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선] 2020년 01+02월호에 실린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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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달라 마리아, 민중 메시아론의 또 한 명의 주인공
셋 혹은 넷 혹은 다섯 명의 마리아
복음서에 등장하는 여인들 중 이름이 명기된 이들은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마리아’(히브리어 ‘미리암’)라는 이름을 가진 여인은 다섯 명이나 된다. 가장 유명한 마리아는, 모두가 예상한 대로,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다. 하지만 뜻밖에도 복음서를 포함한 제2성서(신약성서) 시대에 그녀는 그리 많이 알려진 이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마태복음〉과 〈루가복음〉에는 그녀의 이름이 각각 8회와 27회 언급되어 제법 많이 사용된 것처럼 보이지만, 〈마태복음〉 13,55을 제외하면 모두 탄생과 어린 시절의 이야기에 집중되어 있다. 〈마태복음〉 13,55은 나자렛 회당에서 예수가 환대받지 못했다는 문맥 속에 포함된 구절로, 사람들이 그의 모친 마리아와 그의 형제들과 누이들을 익히 알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이 말 속에 들어 있는 사람들의 마음은 그를 비범한 이로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것이다. 아무튼 이 구절에서 보듯 예수의 모친 마리아는 예수운동의 기억에서 중요한 존재로 간주되지 않았다.
〈마가복음〉에는 예수의 가족에 대한 얘기 자체가 거의 없다. 위의 〈마태복음〉 13,55의 원본인 〈마가복음〉 6,3 외에, 예수가 자신의 가족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를 시사하는 한 구절에선 그가 가족과 갈등이 깊다는 것이 시사되어 있다. “예수의 가족들이, 예수가 미쳤다는 소문을 듣고서, 그를 붙잡으러 나섰다.”(3,21) 그래서 그런지 예수는 가족과의 인연을 끊는 것이 하느님나라 사역에 필요하다는 주장을 펴기도 한다. “나를 위하여 ......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녀나 논밭을 버린 사람은, ...... 오는 세상에서는 영원한 생명을 받을 것이다.”(10,29~30) 한편 예수의 모친 마리아는 〈요한복음〉과 〈사도행전〉에도 각기 한 번 언급될 뿐이다. 그 외에는 제2성서 어디에도 등장하지 않는다.
두 번째 마리아는 ‘작은 야고보와 요세(Ιωσης)의 어머니 마리아’다. 그녀는 〈마가복음〉에서 십자가 현장에 있었던 예수 측근의 여성 중 한 사람이다.(15,40) 같은 문맥의 〈마태복음〉 27,56에는 ‘야고보와 요셉(Ιωσηφ)의 어머니 마리아’가 나오는데, 이때 요세와 요셉은 같은 인물로 보인다.
흥미롭게도, 나사렛 회당에서 예수가 환대받지 못한 이야기에 나오는 예수의 형제들 중 ‘야고보와 요셉’이 등장한다.(〈마가복음〉 6,3=〈마태복음〉 13,55) 만약 십자가 현장의 ‘작은 야고보와 요셉’이 예수의 형제 ‘야고보와 요셉’과 동일인물이라면 ‘작은 야고보와 요셉의 어머니’는 예수의 어머니와 동일인물이 된다. 만약 일부 학자들의 주장처럼 그의 형제들이 예수의 친형제가 아니라 사촌지간이라면,(1) 그들의 모친 마리아는 예수의 고모일 가능성이 크다. 요컨대 ‘작은 야고보와 요셉의 어머니 마리아’는 예수의 친모이거나 고모일 수도 있고 혹은 다른 여성일 수도 있다.
