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데버(William G. Dever)의 [이스라엘의 기원]에 수록될 추천사. 이 책은 7월 중순쯤 한국어판이 삼인출판사에서 출간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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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성서역사학으로 가는 출입구
존 브라이트(John Bright)의 《이스라엘 역사》(A History of Israel)는 성서 시대 이스라엘 역사에 관한 학문적 저작 중 아마도 가장 많이 알려진 책일 것이다. 게다가 초판이 발간된 이후 새로운 고고학적 발견을 업데이트한 증보판이 무려 세 번이나 발간되었다.(1판-1959; 2판-1972; 3판-1981; 4판-2000). 이는 존 브라이트가 그만큼 학문적 성실함이 있다는 뜻일 것이고, 또 그만큼의 영향력이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중 마지막 개정증보판은 그가 사망한 이후에 그의 제자 브라운(William P. Brown)이 편찬한 것이니 엄밀히 말하면 네 번째 버전의 보충은 그의 생각이 반영된 것이 아니다. 하여 마지막 버전에선 존 브라이트의 기본 전제가 동요하고 있지만, 브라이트가 직접 관여한 세 번의 버전은, 성서는 역사성을 충실히 담고 있고 고고학적 발견은 그것을 보증하고 있다는 전제에 기초하고 있다.
한데 이러한 전제는 그의 스승인 윌리엄 올브라이트(William F. Albright)의 관점이기도 하다. 즉 올브라이트와 그의 제자들인 라이트(George Ernest Wright)와 브라이트, 이들이 주축이 된 올브라이트 학파의 관점은 1920~1960년대까지 북미의 성서역사학계를 주도했다.
또 하나 주목할 것은 존 브라이트의 《이스라엘 역사》의 네 버전이 모두 한국어로 출간되었다는 점이다. 한국어판이 7백 쪽이 넘는 방대한 책임에도 증보판들이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속속 번역 출판된 것이다. 대부분의 독서자들이 그 차이를 식별할 수 없었을 것임에도 증보판이 나왔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관심을 받았던 것이다. 그것은 존 브라이트의 힘이기도 하지만, 또한 올브라이트 학파의 기본 전제가 한국의 독자들, 특히 개신교 성직자와 신자들에게 강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편 동시대 성서역사학계를 양분하여 장기간 이끌어간 또 하나의 학파가 있는데, 그것은 독일의 알트-노트 학파다. 알브레히트 알트(Albrecht Alt)와 그의 제자 마틴 노트(Martin Noth)가 이끈 성서역사학계의 또 다른 계보는, 고고학적 성과에 기대기보다는 비교역사학적 관점에 더 천착했다. 하여 비문헌자료보다는 문헌자료에 더 주목했다.
한국어로 번역된 알트-노트 학파의 성서역사서로는 알트의 제자인 안토니우스 군네벡(Antonius H.J. Genneweg)의 《이스라엘 역사》(Geschichte Israels bis Bar Kochba)가 먼저 번역되었고(이 책이 한국어판이 출판된 해가 1975년인데, 이것은 존 브라이트의 《이스라엘 역사》가 번역된 1979년보다 앞섰다.),저 유명한 마틴 노트의 《이스라엘 역사》(Geschichte Israels)도 나중에 번역 출간되었다(1996).
이 두 학파의 이스라엘의 출현에 관한 주장을 간단히 정의하면, 올브라이트학파의 ‘정복가설’과 알트-노트학파의 ‘평화적 이주가설’로 나뉜다. 그런데 두 가설은, 방법론이나 논지에서 매우 다르지만, 공히 ‘외부유입론’에 기반을 두고 있다. 한데 이 고전가설들은 1970년대 이후 수많은 도전에 직면하게 되었고, 1979년 노먼 갓월드(Norman K. Gottwald)의 기념비적 저작 《야훼의 부족들》(The Tribes of Yahweh)이 발간되면서 결정적으로 붕괴했다. 영문으로 9백 쪽이 넘는 방대한 이 책은 안타깝게도 한국어로 번역되지 않았다. 하지만 영문으로 7백 쪽을 상회하는 그의 제1성서(구약성서) 개론서인 《히브리성서》(The Hebrew Bible: A Socio-literary Introduction) 속에 그의 가설이 녹아 있으니 한국 독자들은 그의 주장을 손쉽게 접할 수 있다.
