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화쟁문화하카데미'가 주관하는 <종교를 걱정하는 불자와 그리스도인의 대화: 경계넘어, 지금 여기>의 9번의 대화모임 중, 6번째 모임 때 발표한 것이고, 이것을 다듬어 계간잡지 [말과 활]에 게재되었고, 이 대화모임의 원고를 엮어서 낸 책 [지금, 한국의 종교 (가톨릭 개신교 불교, 위기의 시대를 진단하다)](2016)에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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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형사회’의 그리스도교
성형사회
나는 우리사회를 이야기하기 위해 ‘성형사회’라는 레토릭을 사용하고자 한다. ‘성형’은 ‘몸의 변형’을 통한 개개인의 자기관리 행위에 관한 것인데, 이것을 ‘사회’라는 단어와 연결시킴으로써, 성형이라는 행위는 단지 개개인의 선택적인 욕구나 실천을 넘어서 거의 ‘신드롬’이라고 할 만큼 ‘과도한 집단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집단성’이라는 말 속에는 몸을 ‘특정한 방향으로’ 변형시키는 행위가 더 유리한 삶의 선택이라는 합리적/계산적 판단을 다수의 사람들이 공유하고 있다는 뜻이 담겨 있다. 또한 합리적 계산을 넘어서 성형 자체가 이미 사회적 욕망이 되어버린 측면도 있다. 끊임없이 현재 자신의 몸에 대한 불만족에 사로잡혀 ‘더 나은’ 몸을 갖기 위한 어떤 행위들에 매달리고 있다는 것이다.
한데 더 나은 몸이란 도대체 어떤 것일까? 여기에는 사람들이 공유하는 ‘이상적 몸’에 대한 (명시적이든 비명시적이든) 사회적 합의가 전제되어 있다. 그러한 이상적 몸을 갖기 위해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상적인 혹은 이벤트적인 성형행위에 몰두한다. 일상적 실천에는 식사와 운동이 대표적이다. 많은 사람들은 음식의 양을 조절하고, 음식 속에 포함된 칼로리를 계산하면서 식사를 한다. 운동도 성형하고픈 몸의 부위에 맞는 반복적인 동작들로 수행된다. 또한 옷 입는 행위도 일상적인 성형행위에 포함될 수 있다. 왜냐면 사람들이 옷을 선택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옷이 일으키는 시각효과와 연관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일상적인 몸의 자기 관리에 사람들이 혼신을 다해 집착하고 있는 현상은 이제까지 우리사회의 역사에서 전무했고, 또 전 지구적으로도 매우 드물다.
이벤트적 성형행위는 대개 전문가의 코칭(coaching)에 의지하면서 수행된다. 바디트레이너(body-trainer)와 성형전문의(plastic-body doctor)로 대표되는 성형디자이너(plastic body designers)의 영향력은 영성 혹은 지성의 전문가인 성직자나 인문적 지식인보다 월등하다.
한편 이러한 일상적이거나 이벤트적인 성형행위를 수행하는 데는 적지 않은 비용이 필요하다. 하여 사람들은 성형을 위해, 여가시간의 관리만이 아니라, 성형행위를 위한 비용을 충당하려는 ‘더 고된’ 노동도 감수해야 한다. 이렇게 몸의 관리에 집착하자니 교양이나 영성을 위해 사용할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 하여 몸을 지나치게 경시했던 과거 사회의 기형성만큼이나 몸에 몰두하는 성형사회의 기형성도 우리의 현재와 미래를 걱정하게 한다.
병증
다시 말하거니와, 성형사회를 사람들 각자가 강박증에 걸린 것처럼 몸에 집착하는 사회라고 한다면, 한국사회야말로 성형사회라고 불러 마땅하다. 한데 앞에서 개념적 설명을 할 때 이미 시사되었지만, 이 현상은 여성의 몸 집착증에 관한 비아냥거림이 아니다. 한국을 ‘성형대국’이라고 비웃는 외국 언론들의 조롱은 주로 여성의 성형수술만을 주목하는, 다분히 남성 중심적인 평면적 평가에 지나지 않다. 그러나 한국의 성형사회적 몸 집착증은 결코 여성들에 국한된 현상이 아니라 성별을 가리지 않는, 전 사회적 현상이다. 나아가 그것은 사람들 각자의 삶을 디자인하는 개인적 기획의 주된 구성요소이며, 심지어는 사회 자체를 디자인하는 사회적 기획의 구성요소이기도 하다.