세 번째 마리아는 ‘요안나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다. 그녀는 〈루가복음〉에서 예수를 안장한 동굴을 찾아간 여자 중 하나로 나오는데 인데,(〈루가복음〉 24,10) 여기서 요안나는 야고보의 누이일 것이다. 그렇다면 십자가 현장의 작은 야고보와 형제로 보이는 요셉도 요안나의 오라비일 것이다. 그렇다면 요안나와 야고보의 어머니는 예수의 어머니이거나 고모일 가능성이 있다. 혹은 또 다른 마리아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네 번째 마리아는 〈요한복음〉의 십자가 현장 이야기에 나오는 글로바(Kleopas)의 아내 마리아다. 글로바는 〈루가복음〉 24,18에도 나오는데, 예기서 그는 예수가 처형당한 이후 절망한 마음을 안고 엠마오로 돌아가는 두 사람 중 하나다. 그렇다면 다른 한 사람은 〈요한복음〉의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일 수도 있지 않을까. 엠마오가 예루살렘에서 12킬로미터 혹은 31킬로미터 거리의 작은 마을로 알려져 있으니, 〈요한복음〉의 글로바가 〈루가복음〉의 글로바와 같은 인물이라면 그의 아내는 갈릴래아에서부터 예수를 따른 여성은 아닐 것이다.
그리고 다섯 번째 마리아가 저 유명한 막달라 마리아다. 많은 마리아 중 네 복음서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여성이고, 그 역할도 의미심장하다. 심지어 이집트의 나그함마디(Nag Hammadi)(2)에서 발굴된 외경 문서들에서는 특별한 위상을 가진 이로 묘사되어 있다. 〈토마복음〉에는 베드로보다도 위대한 사도, 사도 중의 사도로 언급되어 있고, 〈마리아복음〉도 예수의 가르침을 가장 잘 이해한 사도로 추앙되고 있다. 또 〈빌립복음〉에는 예수의 ‘동반자’(코이노노스, κοινωνος)로 묘사되어 있는데, 이 단어는 예수가 사랑한 파트너로도 해석될 수 있는 표현이다. 그러므로 이 여성에 대해서는 특별히 이야기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 글은 주로 정전 텍스트를 중심으로 막달라 마리아에 관해 이야기해 보겠다.
정리하면 복음서 속의 마리아는 세 명 혹은 네 명 혹은 다섯 명이 등장한다.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예수의 측근이라는 점이다. 하지만 동시대의 여성들, 특히 하층민의 여성들은 이름을 갖고 있지 못하는 경우가 흔했다. 해서 어쩌면 복음서에 등장하는 예수의 측근들인 여성들을 공동체에선 그녀 가족의 이름과 연결시켜서 ‘아무개의 마리아’라고 불렀다. 만약 가족이 알려지지 않은 이는 출신지명을 연결해서 불렀다. 막달라 마리아는 후자에 속한다.
《82년생 김지영》 이후 한국사회에서는 가부장제의 질곡에 매인 여성들을 ‘김지영’으로 부르곤 했다. 이때 그 이름을 부르는 이와 그렇게 불린 이는 가부장제 질서가 야기하는 고통에 공감하는 감정공동체로 에 엮여 있다. 어쩌면 그런 것처럼 마리아도 이름 없는 여성에게 부여된 이름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그녀를 그녀의 아버지나 남편의 여자로 표기하는 대신, 이름으로 부르는 것에 공감하는 공동체의 기호일지도 모른다.
자 이제, 이들 여러 마리아들 중 가장 중요한 인물로 묘사된 막달라 마리아에 대한 얘기를 시작해보자.
갈릴래아에서의 막달라 마리아
말했듯이,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는 탄생과 어린 시절의 이야기에 집중적으로 등장한다. 반면,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의 죽음과 부활 이야기에 집중되어 있다. 반면 갈릴래아에서 예수의 활동에 그녀는 거의 얽혀 있지 않은 것처럼 묘사된다. 만약 작은 야고보와 요셉의 어머니 마리아가 예수의 친모라고 한다면 그녀도 갈릴래아에서부터 예수와 함께 한 경력이 있었을 터인데, 〈마가복음〉에선 예수와 대립하는 이로만 등장한다. 막달라 마리아도 갈릴래아에서부터 예수와 함께 활동한 동역자이지만 전혀 언급되지 않다가 십자가 현장에 함께 한 여성 목록에 등장한다. 그리고 그때서야 그녀도 갈릴래아에서부터 예수와 함께 했음을 말한다.