이스라엘의 출현에 관한 갓월드의 수정가설의 핵심은 ‘내부봉기설’로 요약된다. 그는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에서 사회과학과 고고학적 성과를 충실히 활용하여 고전가설의 토대를 붕괴시켰다. 이후 고대 이스라엘에 관한 성서학계와 고고학계의 걸출한 연구서들이 쏟아져나오는데, 이 논의들은 대체로 올브라이트 학파처럼 성서의 역사성을 최대한 인정하려는 역사학적 가설을 따르지 않았다. 그리고 알트-노트학파의 장기간에 걸친 정착론을 대체로 계승한다. 하지만 올브라이트학파나 알트-노트학파의 외부유입설에 대해서는, 부분적으로는 외부 유입이 있기는 했지만 이스라엘의 형성은 대부분 내부 요인과 관련되어 있다는 갓월드의 관점을 계승한다.
그들이 갓월드와 다른 점은, 갓월드가 계급적 요인에 의한 정치적 재부족화(retribalization)를 강조하는 반면, 대부분의 학자들은 인구적 요인, 생태적, 경제적 요인 등 보다 ‘장기간에 걸친 변화’를 통해 서서히 이스라엘이 출현하게 되었다고 보는 경향이 있다. 하여 최근 학계에서는 고전가설들의 ‘정복’(conquest)과 ‘이주’(migration)라는 키워드 대신에 ‘출현’(emergence)이라는 표현을 선호한다. ‘출현’이라는 단어가 고대이스라엘을 해석하는 키워드로 부상하게 된 계기는 1983년에 출간된 두 편의 걸출한 저서가 사용한 용어에서 비롯된다. 바루크 핼펀(Baruch Halpern)의 《가나안에서의 이스라엘의 출현》(The Emergence of Israel in Canaan)과 프리드만과 그라트(David N. Freedman&David F. Graf)가 편집한 엮음집 《전환기의 팔레스틴: 고대 이스라엘의 출현》(Palestine in Transition: The Emergence of Ancient Israel)이 그것이다. 이중 《전환기의 팔레스틴》은 한국어로도 번역 출판된 바 있다.
이후 이스라엘 역사에 관한 연구들은 크게 두 범주로 나뉜다고 할 수 있는데, 적절한 용어로 보이지는 않지만 세칭 ‘맥시멀리스트’(Maximalist)와 ‘미니멀리스트’(Minimalist)라고 불린다. 그 차이는 성서를 대하는 태도와 관련되어 있는데, 전자가 성서를 중요한 사료적 가치가 있는 텍스트로 보려는 관점이라면, 후자는 성서의 사료적 가치를 덜 중요하게 여기는 관점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연구자마다 성서의 텍스트들 중 어떤 것을 더 가치 있게 보고 다른 것에는 덜 가치를 부여하는 등, 단순히 성서 전체를 일관되게 평가하는 기준이라고 할 수 없다.
아무튼 최근의 연구성과를 충실히 반영하면서 널리 사용되는 책으로는 밀러와 헤이스(James Maxwell Miller&John Haralson Hayes)의 《고대 이스라엘과 유다의 역사》(A History of Ancient Israel and Judah)가 있다. 이 책은 오늘날 고대 이스라엘에 관한 가장 유명하고 가장 널리 사용되는 역사교과서로 꼽힌다. 이 책은 《고대 이스라엘 역사》라는 제목으로 한국어로도 번역되어 있는데, 그 무게나 대중성에 비해 널리 읽히지는 않고 있다.