서양의 수많은 사상가들은 근대사회가 전근대사회와 구별되는 가장 특징적인 요소를 ‘국경(boundary)의 탄생’으로 보았다. 정치지리학자 프레스콧(John Robert Victor Prescott)에 따르면, 전근대사회(pre-modern society)에는 한 영토와 다른 영토 사이의 경계가 명료하게 나뉘지 않는, 즉 권력의 영향력이 충분히 구현되지 못하는 변경지대(frontier zone)가 있었다. 가령, 전근대사회에서 이른바 애국심은 왕족과 귀족, 그리고 일부 특권적 백성들의 현상이었고, 무수한 대중은 그 체제 권력의 여백인 변경지대에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대부분의 전근대사회에서 여성은 대개 가문에 속한 자로만 간주되고 국가 구성의 주체로 간주되지 않음으로써, 여성 또한 체제의 변경지대에 속한 이들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한데 근대사회는 이러한 변경지대의 대부분을 영토의 일부로 귀속시켰고, 신분이나 성별의 차이를 불문하고 대부분의 백성을 국민으로 흡수하는 데 성공했다.
한데 메를로 퐁티(Maurice Merleau-Ponty)의 말처럼 현상학 이후의 많은 사상가들은 이러한 변경지대의 국경화를 가능하게 한 것을 ‘몸’이라는 레토릭으로 해석했다. 그것은 미셸 푸코로 이어져, 근대사회가 사회적 권력이 개개인에게 각인되게 하는 주된 장소가 바로 ‘몸’이 되었다는 이해를 낳았다. 영토를 통합하게 하는 이념, 가치, 질서 등의 기억이 국민의 몸에 각인됨으로써 근대사회는 사회적 통합(social integration)을 실현할 수 있었다는 얘기다. 심지어 피에르 부르디외(Pierre Bourdieu) 같은 사회학자는 관습, 습관 같은 무의식적인 특성까지도 몸을 매개로 하여 개인을 사회에 통합시키는 체계가 바로 근대사회의 두드러진 특징이라고 해석했다. 요컨대 서양의 많은 사상가들이 ‘몸’이라는 레토릭을 사용하여 사회를 해석하는 것은 여성에 한정된 문제제기가 아니었다.
한데 소비사회가 한층 첨예화되고 자본의 침투 능력이 일상에까지 뻗치게 된 오늘의 사회, 그것을 ‘후기근대사회’라고 한다면, 이 후기근대사회(late-modern society)에는 근대사회보다 몸의 중요성이 훨씬 더 첨예해졌다. 이제 몸에 대한 사회적 권력의 지배력은 더욱 확장되었고 정교해졌다. 뿐만 아니라 후기근대사회는 몸에 대한 권력의 지배가 개인뿐 아니라 사회까지도 병들게 하는 부작용을 일으키고 있는데, 나의 주장은 오늘 한국사회는 이러한 몸을 매개로 하는 개인과 사회의 병증이 과거보다도 매우 심각한 상태일 뿐 아니라 후기근대를 사는 다른 사회보다도 더욱 악성 질환을 일으키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이 글에서 주목하는 것은 남성지배문화가 수반하는 몸의 집착 현상이 일으키는 중증질환에 관한 것이다.