〈마가복음〉은 민중이 주도한 예수 기억을 채록한 문서다. 그 민중의 기억 목록에는 여러 명의 여성들이 있었다. 그들 중 다수는 예수를 지지한 이들이고 예수의 수혜를 입은 이들이다. 하지만 이 민중의 복음서는 예수의 최측근 인사에 여성을 포함시키는 것에 대해서는 꺼려했던 것 같다. 이런 사정은 다른 복음서들에도 그다지 다르지 않다. 그런 탓인지 갈릴래아에서 예수의 최측근 인사의 한 사람으로 막달라 마리아가 수행한 역할에 관한 정보는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한데 여기서 주목되는 것은 부정적 기억이 하나 남겨져 있다는 점이다. 〈마가복음〉에 덧붙여진 후대의 기록인 16,9 이하(3)에서 그녀는 ‘일곱 악령을 쫓아내 준 여자’라고 묘사되어 있다. 〈루가복음〉도 그녀를 “일곱 악령이 떨어져 나간” 이력을 가졌다고 얘기하는 것(8,2)을 보면, 일곱 악령 운운하는 얘기는 제법 알려졌던 것 같다. 복음서에서 ‘악령 들림’이라는 것은 대개 정신적 질환을 가리키는 표현으로 보인다. ‘일곱’이라는 숫자는 단순히 자연수 7을 의미하지는 않는 것 같다. 〈열왕기하〉 8,1~6에는 엘리사 예언자가 한 여성의 아들을 소생시킨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 이야기는 ‘7년 동안의 기근’으로 피페해진 대중의 절박한 현실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또 〈묵시록〉에는 일곱 봉인, 일곱 나팔, 일곱 대접 등 죽음보다 더한 재앙이 끝도 없이 이어진다. 일곱 악령도 그런 뉘앙스로 해석해 본다면 누구도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중증의 정신적 장애를 가진 여성을 예수가 구원했다는 의미의 구절이겠다.
이런 장애가 차별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되지만, 그럼에도 장애 경력을 굳이 소개하는 것은 큰 실례다. 설사 그녀가 그런 중중의 정신질환 경력의 여성이었다고 해도 예수의 측근 인사가 된 이상 그것을 굳이 명시하는 것은 지나치다. 실제로 예수의 어느 추종자도 이런 식으로 소개되지 않았다. 가령 세관원이었다는 제자, 선천적 소경인 거렁뱅이였다는 제자가 있기는 하지만 그런 전력이 ‘악령 들림’으로 묘사되지는 않았다. 그런 점에서 막달라 마리아에게만 유독 이 얘기를 하는 것은 이례적이고 불명예스럽다. 도대체 왜 그렇게 했을까.
그녀의 치명적 병력이 예수의 놀라운 행적을 두드러지게 했다는 설명은 개연성이 없다. 만약 그런 의도였다면 그녀의 치유사건에 대해 상세히 묘사했을 것이다. 〈마가복음〉 확장판에서는 예수 부활의 증언자로 그녀를 언급할 때 그녀가 그런 여성이었다는 얘길 넣었고, 〈루가복음〉에선 갈릴래아에서 예수의 사역에 동행한 남녀 추종자들을 언급하면서 여성 추종자들에게만 ‘악령과 질병에서 고침받은 이들’이라는 표현을 첨가하고, 특히 막달라 마리아는 ‘일곱 악령에 들렸던 이’임을 강조하고 있다. 이렇게 여성 추종자들을 격하시키면서, 그녀를 특별히 더 심하게 격하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성을 격하하는 것은 여성 지도자를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고, 그중에서도 막달라 마리아를 가장 심하게 모독해야 했던 것은 그녀가 그만큼 중요한 인물임을 반증하는 것이겠다.
십자가 사건과 부활사건에서의 막달라 마리아
앞에서 말한 것처럼 막달라 마리아는 십자가 사건과 부활 사건에 집중적으로 등장한다. 막달라 마리아를 특별히 격하시키고 있음에도 막달라 마리아를 비롯한 몇 명의 여성들이 예수 기억에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이 두 사건의 유일한 증언자로 등장하는 것은 너무나 명백한 사실로 알려져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위의 표에서 보듯, 네 복음서의 십자가 사건과 부활 사건의 증인들 중 하나를 제외한 모든 텍스트에 공히 등장하는 이는 막달라 마리아다. 그것은 그녀가 이 사건들의 핵심 증인임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녀가 모든 예수 추종자인 여성의 대표자임을 시사한다.
