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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인디언’에서 ‘인디지너스’로의 전환의 길목 - 서툰 여행자의 캐나다 여행기

이 글은 보리출판사가 펴내는 '부모와 어른을 위한' 원간잡지  [개똥이네집] 170(2020 01)에 수록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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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언에서 인디지너스로의 전환의 길목

서툰 여행자의 캐나다 여행기

 

 

나의 첫 번째 아메리카 대륙 여행지는 캐나다였다. 가장 날씨가 온화하다는 7월에 3주 동안이었다. 여행자로서 첫 번째로 인상 깊었던 것은 지평선이었다. 종일 차로 달려도 대지의 끝은 끝없이 연장되고 있었다. 물론 3주 동안 내리 차로 이동했어도, 이 거대한 나라 남부의 서쪽 편 두 개 주 몇 곳을 들른 것에 불과했다. 게다가 거의 들리지 않는 영어와 씨름하며 허우적댔던 까막눈의 여행객이 그 사회의 뒷모습에 대해 뭔가를 알아내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한데 아무리 들리지 않는 외국어여도 듣지 않을 수 없는 단어 하나가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둘러싼 여러 이미지들과 이야기들이 가는 곳마다 무수한 상상 속으로 나를 초대했다. 입국하자마자 공항에서부터 여기저기 그 단어와 관련된 이미지들이 스쳐 지났고, 도처에 이 단어들이 들어간 문장들이 널려 있었다. 단지 그때까진 내가 그 단어에 주목하지 않았기에 눈치채지 못했을 뿐이었다.

내가 이 단어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도착한 지 나흘이 지난, 첫 번째 일요일이었다. 그 날은 이 나라의 대부분의 교회들이 하나의 절기처럼 지키는 인디지너스 데이(indigenous day)였다. 바로 이 단어, ‘인디지너스가 그토록 곳곳에서 나를 향해 손짓을 했던 것이다. 이 형용사는 인디지너스 피플의 줄임말로 거의 명사처럼 사용되었는데, 우리가 흔히 인디언이라고 불렀던 이들을 지칭한다.

성공회 계열이 교회에서 예배를 나누었다. 듣기로는 꽤나 보수적 성향의 교회였다. 그날은 주교가 방문해서 강론을 폈는데, 그이는 더 보수적이라고 들었다. 하지만 보수적 성직자에 대한 나의 편견과는 달리, 그는 단상이 아닌 신자들 사이를 오가면서 강론을 폈다. 더욱 인상 깊었던 것은 그의 손에 샤먼의 지팡이 같은 게 들려 있었다는 점이다. ‘인디지너스 추장의 지팡이였다. 그 지팡이에는 자연과 합체(合體)된 문화의 코드가 들어있다는, 대충 그런 얘기를 했던 것 같다. 보수적 성직자가 샤먼적 상징물을 가지고 복음을 해석하고 있다는 것이 인상 깊었다.

하지만 더 큰 인상을 준 건은 미술관들이었다. 방문한 곳마다 인디지너스 작가들의 작품들이 가장 좋은 자리에서 전시되

고 있었다. 예술로서의 작품의 완성도도 상당히 높아 보였다. 캘거리의 차이나타운 지역을 걷다가 우연히 발견한 작은 전시관이 있었다. 그 한쪽 벽면에는 비즈(beads) 공예로 도안된 작은 숫자판들이 1015, 도합 150개가 나열되어 있었다. 여기서 ‘150’은 백인들이 캐나다에 이주해온 햇수다. 그리고 그 숫자판에 새겨진 것들은 인디지너스들이 학살당한 연도, 강제로 입소된 기숙학교에서 식민교육을 했던 연도, 백인들이 퍼뜨린 전염병으로 사망한 인디지너스의 숫자 등등이다.

다른 벽면에는 책들이 전시되었는데, 모두가 인디지너스를 대상화하고 식민화하는 내용의 책들이다. 어떤 책은 표지의 인디언(indian)이라는 단어의 자리에 비즈 공예로 글씨를 가려놓았고, 어떤 책은 내용을 펼쳐볼 수 없도록 옆면 사방을 비즈 공예로 봉인시켜 버렸다.

비스 공예는 인디지너스 고유의 문화적 산물이다. 거기에는 그들의 종교가 들어있고 일상을 사는 지혜가 담겨 있으며, 인간과 자연과 우주가 어떻게 혼융되고 있는지에 대한 기억들이 새겨 있다. 하지만 백인들이 이 사회에 덧입혀지면서 인디지너스의 비즈 공예는 핫한 상품이 되었고, 그만큼 인디지너스들은 혹독한 착취의 대상이 되었다. 그렇게 식민지는 비즈 공예 속에도 담겨 있었다. 전시된 책들처럼, 인디지너스에 대해 얘기하면서도 그들 자신의 목소리를 봉쇄하고 있는 것처럼, 백인들이 선호하는 상품이 된 비즈 공예품들은, 인디지너스 자신의 종교와 문화와 기억술이 사라진 자본주의적 상품일 뿐이었다.