오늘 한국사회의 남자들은 두 유형의 이상적 몸에 대한 사회적 시선 아래 놓여 있다. 하나가 ‘꽃미남형 몸’이라면, 다른 하나는 ‘근육남 형 몸’이다. 미국의 여성주의 사회학자인 수잔 제퍼드(Susan Jeffords)는 1980년대 초 레이건 시대 미국사회에서 ‘하드바디(hard-body)’ 신드롬이 거세게 일어났다고 보면서, 그 상징적인 증후를 ‘람보’에서 찾았다. 그것은 미국이 소비사회로 변모한 1960년대 이후, 종래의 강인한 남성성 대신에 ‘아름다운 남성’에 대한 사회적 욕망이 크게 부상함으로써 남성헤게모니적 보수주의를 고수하는 이들은 남성성의 상처를 받게 되었고, 바로 그러한 상처받은 남성적 보수주의의 반동적 발흥이 하드바디 신드롬으로 나타났다는 해석이다. 여기서 하드바디가 전형적인 산업사회형 남성의 육체성이라면 소프트바디는 소비사회에서 부상한 남성의 육체성이다. 왜냐면 소비사회는 노동하는 몸보다 소비하는 몸이 더 환영받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레이건 시대에는 소비사회로 이행한 1960년대 이후 미국사회에 불어 닥친 남성의 ‘소프트바디(soft-body)’ 열풍에 대한 반동 현상으로 하드바디 신드롬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아니 하드바디 신드롬이 레이건 정권을 낳았다고도 할 수 있다.
이것을 한국사회로 옮겨 해석해보자. 한국에서 산업화 시대는 대략 1960~1990년 사이다. 이 시대에 남성의 이상화된 몸은 새까만 피부의 강인한 근육질의 군인 혹은 노동자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1960년대 초에 나온 대중가요인 〈노란 샤스 입은 사나이〉에는 매력남을 “미남은 아니지만 씩씩한 생김생김”이라고 묘사하고, 1960년대 말의 〈월남에서 돌아온 김 상사〉에서는 “월남에서 돌아온 ‘새카만’ 김 상사”에게 반한 여성이 “그 품에 안겼네.”라고 노래한다. 1970년대의 대표적 대중가수인 남진과 나훈아는 당대를 대표하는 최고의 근육남이었다. 또 이덕화, 최민수, 전영록 등은 1980년대 근육남의 표상이었다.
반면 1990년대, 소비사회로 옮겨가면서 새로운 남성적 몸이 부각된다. 이른바 ‘꽃미남’이 등장한 것이다. 그들은 여성적인 얼굴, 부드러운 몸매, 그리고 사적으로 다정한 남자의 표상으로 구체화된다. 특히 소비사회가 현저히 발전하는 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에 오면 이러한 현상은 훨씬 두드러진다. 일종의 산업화 시대의 전형적인 남성적 몸의 해체적 현상이 소비사회를 풍미했다.
더욱이 이 시기에 페미니즘적 문제제기가 널리 확산되었고, 2000년대에는 남녀의 젠더 이분법에 대한 비판적 인식이 폭넓게 소개되었는데, 이러한 요인들은 위와 같은 해체적 남성의 몸 담론이 청년층 사이에서 커다란 흐름을 형성하게 하였다. 이런 맥락에서 ‘꽃미남’은 소비사회적 자본의 호명으로 부상하였지만, 그 속에는 다른 한편으로 헤게모니적 남성주의를 넘어서려는 성해방주의의 열망이 살짝 덧입혀지기도 하였다. 그것은 소비사회적 재화가 단지 자본주의적 가치의 재생산에 머무르지 않고, 해방의 이상을 위해 기여하도록 재해석하려는 진보론자들의 노고의 산물이다.
하지만 여기서 주지할 것은 근육남의 마초적 이미지가 약화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과거엔 유일한 독점적 이미지였다가, 오늘날에는 이 두 몸의 이미지가 경합하거나 중첩되는 방식으로 나타난다고 하는 게 정확한 지적일 것 같다.
