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백교회 2002.02.03자 하늘뜻나누기 원고(니케아 히스토리)를 수정 보완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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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도그마주의와 니케아 히스토리 신앙,
그 우울함에 관하여
하느님의 이름으로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거룩한 전쟁을 선포하면서 ‘정의의 십자군 전쟁’을 충동질하던 미 대통령 조지 W. 부시는 2002년 1월 29일 신년 국정연설에서 북한・이란・이라크 등을 ‘악의 축’(axis of evil)이라고 선언했다. 이들은 지난 미국 정권에서는 이른바 ‘깡패 국가’(rogue state)로 분류됐던 나라들이다. ‘깡패 국가’란 표현은 미국 특유의 국제정치 인식에 속하는 ‘죄와 벌’의 세계관을 전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느 정도 세속적 함의가 깔려 있다. 그렇지만 ‘악의 축’이라는 부시의 표현 속엔 그리스도교적인 냄새가 깊이 스며있다. 실제로 1970년대 이후 본격적으로 정치세력화하기 시작한 미국의 보수주의적이고 근본주의적인 기독교 세력은 1990년대 중반 클린턴 정부 집권시에 공화당을 의회 다수당으로 만드는 데 혁혁한 공로를 거두었으며, 부시 정부 출범에도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잘 알려져 있듯이, 부시 또한 이러한 교회의 충실한 일원이기도 하다.
‘깡패 국가’ 운운하는 것은 9.11 테러 사태 이후 지지율 90%에 달하는, 전대미문의 확고한 국민적 기반을 등에 업은 부시 정부의 세계 인식을 반영할 뿐 아니라, 신냉전주의적 정책 기조를 유지하기 위한 국가 내적 홍보술의 일환인 것으로 보인다. 아무튼 이러한 발언은 미국 사회에 배타주의적인 강력한 결속력을 가져왔다. 정치학자로서 미국 전문가인 임성호에 의하면 그것은 대화의 공론장에서 형성된 합의라기보다는 선동적이고 도그마적인 합의의 소산이다. 도그마적 합의란 미국인에게 가장 강력한 사상적 기축의 역할을 해 왔던 그네들 특유의 자유주의 전통이라 할 수 있는데, 이것은 미국의 민주주의 제도를 도덕이나 신앙의 차원에서 절대적이라고 믿는 배타적 신념의 과잉을 낳았다. 미국 사회가 대단히 다중적 성격의 사회이면서도 사회주의나 공산주의 사상 같은 기존 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근원적 도전이 시민사회 내에 뿌리박지 못한 것도 이러한 사상적 기조가 너무 강했기 때문이라고 해석된다. 그런 점에서 도그마적 합의는 일종의 유사종교로서의 미국적 시민종교(civil religion)라고 할 수 있다. 1960년대 이후 일련의 사회적 변화, 특히 인종적 문화적으로 제기된 다원성의 강력한 도전은 이러한 도그마적 자유주의의 퇴조를 가져왔다. 하지만 ‘강한 미국’에 대한 열망과 더불어 등장한 부시는 이러한 도그마주의의 사도였고, 9.11 테러 사태는 미국적 시민종교의 화려한 부활을 만방에 선포하는 세기적 징후였다.
국정 연설에서의 부시는 마치 미국식 자유주의를 대표하는 우드로 윌슨(Thomas Woodrow Wilson)의 화신처럼 보였다. 그것은 미국적 사상의 선교사를 자임하는, 그리하여 악의 세력에 오염되지 않는 미국적 자유주의를 전 세계에 전파하려는 ‘계몽군주’의 모습이다. 그러나 부시 버전의 윌슨주의는 또한 새로운 얼굴을 하고 있다. 클리브 크룩(Clive Crook)에 의하면 부시의 모습은 생각보다는 행동을 우선시하는 잭슨주의자를 연상시킨다고 한다. 전쟁영웅인 그는 행동의 파괴성 때문에 고뇌하고 갈등하는 말론 브란도라기보다는 불의 앞에 자동소총을 서슴없이 꺼내 난사하는 존 웨인의 모습이다(이흥환). 아프간에서, 그리고 아마도 곧 일어날 이라크에서 부시의 총탄은 적을 향해 사정없이 발사되고 있다.