또 다른 벽면에는 QR 코드가 새겨진 비즈 공예물이 그것을 통해 진입할 수 있는 컴퓨터 모니터와 함께 전시되고 있었다. QR 코드는 전근대적 인디지너스의 세계와 포스트근대적 세계가 교신하는 소통의 장치다. 그것을 통해 두 세계는 식민주의적으로 결합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 혼융된 새로운 세계로 향한다.

그날 저녁 10달러만 가지고 오면 맥주를 무한리필하며 작가와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가 있다고 했다. 거의 듣지 못하겠지만 무조건 갔다.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머리, 복장, 화장법 등 스타일 하나하나가 내가 감당하기엔 너무 파격적이었다. 이 도시 삐딱이들이 한가득 모이는 공간이었던 것이다. 그중에는 인디지너스나 혼혈인들(Métis)로 보이는 이들도 여럿이 있었다. 그들은 이 작은 공간을 매개로 문화와 문화가 혼합되고, 그것이 전혀 다른 새로운 패션으로 구현된 새로운 세계를 만들고 있었다.

유럽의 백인들이 그 사회를 정복해 들어갔고 그곳의 선주민들을 정복당한 타자로 취급하면서 붙여준 이름이 바로 인디언이다. 인도가 아니었음을 이미 알고 있었던 그들이 그 땅의 사람들을 땅의 이름이 아닌, 다른 지역 사람들을 지칭하는 용어로 부른 것이다. 그러므로 인디언은 그 땅의 주인이 아닌, 혹은 존재하지 않은 존재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리고 그들을 인디언 보호구역(Indian Reservation Area)이라는, 격리된 공간 속에 가두었다. 실은 보호구역이라는 말은, 그 구역 밖에서는 절멸의 대상이라는 뜻을 포함한다.

이러한 절멸주의(exterminism)가 지양되기 시작한 것은 대략 1950년대 이후였다. 그 무렵 인디언 아이들을 기숙학교에 입학시키기 시작했고, 심지어는 백인 가족에 입양시키기까지 했다. 그 아이들에게 백인 문화를 습득시켜 백인사회의 일원으로 포섭해야 한다는 취지다.

이때 인디언이라는, 배제와 격리의 용어를 버리고, ‘퍼스트내이선(first nation) 혹은 애브리지널 피블(aboriginal people) 같은 단어를 사용하자는 캠페인이 널리 확산되었다. 하지만 여기에는 이들이 그 땅의 선주민임을 인정하지만 동시에 열등한 주체라는 생각을 전제하고 있다. 해서 그들을, 절멸이나 격리가 아니라, 백인 사회에 동화시켜야(assimilated)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입양된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 사회활동을 본격화하는 1980년대에 이르면 그 동화주의(assimilationism) 정책에 대한 법적 소송들이 잇따랐다. 법정에서는 그 정책의 과실이 인정되지는 않았지만, 세계 속에서 절멸주의와 동화주의적 선주민 정책에 대한 문제제기가 점점 확산되어 2007년에는 유엔(UN)에서 선주민 권리선언(Declaration on the Rights of Indigenous Peoples)을 채택했고, 이듬해인 2008년 캐나다의 스테펀 하퍼(Stephen Joseph Harper) 총리는 정부 차원의 공식사과를 표명했다.

이렇게 동화주의에 대한 반성에서 그들도 이웃이고 서로 함께 어우러짐으로써 변화되어야 한다는 포용주의(inclusivism)가 새로운 논점으로 제기되었다. 이때 유엔 선주민 권리선언에서 사용한 용어인 인디지너스가 공식적 용어가 되었다.

이렇게 인디언에서 퍼스트네이션으로, 그리고 인디지너스로 이어지는 개념의 전환 속에서 캐나다는 오늘날 다문화주의를 가장 모범적으로 제도화하고 있는 나라의 하나가 되었다. 물론 그렇다고 절멸주의나 동화주의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또한 인디지너스라는 단어와 그 속에 함축된 개념이 공식화되었어도 실제로 이 나라의 가장 가난한 사람들은 인디지너스와 그 혼혈인들이다. 우연히 방문했던 메티스후원센터에서 그들이 얼마나 알코올에 찌들어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 지역에는 길거리에서 대낮에 술에 취해 쓰러진 이들을 발견하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다. 빈곤의 대물림은 그들의 몸과 정신을 파괴하여, 포용주의 제도가 충분히 활성화되어도 그들의 회생은 여전히 쉽지 않다는 것이다.

한국사회와 동아시아에서도 정복당한 인종이라는 이유로, ‘나쁜 이념을 가졌다는 이유로, ‘위험한 지역 주민이라는 이유로, 혹은 열등한 이주민이라는 이유로 장기간 삶이 파괴되는 이들이 무수히 많다. 한데 그 가해자들 대부분은 아직도 사과하지도, 가해의 제도를 청산하려고도 않고 있다. 캐나다에서의 짧은 청산의 노력도 우리에겐 생소하다. 게다가 최근 그 가해자들은 더욱 발광하는 작태를 보이고 있다. 해서 고통의 연대성이 더욱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