수잔 제퍼드가 주장한 바, 미국에서 극우주의가 판치게 되었던 레이건 시대에 람보 같은 하드바디 열풍이 거세게 불었던 것처럼, 한국에서도 민주화 시대에 상처받은 남성헤게모니적 보수주의를 복권시키려는 무의식적 반작용이 하드바디 열풍을 불러 일으켰다고 해석할 수 있다. 특히 MB 정부와 박근혜 정부에 들어서면 하드바디 열풍이 퇴행적 마초주의와 결합되어 나타나는 일이 훨씬 빈번해졌다.
그리고 이러한 경합은 또 다시 소비사회적 상품으로 변환되어, 마치 소녀스런 청순한 얼굴과 글래머 몸매가 합성된 ‘베이글녀’가 소비되는 것처럼, 여성스런 브이라인 턱선을 한 꽃미남과 식스팩 복근의 짐승남의 이미지가 ‘중첩’된, 이른바 ‘부드러운 마초주의’가 대안적 이미지로 상품화되고 있다.
이와 같이 오늘날 한국사회의 남자들은 꽃미남과 근육남, 그리고 더 최근에는 양자가 합성된 남성성의 몸을 이상적으로 시연한 몇몇 대중스타의 몸들, 그 ‘이상화된 몸들’에 규율되고 있다. 물론 대부분의 남자들은 이러한 몸을 갖는 데 ‘실패’한다. 여기서 실패라고 표현한 것처럼, 거의 모든 남자들은 그런 몸을 갖고 있지 못한 것을 ‘실패한 몸’으로 평가하는 사회적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리고 누군가는 더욱 심한 스트레스와 자존감의 상실로 인한 존재파괴의 병증을 앓고 있다.
구체적인 묘사는 달라지겠지만 이런 사정은 여성도 예외가 아니다. 또 남성과 여성, 이 이분법적 성 에 귀속되지 않는 ‘제3의 성들’의 경우도 ‘강박적인 몸의 집착증상’이 결코 덜하지 않다. 요컨대 한국사회는 성형사회의 질병을 앓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하나 더 이야기하면 이러한 이상적인 것으로 간주된 몸에 대한 사회적인 강박증은 ‘훼손된 것’으로 간주된 몸에 대한 공포증과 불가분 연계되어 있다. 최근 ‘메르스 현상’은 이러한 몸의 강박증이 낳은 사회적 병리성의 허점을 적나라하게 들춰냈다.
훼손된 몸에 대한 사회적 공포증이 과도한 건강염려증을 낳았고 이것은 병원에 대한 대중적 소비를 급증시켰다. 물론 이것은 거의 모든 국민에게 낮은 의료비로 진료와 치료를 가능하게 했던 국내 의료보험체계의 장점과 맞물려 있다. 하지만 낮은 보험수가를 악용한 병원들이 과잉진료를 남발하여 건강염려증을 더욱 부추겼고, 이는 대형병원 중심의 심각한 과잉시설투자로 이어졌으며, 결국 낮은 보험료에도 불구하고 국민 개개인의 의료비 지출은 상승하게 하는 문제를 낳았다. 그리고 고비용의 시설투자가 어려운 중소형병원을 고사시켜 병원의 양극화를 심화시켰다.
한데 메르스의 유행은 대중의 건강염려증 탓에 사회적 공포증상을 필요 이상으로 급상승시켰지만, 흥미롭게도 그것이 꼭 필요하지 않은 병원 방문을 자제하게 함으로써, 과잉지출구조를 가진 병원의 적자를 크게 높인 반면, 국민건강보험공단에게는 엄청난 비용절감효과를 가져다주었다. 이것은 영리를 최고의 가치로 하는 의료체계의 문제를 적나라하게 드러냈고, 공공의료를 확장하는 데 현재의 의료보험체계가 여전히 유용하다는 사실을 드러낸 것이다.
게다가 메르스를 질병으로서 관리하기보다는 그 정치적 효과에 과민했던 정부는 메르스를 질병이 아닌 ‘정치적 메르스’로서 대응한 결과, 문화연구자 이동연의 주장처럼 ‘은폐’의 전략을 사용했고, 그것이 결국 질병으로서의 메르스 관리에 실패하게 했다. 그것은 근본적으로 우리사회의 성형사회적 몸 집착증을 정치화하는 데만 익숙한 정부의 과잉정치적 태도가 낳은 위기인 셈이다.