이런 사정이니 전 세계가 이러한 미국의 태도에 우려를 표명하는 것은 결코 의아한 일이 아니다. 이것은 사회주의 국가들의 몰락이 안겨준 기회일 수 있었던 지구적인 반전 평화의 분위기에 심각한 위협이 되고 있다. 물론 이러한 조짐이 지난 10여 년 동안의 상황에서 그리 새로운 것은 아니다. 9.11 테러 이전에도, 인류를 파멸시킬 수 있는 치명적인 세계적 전쟁이 억지되고 평화가 유지되고 있는 것은 오로지 ‘미국의 평화’에, 그 압도적인 힘에 의해 유지되는 우울한 평화에 의해 지구 사회의 행보가 유도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것은 미국의 테러를 전 세계가 감내하는 조건 하에 이룩된 평화였다. 그러니 부시 정부의 모습은 전혀 새로운 것은 못된다. 하지만 부시 정부의 경우는 좀 더 광적이고 좀 더 폭력적이다. 그리고 좀 더 마구잡이식 테러 위협에 감내할 것을 강요하는 모습이며, 일체의 대화와 타협을 무시하는 양상이다.
이러한 현상은 일본에서도 비슷하게 일어나고 있다. 강상중에 의하면,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세계질서를 이끌어왔던 미국 주도하의 냉전적 질서가 지구화의 흐름 속에 급속히 와해되어 가면서 그 혼란에 대해 세계 각 지역에서 국가와 영토에 대한 재영역화가 광범위하게 시도되고 공동체적 동일성에 대한 열망이 극으로 강화되면서 ‘민족주의’가 전 세계를 요동하고 있다고 한다. 특히 그는 고이즈미-아베 정부의 일본의 신보수주의의 대두를 이러한 맥락에서 민족주의적인 공간을 재점유하려는 광적인 반응의 결과라고 본다.
최근 미국에 의해 주도되는 신냉전주의적 기류 또한 한편으로는 강상중이 말한 바의 민족주의 부흥의 맥락에서 예외가 아니라고 생각된다. 그렇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미국은 그것을 자국의 경계를 넘어 국제 질서로 재구축하려 한다는 점에서, 지구제국적 차원으로 확대된 민족주의가 미국의 신냉전주의자들이 꿈꾸는 지구적 이데올로기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이것이 바로 ‘팍스 아메리카나’인 것이다.
그것은 세계 각 지역에 미국적 이해와 네트워킹된 국가 체제들이 미국의 거중 조정 역할 아래 연대하게 됨으로써 실현될 것이다. 이 점에서 일본의 고이즈미-아베 정권은 미국의 가장 적합한 제국적 연대의 파트너일 듯싶다. 아마도 미국의 이해와 가장 밀접하게 연동되어 있는 국가 체제인 한국과 대만은 미-일 간의 제국적인 위계적 연결망의 주변적인 하위 파트너가 되어야 한다는 강력한 압력을 체감하고 있을 것이며, 이는 결코 거부하기 쉽지 않은 요구일 것이다. 그러나 더욱 심각한 것은 그러한 요구를 자신의 이해와 보다 적극적으로 연동시키려는 정치 엘리트 집단이 집권하게 될 경우일 것이다.
아무튼 전 세계적으로 새로운 안정된 질서관, 새로운 이데올로기를 빠르게 구축하려는 운동이 일어난다. 그리고 이러한 운동은 미국 중심의 제국적 질서에 열렬히 순응하는 흐름과 과격하게 적대하는 흐름으로 나뉘고 있으며, 그것은 향후에도 얼마간 계속될 조짐이다. 그런데 여기서 내가 강조하려는 것은 도그마주의적이고 원리주의적인 태도는 바로 이러한 환경에서 가장 잘 자라난다는 사실이다. 물론 종교는 이러한 운동의 가장 훌륭한 파트너임에 분명하다. 이것이 바로 현재의 미국과 일본, 그리고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현상의 근거인 것이다. 강상중은 이런 맥락에서 지금 일본에서 벌어지고 있는 역사 프로젝트를 ‘내셔널 히스토리’ 만들기로 설명한다.