교과서로서 독보적인 위상을 갖는 밀러와 헤이스의 책이 한국에서 그다지 많이 읽히지 않았다는 사실이 시사하는 바는, 한국의 성직자들과 신학생들, 그리고 교회의 학습교재로 이 책이 환영받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겠다. 그것은 고대 이스라엘 역사에 관한 수정주의적 저작들이 한국에서 홀대받는 것과 맥을 갖이 한다. 우선 중요한 책들이 대부분 출간되지 않았고, 출간된 책들도 독자들의 철저한 외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번역 출판된 것들로는 위에서 언급한 프리스만과 그라프가 엮은 책 외에, 로버트 쿠트(Robert B. Coote)의 《초기 이스라엘 이해의 새로운 지평》(한국어 제목; 원제는 Early Israel: A New Horizon)을 비롯한 그의 저서 몇권들, 고고학자이자 학술기획자인 허셜 생크스(Hershel Shanks)가 엮은 《고대 이스라엘. 아브라함부터 로마인의 성전 파괴까지》(Ancient Israel: A Short History from Abraham to the Roman Destruction of the Temple) 등이 있고, 기독교 독자를 타깃으로 삼지 않고 인문학 출판시장에 출시된 책들인 고고학자 이스라엘 핑컬스타인(Israel Finkelstein)의 《발굴된 성서》(The Bible unearthed. 한국어 번역본은 《성경: 고고학인가 전설인가》)와 키스 휘틀럼(Keith W. Whitelam)의 《고대 이스라엘의 발명―침묵당한 팔레스타인 역사》(The Invention of Ancient Israel: The Silencing of Palestinian History) 정도다.
이렇게 수정가설들이 한국에서 외면받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올브라이트 학파의 고전가설의 영향력이 너무도 막강하다는 점이 제일 중요한 이유겠다. 한데 그것은 현대의 역사학적이고 고고학적인 문제의식이 한국의 독자들에게 적극적으로 소개되지 않은 것과 무관하지 않다. 여기에는 신학자들과 성직자들의 학문적 게으름도 한몫하고 있다. 물론 그것은 교회의 반지성주의적 신앙이 신학자들과 성직자들을 옥죄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무튼 서로가 서로를 옥죄는 악순환이 성서를 더 역사학적으로 읽는 데 장애가 되고 있다. 그런 이유 탓에, 중요한 저서 몇 권은 교회를 패스하고 인문학 출판시장에 노크하는 일이 벌어졌다.
그렇다면 교회에서 성서는 20세기 전반기까지 만큼만 학문적으로 읽혀져야 할까? 그런데 바로 그 점에서 윌리엄 데버(William G. Dever)의 책이 존재감을 드러낸다. 전문적 고고학자로서 최신의 고고학적 발견과 해석들을 충실히 반영하면서도 그는 수정가설들의 주요 논객들에게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성서역사학자들이 현대역사학과 교류하면서 성서의 역사적 사실성에 회의적 태도를 드러낼 때마다 그는 적극적인 비판을 가했다. 그런 점에서 그는 맥시멀리스트에 가깝다. 가령 그는 다윗-솔로몬의 역사성을 부정하는 이스라엘 핑컬스타인과 논쟁을 했고, 포스트역사학적 문제의식으로 성서의 역사적 실증성을 비판하는 렘케와 일전을 벌였다.
이 책의 원제는 《초기 이스라엘인은 누구이며 어디서 왔는가?》(Who Were the Early Israelites and Where Did They Come From?)이다. 이 책의 한글 번역본의 제목인 ‘이스라엘의 기원’은 원제의 함의를 충실히 담고 있다. 데버가 이 책을 저술한 때는 그가 애리조나대학의 교수직을 은퇴할 때(2002년)다. 그만큼 학자로서 그의 평생의 지론을 총결산한 책이라고 평가할 만하다.
존 브라이트의 《이스라엘 역사》에 익숙한 독자가 그 낡은 시각을 넘어서 최근의 성서역사학계의 논의를 공부하고자 할 때, 성서의 역사적 재구성을 거의 발본적으로 재구성하고 있는 핑컬스타인의 《성경: 고고학인가 전설인가》와, 성서역사학의 학문적 가설과 방법론들이 예외없이 팔레스타인 땅에 살고 있는 다양한 주민들의 존재를 부정하는 인종주의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비판하는 휘틀럼의 《고대 이스라엘의 발명》의 문제의식에 공감하기에는 너무 큰 강을 건너야 하는 부담이 있다. 그런 점에서 핑컬스타인이나 휘틀럼과 논쟁하면서 성서의 역사성에 대해 좀더 온건한 시각을 대표하는 데버의 책은 역설적이게도 그들과 논쟁하고 있지만 동시에 그들과 고전가설 사이의 교량 역할을 한다. 요컨대 오늘 한국의 다수의 독자들에게 데버는 현대 성서역사학의 고민과 인식에 다가가는 출입구라고 평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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