몸 집착증에 대한 과잉정치화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는 ‘종북 담론’이다. 그것은 북한체제를 훼손된 몸으로 간주하고, 이 훼손된 몸에 오염된 이들은 다른 건강한 이들을 전염시켜 병들게 할 것이라는 논리로, 훼손된 몸의 추종자로 낙인찍은 이들이 사회 속에서 공존하지 못하도록 격리, 배제하는 방식을 통해 국민적 통합을 도모하는 담론 양식이다. 해서 국민 사이에서 남북한을 두고 토론하고 대화하는 공론의 장을 애초부터 봉쇄해 버린 것이 바로 종북 담론이다. 이런 식의 과잉정치화의 달인들이 구축한 정부는 질병조차도 정치도구화하는 태도를 낳았고 그것이 결국 질병관리의 실패를 초래한 결정적인 원인이 되었다.
아무튼, 내가 보기엔, 훼손된 몸에 대한 사회적 공포와 이상적 몸에 대한 사회적 집착이라는 이 야누스적 괴물은 성형사회를 살고 있는 우리들의 집단적인 병리적 증상들의 근본적 원인이다.
(대형)교회, 질병의 숙주 그리고/혹은 질병 자체
이상과 같이 우리 사회가 성형사회적 병증을 앓고 있다는 주장에 이어, 내가 말하고자 두 번째 논지는 이 성형사회적 병증을 야기하고 심화시키며, 병증에 대처하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사회적 장치로서의 한국교회, 특히 대형교회에 관한 것이다.
우선 주지할 것은 몸의 레토릭이, 앞서 보았듯이, 몸을 매개로 해서 개인과 사회가 연계되고, 특히 사회의 이념, 질서, 관습 등이 개인에게 각인되게 하는, 일종의 일상적 권력의 매개장치가 몸이라는 주장을 담고 있는데, 그것과 거의 유사한 개념이 바로 교회라는 사실이다. 실제로 성서는 교회를 설명하기 위해 몸이라는 레토릭을 사용한다.
바울은 〈고린도전서〉에서 교회를 몸으로 묘사함으로써, 교회에 속한 개개인이 마치 몸의 유기체적 지체처럼 연계된 것으로 보았다.(12,27) 바울보다 한 세대 이상 후대에 바울의 이름을 도용한 초기 그리스도교의 주류파 집단으로 포스트바울주의자들의 텍스트들인 〈골로새서〉(2,19)와 〈에베소서〉(1,23)는 바울의 〈고린도전서〉의 논지를 재해석하여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으로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 바울의 친서인 〈고린도전서〉가 교회 구성원 간의 소통을 강조하고 있다면, 후대의 문서들인 〈골로새서〉와 〈에베소서〉는 위계질서에 의한 통합을 주장한다. 후자에서 교회는 머리인 그리스도의 가치에 따라 하위에 편입된 공동체이며, 그 공동체는 그리스도의 가치를 대변하는 리더들을 중심으로 결속되어야 한다고 해석되었다. 하여 교회는 그 내부의 이질성보다는 동질성을 강조하는 담론적 결속체가 된다. 그것은 이상적 몸이 되려면, 병든 부위가 없어야 하고, 혹 그런 부위가 있다면 제거하거나 고쳐서 동질적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의미를 포함한다.
이것은 앞에서 이야기한 바, 성형사회로 해석한 한국사회의 모습과 유사하다. 한국적 성형사회의 병증은 훼손된 몸에 대한 공포증, 그리고 이상화된 몸과 동일해지고자 하는 강박증, 하여 전자를 배제하고 후자에 몰입하는 사회에 대한 집착증을 보였는데, 그것처럼 1세기 말과 2세기 초 주류 그리스도파 집단들의 교회-몸 담론도 그러한 증상을 드러냈다.