‘스토리’, 즉 ‘이야기’란 집단적 기억을 담아내는 언술이다. 그것은 다양한 요소들을 하나의 줄거리(narrative) 속에 종합함으로써, 다양한 차이들이 서로 연결되어 합류하는 거대한 흐름을 만들어낸다. 여기서 다양한 차이(의 주체)들은 자신의 특별한 경험 속에 함몰되지 않고, 다른 것들과의 만남의 장 속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그러한 만남과 대화 속에서 관계는 집단적 정체성을 형성한다. 이것은 단순히 이야기하기만이 아니라 정체성의 형성을 위한 운동을 통해서 일어난다. 우리는 이것을 ‘사건’이라고 한다. 즉 사건은 이야기와 운동의 상호 엮임을 함께 바라보게 하는 개념인 것이다.
아무튼 복음서들은 바로 그러한 스토리(운동, 사건)의 하나의 실례다. 그런데 우리는 정전화(正典化)된 성서에서만 적어도 네 가지 다른 예수 스토리를 접할 수 있다. 요컨대 예수 이야기란 단지 하나인 줄거리인 것만이 아니라, ‘다양한 여러 기억들’인 것이다.
반면에 ‘히스토리’란 여러 이야기들이 하나로 된, ‘단 하나의 이야기’다. 인종적 차이, 성별 차이, 계급적 차이, 연령별 차이, ... 등, 수많은 ‘다름’을 하나의 공동체적 특성 아래 묶어내는 작업에서 히스토리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때 이러한 운동은 대화적이라기보다는 도그마적 성격을 띤다. 즉 히스토리는 자신의 흐름 속에 포섭되지 않는 것을 타자화하고, 그들을 배제하는 폭력적 과정으로 진행되는 것이다.
이제 다른 것은 더 이상 기억의 재현이 될 수 없다. 단지 하나의 이야기만이 모든 기억들을 대표하기 때문이다. 다른 것은 존재할 필요가 없는 기억이며, 또 존재해서도 안 되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히스토리는 다른 기억을 억압하고 제거하는 운동을 동반한다. 수많은 예수전들이 정전화 과정에서 배제되고 부정된 것처럼 말이다. 우리의 성서는 예수전의 다른 네 가지 판본을 담고 있기에,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 수 있지만.
이러한 히스토리는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그것은 열망해마지 않는 ‘미래’의 시점에서 현재와 과거에 대한 해석을 끌어내는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그리하여 ‘과거-현재-미래’를 잇는 하나의 연결고리가 만들어진다. 이때 그 연결은 바라는 바 미래로부터 역으로 추론된 것이며, 그것은 필연적 과정이라고 해석된다. 이른바 ‘진보’라는 개념은 바로 이러한 맥락에 있다. 이것이 바로 히스토리의 특성이다.
나는 여기서 그리스도교의 히스토리를 이야기하고자 한다. 예수(과거)로부터 교회(현재), 그리고 종말의 때에 도래할 하느님 나라(미래)에 이르는 그리스도교의 히스토리다. 이것이 히스토리인 것은 다른 흐름은 모두 거짓된 것이고 단지 이 흐름만이 유일하게 올바르다고 주장되기 때문이다. 즉 교회 이외의, 다른 예수 운동의 승계 방식이 모두 거짓된, 이단적인 것이라는 주장이다.
내가 주목하는 것은 이런 교회주의적 해석에서 결정적인 계기점이 바로 니케아 공의회라는 점에 있다. 그리스도교를 제국의 종교로 공인한 콘스탄티누스 로마 황제의 주관으로 주후 325년 제국의 주교들이 니케아 시에 모여서 벌인 최초의 전 세계적 교회회의가 니케아 공의회다. 이 회의의 취지는 그리스도에게 성부 하느님이 일시적으로 현현한 것이냐 아니면 본래 그 둘은 하나인 본질이냐를 둘러싼 교회 분쟁을 조정하려는 데 있었다. 그리고 그 결과로 ‘사도신조’가 만들어진다. 성부 하느님과 성자 하느님은 ‘동일본질체’라는 결의를 명시한 신조다. 그리고 분쟁은 한 편의 일방적인 승리로 귀결된다.