십자가 사건은 당시 예수를 추종하거나 지지를 표한 모든 사람들의 존재가 바닥까지 무너져버린 사건이었다. 움직일 수도 숨을 쉴 수도 없었다. 특히 추종자들에게는 깊은 트라우마로 남았다. 해서 얼마 후 그들은 자신들이 오해하고 실수를 범했던 것들 하나하나를 되새기며 뼈저리게 스스로에게 상처를 가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예수가 죽임당하는 일에 일조한 배신자였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자기 자신이 배신자라는 깊은 낙인을 영혼에 새기지 않으면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겠다.
그런 상처의 근원이 십자가 사건이다. 해서 그 현장에, 추종자들 아무도 갈 수 없었다. 그 자리가 공포스럽기도 했지만, 실은 그것을 볼 용기가 없었다는 게 더 정직한 말인지 모르겠다. 어쩌면 가슴이 무너져서 자리에서 일어설 힘도 없었는지도 모른다.
전에 안티파스에게 체포된 세례자 요한이 참수되었다는 소식을 들을 때도 그랬다. 아마도 성문 망루에 그의 목이 걸려 있었을 것이다. 그래도 그땐 그 순간에도 정신줄 놓지 않은 이가 있었다. 예수였다. 그는 갈릴래아로 가서, 흩어진 옛 동료들을 다시 규합했다. 그렇게 예수와 동료들은 요한의 운동을 계승했다. 그리고 사람들은 예수가 부활한 요한이라고 믿었다. 그리고 얼마 후 예수는 부활한 요한이 아니라 요한이 메시아라고 증언한 이로서 알려졌다.
한데 그 예수도 적에게 잡히고 모진 고문과 모욕을 당하다 십자가형으로 처형되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그 죽임의 자리에서 정신줄 놓지 않고 그 현장을 지킨 이들이 있었다. 갈릴래아에서부터 언제나 그이 주위에 함께 했던 몇몇 여성들이다. 처형되는 이의 측근이라는 것이 알려진다면 그이도 즉결처형이 될 수도 있는 자리였음에도, 여자였기에 남들보다 더 눈에 띄었을 테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마지막을 함께 하고자 그 자리에 갔다. 그리고 그들의 중심에는 막달라 마리아가 있었다. 예수가 그랬던 것처럼 그녀는 동료들을 독려해서 그 자리에 함께 했다. 어쩌면 그런 모습에 감탄한 이들이 있었을 것이다. 해서 나그 함마디에서 발굴된 문서들처럼 일단의 사람들은 그런 막달라 마리아를 따르게 되었을 것이다. 아무튼 그녀로 인해 예수의 십자가 사건에 관한 증언에서 아무도 그녀를 배제시킬 수는 없게 되었다.
그리고 안식일이 되고 그 이튿날 아침, 막달라 마리아는 다른 여성 몇과 그이가 안장된 동굴로 갔다. 물론 거기서도 병사들이 있었을 텐데, 웬일인지 병사들은 없고 동굴을 가로막고 있던 돌도 비켜져 있었다.(그 내막에 대해서는 다음 강의에서 다룰 예정이다.) 그 안에는 있어야 할 예수의 시신이 없었고, 한 청년이 그 자리에 앉아서 여자들에게 소식을 전해주었다. 그이가 부활했다고.
이렇게 해서 좌절된 희망은 다시 살아났다. 한데 그 사건 유포의 진원지도 바로 막달라 마리아를 위시한 몇 명의 여자들이다. 이 애기도 역시 대중에게 널리 알려졌다. 해서 대중은 부활 얘기에서도 그녀들을 뺄 수 없었다.