한데 오늘의 한국교회, 특히 대형교회는 이 점에서 이들 포스트바울주의적 텍스트의 교회-몸 담론을 더욱 극단화시켰다는 점이 주목된다. 미국에서 일요일 대예배에 참석한 성인교인의 수가 2천 명 이상의 교회를 ‘대형교회’(mega-church)라고 부르는데, 이 기준을 적용하면 한국에는 대형교회가 대략 880개쯤 된다. 이것은 대형교회의 수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미국의 1,200~1,500개와 비교하면 훨씬 적지만, 전체 교회수 대비 대형교회의 비율이 미국의 0.005~0.007%에 비해 한국은 1.7%나 된다. 또 장년이 2만 명 이상인 초대형교회는 미국이 7개인 반면, 한국은 7~8개이다. 요컨대 한국교회는 전 세계에서 가장 대형화된 교회가 교세의 중심을 이루고 있는 사회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거의 모든 대형교회들이 그런 것처럼 한국의 대형교회들은 담임목사가 교회의 절대 1인으로서 카리스마적인 독점적 리더십을 장기간 장악하여, 교회의 가용자원을 성장에 집중 투여함으로써 양적 팽창에 성공한 교회들이다. 하여 중소형 교회의 목사들 가운데는 카리스마적인 독점적 리더십을 가진 이가 소수인 반면, 대형교회는 거의 전부가 그러한 성격의 지도자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 그런 점에서 그들의 캐릭터는 수잔 제퍼드가 말한 하드바디와 닮았다. 그들은 예외 없이 남자이며, 강력한 권력과 공격적인 팽창주의적 선교를 주도하는 마초적 권위주의자이다.
이들이 세우고 대형화시킨 교회들은 대부분 1990년을 전후로 한 시기에 수천 명을 수용하는 대규모 예배당과 거대한 부속건물들을 포함한 종합건조물(들)을 건축하였는데, 그것은 3저 호황으로 자산이 크게 불어난 교인들의 기부금을 교회 재건축에 투자한 결과다. 그리고 그것은 다시 커다란 성장으로 이어졌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예배당의 건축양식인데, 대부분의 재건축 교회당은 가톨릭교회당이나 과거의 개신교교회당들의 긴 직사각형 모양 혹은 십자가 모양과는 달리 반원형 혹은 부채꼴 구조로 바뀌었다. 일견 변형된 고딕 양식의 수직적 예배당 양식이 수평적 양식으로 바뀐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교회당 전면에서 목사 1인을 주목하기가 훨씬 수월한 구조라는 점에서 1인의 카리스마적 위계성이 더욱 강화된 양식이라고 할 수 있다. 또 전면에 대형스크린을 두고, 1인에 집중하는 극장식 조명 시설을 설치함으로써 목사 중심성과 위계성이 더욱 두드러졌다. 한편 반원형 혹은 부채꼴 구조는 마치 미셸 푸코의 판옵티콘(Panopticon)처럼 중앙의 1인이 전체를 감시할 수 있다는 이데올로기를 내포하고 있다. 요컨대 지도자의 힘을 중요시하고 그가 전체를 감시하는 특권적 주체임을 강조하는 구조라는 점에서 재건축된 대형교회들의 양식은 하드바디적 성격이 더욱 효율적으로 강화된 셈이다.
한편 외양으로 보이는 예배당은 대개 변형된 고딕양식을 띠고 있고, 부속건물들은 고딕보다는 그 기능성이 강화된 양식으로 지어졌다. 그것은 일방향적인 고딕적 성격이 강하던 서양의 전통적 교회당보다는 소프트바디적 요소가 두드러졌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앞에서 살핀 것처럼 후기자본주의적인 하드바디와 소프트바디의 결합체 같은 양상을 보인다.