왜 다른 주장이 하나로 통합되어야만 했는가? 바로 이 점이 니케아 공의회에서 다룬 교리들의 내용과 그 결과물을 검토하는 것보다 중요하다. 왜냐하면 그 신학적 내용과는 무관하게, 이미 공의회는 누가 승자가 될 것인지를 예측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즉 황제의 비호를 받는 교회 권력이 이 공의회 이후 신학의 주도권을 장악하게 됐던 것이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사도신조의 동일본질론은 ‘신적 존재인 인간’으로 추앙되어왔던 로마 황제 담론과 동일한 구성을 하고 있다. 즉 동요하는 제국 이데올로기를 대체하기에 적합한 담론이 그리스도교의 신학 논쟁에서 승리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니케아 공의회는 사도신조로 대표되는 ‘니케아 히스토리’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회의 내내 황제의 극진한 대접을 받던 주교들은 황제의 화려한 축하 잔치에 초대되었고 커다란 선물을 한아름 움켜쥔 채 고향으로 돌아갔다. 물론 공의회의 결과에 순응한다는 명시적이거나 암묵적인 합의, 그 도그마적인 교리에 공조한다는 약속 하에서 말이다.
그 시기를 전후해서 교회는 전례 없이 많은 특권을 부여받게 된다. 과거 박해 시절 빼앗긴 재산을 되찾게 되었을 뿐 아니라, 이교도들의 재산을 몰수해서 교회의 재산으로 귀속시키게 된다. 교회가 사법권을 가진 특권적 법익체로 부상하게 되고, 제국의 주요한 관직에 임용되기까지 한다. 그리하여 326년 이후 교회는 로마 제국의 가장 확고한 결사체가 되었다. 과거 교회의 재산을 몰수했던 박해자들의 태도는 이제 교회 자신의 것이 되었다.
그리고 탈냉전시대 미국의 재질서화에 관여되어 있는 교회, 권력과 결탁한 교회의 기름기 흐르는 그 얼굴은 바로 니케아 히스토리의 정신적 자식들의 모습이다. 권력과 결탁하여, 안팎으로 타자를 배제하는 존재, 그것이 니케아 히스토리의 산물인 것이다.
한데 교회가 이렇게 타자를 공격하고 배제하는 데 정신이 팔려 있을 때, 그러한 교회를 떠나 불모의 땅 사막으로 탈주했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곳은 도시의 밖이며, 제국 권력의 외부다. 니케아 히스토리가 표상하는 신의 영토를 벗어난 공간이다. 이들 은둔자들은 그렇기에 제국의 담론 외부에서 제국을 볼 수 있는 소수의 그리스도교도들이며, 교회의 논리 외부에서 신을 이야기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신자들이었던 것이다. 그들은 제국의 진리, 교회의 진리에 세뇌되지 않은 존재들이다. 그들은 교회의 눈에는 그리스도를 보지 못한 자들이지만, 진정 그리스도를 사랑한 자들이고, 이웃을 받아들이고 신뢰할 수 있는 자들이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권력의 즐거움이 아니라 예수를 따르는 것의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렇다면 예수를 따르는 것의 즐거움, 그것은 오늘 여기서 어떤 신앙의 이야기를 만드는 일일까? 예수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는 어떤 성찰에 이를 수 있을까? 무엇보다도 우리의 신앙이 하나의 히스토리 아래 모든 것을 흡수해버리려는 운동에 대한 저항이어야 할 것이다. 그것은 물론 신냉전주의적 시대의 흐름에 대한 저항운동을 동반한다. 이러한 실천은 히스토리가 만들어지는 공간 밖에서 가능하다. 제국적 질서는 거기에 동조하는 자들의 제국과 연동된 자신들의 제도로 묶이면서 구체화된다. 그리고 그러한 제도의 효력은 제국의 논리에 순응한 자들의 몸 안에서도, 그들의 정신 속에서까지 작동한다. 그러므로 그러한 제도의 효력이 미치지 않는 공간을 만드는 일, 제국의 공간을 넘어서는 일이 필요하다. 신앙은 바로 그러한 ‘탈’히스토리의 장소를 만드는 실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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