다만 여기에도 격하 혹은 변형이 일어난다. 〈마가복음〉에선 그녀들이 공포에 휩싸여 벌벌 떨며 도망쳤고 아무 말도 못했다고 전한다. 유일한 목격자들이 말하지 못했다면 도대체 누가 그것 전했단 말인가. 타당성이 없는 얘기임에도 복음서의 구술자들은 그렇게 그녀들을 격하했다. 〈마가복음〉 확장판에서도 그녀들의 말을 아무도 믿지 않았다는 얘기가 더해진다. 〈루가복음〉도 그녀들의 말을 아무도 믿지 않았다고 말하고 있다. 〈요한복음〉은 막달라 마리아가 최초의 목격자임에도 그녀는 유력한 두 명의 남자 제자들에게 그 소식을 중계하는 자로만 묘사된다. 베드로와 주가 사랑한 제자가 달려갔고, 그들에게 최초 목격자의 지위를 부여한 것이다. 마치 군인사회에서 정찰병이 탐지한 것을 대장이 자기 명의로 최종 발표하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이야기의 변형은 지극히 부자연스럽다.
〈마가복음〉은 예수의 부활사건이 갈릴래아에서 일어날 것임을 시사했다. 반면 〈루가복음〉은 예루살렘에서 그 사건이 계속될 것임을 주장했다. 요컨대 갈릴래아의 예수파 오클로스 공동체나 예루살렘의 사도공동체 모두 자신들의 뿌리를 부활사건에서 찾고 있다. 한데 그 사건의 최초 증언자는 막달라 마리아를 필두로 하는 몇 명의 여성 제자들였다. 그 사실을, 두 공동체 모두 불편해하면서도, 전혀 배제할 수는 없었다. 그만큼 그것은 많은 사람들에게 부정할 수 없는 펙트였다.
하나의 상상―막달라 마리아, 향유 부은 여인, 마르다의 자매 마리아, 셋은 하나
예수께서 베다니에서 나병 환자였던 시몬의 집에 머무실 때에, 음식을 잡수시고 계시는데, 한 여자가 매우 값진 순수한 나드 향유 한 옥합을 가지고 와서, 그 옥합을 깨뜨리고, 향유를 예수의 머리에 부었다. 그런데 몇몇 사람이 화를 내면서 자기들끼리 말하였다. “어찌하여 향유를 이렇게 허비하는가? 이 향유는 삼백 데나리온 이상에 팔아서, 그 돈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줄 수 있었겠다!” 그리고는 그 여자를 나무랐다.
그러나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가만두어라. 왜 그를 괴롭히느냐? 그는 내게 아름다운 일을 했다. 가난한 사람들은 늘 너희와 함께 있으니, 언제든지 너희가 하려고만 하면, 그들을 도울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여자는,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였다. 곧 내 몸에 향유를 부어서, 내 장례를 위하여 할 일을 미리 한 셈이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온 세상 어디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마다, 이 여자가 한 일도 전해져서, 사람들이 이 여자를 기억하게 될 것이다.”
―〈마가복음〉 14,3~9
예루살렘 근처의 베다니(4)의 한 집에서 일어난 일이다. 거기서 한 여인이 예수에게 고가의 향유를 부었다. 〈마가복음〉과 〈마태복음〉은 그녀를 익명으로 남겨둔다. 그리고 그 집은 나병환자 시몬의 집이었다. 한편 〈요한복음〉에는 그녀가 마르다(Μαρθας)의 자매이고 라자로(Λαζαρος)의 누이인 마리아이고, 그들의 집도 베다니에 있다고 전한다.(〈요한복음〉 11장) 그렇다면 이 두 이야기는 하나로 합쳐질 수 있을까.
한데 두 텍스트의 연결고리를 끊는 것은 나병환자 시몬과 마르다・마리아의 오라비 라자로다. 이 둘은 한 인물이라고 보기엔 이름이 너무나 판이하다. 하지만 전승과정에서 사람들이 시몬과 라자로를 헷갈렸을 가능성이 없지는 않다. 〈루가복음〉 16,19~31에는 거지이고 나병환자인 라자로가 등장한다. 나병환자 시몬과 나병환자 라자로, 이 둘 사이의 혼돈이 생겼을 수 있고, 여기에 이 시몬과 마르다・마리아의 오라비 라자로가 베다니 사람이라는 점이 오버랩되면서, 향유 부은 여인 이야기의 장소가 각기 시몬과 라자로의 집으로 다르게 전해졌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한편 이야기의 맥락을 추정해 보면, 어떤 집에서 한 여성이 예수의 발/머리에 향유를 붓는 일은 그녀가 예수와 익히 잘 아는 사이가 아니면 상상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예수께서는 마르다와 그의 자매와 나사로를 사랑하셨다.”는 구절(〈요한복음〉 11,5)로 보건대 이 사건이 벌어진 집은 마르다・마리아・라자로 남매의 집이었다고 보는 게 더 개연성이 있을 것 같다.