요컨대 대부분의 대형교회들의 경우 교회당의 대형 증축은 교인의 양적 팽창을 더욱 가속화시키는 효과적인 수단이 되었다. 이때 예배당 중심의 단일건물에서 다양한 기능의 부속건물들을 포괄하는 복합건조물로의 전환이 이 증축의 새로운 건조물상의 외형적 변화를 보여준다. 또 예배당이 직사각형의 양식에서 반원형 혹은 부채꼴형으로 변화되었다. 이것은 1인의 절대권력의 수직적 위계성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하드바디적 성격을 더욱 극대화하는 구조물이다. 하여 몸은 변화하였지만, 그 변화는 과거의 힘 중심적이고 통제 중심적인 이념과 가치를 더욱 강화하고 있다는, 그런 점에서 변화보다는 연속성이 강화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즉 교회는 여전히 이질적인 것을 배제하는 감시와 통제의 권위주의적 체제를 옹호하는 질서의 대변자임을 다양한 방식으로 드러내고 있다.
바울, ‘성형사회 너머’의 그리스도적 몸 신앙
여기서 우리는 바울 자신을 좀 더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오늘날 많은 학자들이 인정하듯이, 바울과 포스트바울적 텍스트들 사이에는 생각했던 것보다 차이가 날카롭다.
바울의 공동체인 고린도교회 내에서 벌어진 갈등은 크게 세 가지 양상을 지녔다. 공동체 지도세력 간의 갈등, 부자와 가난한 자로 표상되는 계급적 갈등, 그리고 남자와 여자 간의 갈등이 그것이다. 첫 번째 범주는 말할 것도 없지만, 가난한 자, 특히 (방출)노예나 여성에 대해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그들 모두는 차별 없는 주체라고 가르쳤다. 그 결과 그들 각자가 교회 내에서 발언권을 갖고자 했으며 그것이 교회 내의 갈등으로 드러났다. 이때 바울은 이 갈등을 위계적으로 해소하기보다는 그들 각각은 서로 평등한 연결망으로 엮인 존재들임을 강조하면서, 각기 자기가 선물 받은 은사(카리스마)의 크기를 무기삼아 상대를 압도하는 것이 아닌, 서로를 배려하는 태도로 결속되어야 함을 강조했다. 하여 바울의 교회-몸 담론은, 병든 몸을 배제함으로써 건강한 몸이 구현된다는 포스트바울주의자들의 교회-몸 담론과는 전혀 다른 관점의 몸 담론인 셈이다.
그런데 그리스도교가 역사상 하나의 종교로 탄생한 것은 1세기 말 이후이고 그 초기 국면에 그리스도교운동을 주도한 이들 가운데는 포스트바울주의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바울을 계승하고자 했고 바울의 관점에서 교회를 해석하고자 했으나, 앞서 보았듯이 바울과는 매우 다른 방식의 그리스도의 교회를 구축하고자 했다. 그것은 일종의 권위주의적인, 하드바디적 교회로의 길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경로를 후대의 주류 교회는 더욱 더 차별적이고 배타주의적으로 강화했으며, 특히 오늘의 한국대형교회들은 더 극단적으로 바울과는 다른 길을 가고 있다.
지그문트 바우만은, 오늘의 (대형)교회가 그런 것처럼, 성형사회의 몸 강박증과 훼손된 몸에 대한 공포증은 타자에 대한 적대감을 야기시킬 우려가 크다는 점을 경고했다. 오늘 한국정부가 종북 담론으로 공포마케팅을 벌여왔고 여전히 그런 시도를 끊임없이 벌이고 있듯이, 그리고 한국교회가 성소수자나 무슬림, 그리고 이른바 이단들에 대한 적대적 공격을 가속화하고 있듯이 말이다. 성형사회의 병증이 귀결시키는 결말은 대개 이렇다.
한데 바울은 그러한 길이 아닌, 화해, 배려, 공존의 장이 교회이며, 그것을 위해 각 몸들이 서로 유기체로 엮인 지체들이라는 교회-몸 레토릭을 사용했다. 바로 이것은, 내가 보기엔, 오늘의 그리스도교가 오랜 하드바디적 권위주의 전통을 청산하고 새로 시작할 신앙의 가장 중요한 거점의 하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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