정에 어떠한 재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 않다. 더욱이 2030년까지 원자력을 통한 발전비율을 59%까지 올리겠다는 에너지 계획에 어떠한 재고의 움직임도 보이고 있지 않다. 하여 한국 정부에 있어서 ‘후쿠시마 이후’는 아직까지 중요한 에너지 정책의 변수가 아니다. 여전히 ‘후쿠시마 이전’만 존재할 뿐이다.

그렇지만 시민사회가 느끼는 위험의 각성 정도는 빠르게 변하고 있다. 그 동안 몰랐던 방사능 물질들에 대한 지식도 급격히 확산되고 있으며, 핵연료봉이니 원자로 노심이니 냉각재니 가압등수로니 비등수로니, 원전이 어디에 몇 개가 있으며 어디에 새로운 건설 계획이 있는지 등등, 원전에 대한 상당히 전문적인 정보도 폭넓게 유통되고 있다. 하여 ‘후쿠시마 이후’가 한국인의 사고방식에 커다란 변화의 계기가 되고 있음은 의심의 여지없다.

그런데 최근 서태지의 결혼과 이혼 소식이 미친 듯이 사회 전체를 요동치게 한다. 다른 기억을 말소시키면서 말이다. 후쿠시마도, 체르노빌도, 그리고 고리도 우리의 머릿속을 빠른 속도로 빠져나가 허공 속으로 사라진다. 서태지 스캔들 앞에 한국의 시민사회도 ‘후쿠시마 이후’의 기억을 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