여기에 마르다・마리아 자매에 관한 〈루가복음〉과 〈요한복음〉의 이야기를 연결시켜 보자. 두 텍스트는 각기 다른 계보의 기억 루트로 전해진 이야기임에도 마르다와 마리아 자매의 캐릭터가 묘하게 겹친다. 〈루가복음〉을 보면 마르다는 귀한 손님을 접대하는 집주인으로 의전을 주도하는 모습을 가진 이인 반면, 마리아는 그런 책임의식이 없이 예수의 발치에서 그의 말을 경청하는 데 관심이 있다. 즉 마르다는 공적인 책임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여성인 반면, 마리아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적극적이다. 또 〈요한복음〉에서 마르다는 장례식 의전을 책임지고 이끄는 이로서, 뒤늦게 방문한 예수와의 대화도 마치 지헤문답을 나누듯이 대화를 나눈다. 오라비가 죽은 직후임에도 그녀는 지극히 침착하게, 손님인 예수에게 최선을 다해 접대한다. 반면 마리아는 예수가 왔다는 소식을 듣자 다짜고짜 달려나가 그 앞에서 울고불고 한다. 마르다와 얘기할 땐 지혜문답처럼 애기하던 예수가 마리아의 통곡 앞에선 눈물을 흘린다. 이렇게 두 복음서를 꿰뚫는 마르다와 마리아의 전형성이 엿보이고, 그런 다른 캐릭터의 사람들과 만날 때 예수는 다르게 그녀들과 엮인다.
그런데 이런 마리아가 예수의 발/머리에 향유를 붓고 자기의 머리칼로 닦아내는 모습을 상상해보자. 너무나 잘 어우러지지 않은가. 해서 안병무는, 마르다의 자매 마리아와 예수에게 향유 붓는 여자를 연결시키지 않고 있는 〈마가복음〉-〈마태복음〉과는 달리, 그 둘이 동일인이라고 말하는 〈요한복음〉이 더 역사적으로 개연성이 있지 않느냐고 주장한다. 이때 안병무의 상상은, 예수의 발치에서 그의 말을 경청하기를 좋아하는 여자, 그가 오자마자 달려가서 그이를 붙잡고 통곡하는 여자, 그의 발/머리에 값비싼 향유를 붓고 쓰다듬는 여자, 그리고 그런 마리아를 번번이 두둔하는 예수, 이것은 그들이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아니고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라고 주장하는 데까지 이른다.
예수는 서민 노동자의 거의 일년치 품삯에 해당하는 고가의 향유를 자기의 발/머리에 쏟아붓는 여자를 두둔한다. 그것을 본 주위 사람들의 말대로 그건 의당 가난한 사람을 위해 써야 한다. 그럼에도 예수는 그녀를 두둔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그녀는 나의 장례를 예비한 행동이다.’
안병무에 의하면 예수는 예루살렘에서 자신의 목숨을 내놓고자 했다. 이때 그는 전태일을 상상하고 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해보았지만 바위에 계란 던지기 같은 절망감 속에서 이제 남은 것은 자기 목숨을 바치는 것뿐이라고 생각하고 그것을 실행에 옮겼다. 그렇게 예수도 예루살렘에 올라왔다는 것이다. 몇 번이고 그 말을 측근 제자들에게 할 때, 하느님의 심판의 날의 영광스런 승리를 꿈꾸고 있는 제자들에게 그것은 죽음으로써만 얻을 수 있는 역설적 승리임을 경각시키려는 것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끊임없이 회의하는 자기 자신에 대한 당근질과 같은 것이었다.
한데 두려웠다. 그 길은 자신의 길이 아니라고 신에게 항변하기도 했고 잘못된 전략이 아닌가 라고 스스로에게 문제를 던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그는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 ‘내가 죽어야 한다. 나를 죽이고 가야 한다. 그래야 신이 이 세상의 부조리함을 알아줄지 모르겠고,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무심함을 뉘우치지 않을 것인가.’ 그럼에도 끊임없이 솟구치는 두려움과 회의, 그는 그런 상념과 싸우고 있었다.
그런데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이 어느 날, 자기 발/머리에 그렇게 아끼던 향유를 부었다. 오직 예수만이 알아차렸다. 그녀가 무엇을 말하려 하는지를 말이다. 자신이 사랑하는 그이가 죽지 않기를 누구보다도 간절히 갈망했을 그녀는 폐를 찌르는 것 같은 아픔을 뒤로 하고 그의 발에, 그의 머리에 귀한 향유를 부었다. 이것은 나의 장례를 예비한 행동이다. 아무도 몰랐지만, 비통함을 억지로 견뎌내며 연인의 장례를 치르는 퍼포먼스를 그는 알아차렸다. 하여 그녀 덕에 그 길을 갔다.
여기서 안병무는 상상력은 빛을 발한다. 도대체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을 죽음의 이야기를 가장 먼저 알 수 있는 이는 누구란 말인가. 또 마지막 순간까지 두려워하고 회의하고 동요하는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이는 누가란 말인가. 사랑하는 사이가 아니고서는 알 수 없는 것 아닌가. 또 그녀가 영혼이 찢어지도록 고통스러워하면서 했던 이 퍼포먼스가 자신의 장례를 예비한 행동이라는 것을, 무섭고 힘겹겠지만 그게 대의라면 감당하라는 무언의 소리를 읽어낼 수 있다는 것은, 그 둘이 사랑하는 사이어야 생각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안병무는 그렇게 생각했다.
여기서 안병무가 주장하고 싶은 것은, 예수의 가장 숭고한 사건인 자기 죽임의 사건은 그의 독백적 행위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와 서로 사랑하는 두 사람이 함께 절규하며 발견해 간 것이라는 얘기다. 이와 같이 서로 공감하고 서로 나눔으로써 이룩되는 구원사건들은 예수의 다른 텍스트들에 대한 해석들에서도 나타난다. 하여 안병무는 다시 한번 이 텍스트 해석에서도 민중 메시아론의 기조를 읽어낸다. 예수만도 아니고 민중만도 아닌, 그 둘이 함께 함으로써 구현되는 구원사건을.
여기서 안병무는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십자가 사건의 목격자, 그리고 부활 사건의 목격자가 막달라 마리아라는, 복음서들이 더는 숨길 수 없었던 이 사실을 향유 부은 여인 마리아에 대한 해석과 연결시킨다. 예수를 예수 되게 했던 그 사건의 공동주연은 예수와 막달라 마리아다. 그리고 그녀는 향유를 부은 여인이었고, 마르다・라자로와 남매인 마리아였다.
그러나, 막달라 마리아는 그녀가 아니다
한데 안병무의 가설에는 중대한 결함이 있다. 막달라 마리아라는 호칭에서 보듯, 그녀는 갈릴래아 호수 서편 포구에 있는 읍락 출신이다. 막달라 마리아라는 호칭은 너무나 견고하게 알려져 있으니 다른 장소와 그녀를 연결시키는 것은 무리하다. 더구나 그녀는 가족의 이름과 연계시켜 불릴 만큼 사람들이 익히 알고 있는 가족이 없다. 아마도 그녀는 가족과 헤어짐으로써 예수를 만날 수 있었던 사람일 것이다.
한데 예수에게 향유를 부은 여자는 베다니 사람이다. 예루살렘에서 2.4킬로미터 거리의 마을이다.(〈요한복음〉 11,18) 요컨대 예루살렘에서 지척에 있는 소읍이라는 얘기다. 마리아・마르다・라자로 남매 설화에서 ‘베다니’라는 지명은 그들의 설화들을 싣고 있는 〈루가복음〉과 〈요한복음〉에서 명확하게 명시되어 있다. 그러므로 막달라 마리아와 마르다의 자매 마리아는 결코 동일인으로 묶을 수 없다.
게다가 안병무의 상상력에는 섹슈얼리티의 관점에서 불온함도 있다. 즉 〈빌립복음〉처럼 여성 동반자(코이노노스)를 성애적 관계에 있는 이로 가정하는 것의 불온함이다.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의 지근거리의 동역자이고 베드로보다 결코 부족하지 않은 최고 지도자였다는 가정을 가족관계로 환원시키는 것의 문제다. 베드로를 최고의 제자로 얘기하는 이들 누구도 그가 예수의 연인이었다고 상상하지 않는다. 하지만 막달라 마리아를 베드로에 비견되는, 혹은 더 위대한 제자로 얘기할 때 왜 연인관계라는 별도의 연결망이 가정되어야 하는가.
앞서 십자가 사건과 부활 사건에서 막달라 마리아가 언급될 때 동시에 여러 마리아들이, 그들이 동일인으로 보이기도 하고 다른 사람으로 보이기도 하는 여러 여성들과 함께 등장한다는 것은, 막달라 마리아가 여성 사역자들의 지도자였다는 것을 시사한다. 그런 점에서 향유 부은 지도자인 마리아도 막달라 마리아의 수행자였을 것이라면,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의 여성 추종자들의 대표로, 예수사건의 중심 역할을 담당한 인물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예수를 그의 제자들과 주와 객으로 분리할 수 없듯이, 또 예수를 그 주변의 대중인 오클로스와 분리할 수 없듯이, 막달라 마리아도 그녀를 추종한 여성 수행자들과 분리할 수 없다. 그들은 서로 엮임으로써 예수사건의 주역이 되었다.
한편, 요한이 체포되었을 때 그의 동반자였던 예수가 다른 동반자들을 규합해서 요한의 하느님나라 운동을 계승했고, 사람들은 그것을 요한이 부활한 것으로 이해했다는 것을 상기하자. 예수도 죽었지만, 부활했다. 그리고 그 부활 사건의 중심에 막달라 마리아가 있다. 그러니까 요한의 계승자 예수가 했던 그 역할을 예수의 계승자 막달라 마리아가 수행하고 있는 것, 이것이 우리가 복원할 수 있는 예수운동의 한 단면임을 주지할 필요가 있다. □
[각주]
(1) 예수가 부친이라고 알려진 요셉의 아들로 불리는 대신 마리아의 아들로 불렸다는 것은 부친이 일찍 사망해서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졌거나 혹은 아예 없었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기에, 그의 형제들과 누이들로 알려진 이들은 친형제, 친누이가 아닐 수도 있다는 주장이다. 만약 부친 요셉이 그 지역으로 이주해온 사람이 아니라면 그의 확대가족들은 나자렛에 거주했을 것이기에 고모일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팔레스티나는 일반적으로 족외혼 관행이 있다는 점에서 마리아는 이곳 출신자가 아닐 수 있기에 이모가 그 마을에 살았을 것 같지는 않으므로 이모(들)의 자녀는 아닐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부친이 아예 없었다면, 가령 강간 등으로 인해 태어난 아이라면 형제나 누이들은 어머니 마리아가 결혼해서 낳은 자녀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특히 〈마태복음〉에 따르면 예수 탄생 시기인 기원전 4년은 전란의 시기였기에 많은 여성들이 원하지 않은 임신을 했을 수 있다.
(2) 이집트의 나일강 중류지역의 도시로, 이곳에서 곱트어로 된 문서들이 다량 발굴되었는데, 특히 지중해 남부의 미스티시즘 경향(흔히 영지주의라고 불렀던)의 여러 문서들이 포함되어 있다.
(3) 원래 〈마가복음〉은 16,8에서 끝난다. 9절 이하는 후대에 확장판으로 덧붙여진 것이다.
(4) 복음서에 베다니(Βηθανια)는 두 곳이 나오는데, 하나는 요르단 강 바로 건너에 있는 마을로, 세례자 요한이 활동하던 장소였고,(〈요한복음〉 1,28) 다른 하나는 마르다・마리아・라자로 남매가 살던 마을이다.(〈요한복음〉 11장) 후자는 예루살렘 동쪽 2.4킬로미더 떨어진, 올리브산 너머 경사지에 있는 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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