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회 제주평화신학포럼(2024 09 08~10)의 기조발제 원고. 장소는 제주 표선의 '유채꽃프라자'다. 나의 짧은 제주살이에서 제일 훌륭했던 풍경이 돋보였다. 입구 양편으로 길게 뻗어 있는 '가시리 길'은 유채꽃프라자의 풍경이 무색할 만큼 훌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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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평화신학포럼이 추구해야 할 기억의 정치, 세 가지
기억하기의 원칙 하나_ ‘지금’을 끼어넣기
2023년 12월 남아프리키공화국 정부는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서 벌이는 인명살상과 무차별 폭격을 제노사이드로 규정하면서 국제사법제판소(ICJ)에 제소했다. 약 한 달간 진행된 심리과정에서 남아공 정부의 의뢰를 받은 변호인들은 다양한 증거자료를 제시하면서 제노사이드임을 입증하려 했고 이스라엘 정부는 정당한 방위임을 항변했다.
이듬해 1월 26일 국제사법재판소 법원장 조안 도노휴(Joan Donoghue)는 심리 결과를 발표했다. 그녀는 현재까지 제시된 증거만으로는 이스라엘의 제노사이드 혐의의 유죄 여부에 대한 최종판결을 내릴 수 없지만 제노사이드일 개연성을 인정할 수 있다’(plausible)고 보면서 이스라엘은 가자지구 주민들이 더 이상의 위험에 처하지 않도록 ‘즉각적이고 효과적인’(immediate and effective) 조치를 취할 것을 당부했다.(01) 그 무렵 남아공 정부뿐 아니라, 세계 각처에서 이스라엘의 폭력과 살상을 비판하는 적극적 행동이 일파만파로 확산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가 개봉되었다.(2023년 12월) 동명 소설(마틴 에이미스Martin Louis Amis, 2014)을 영화로 만든 이 작품은 개봉되자마자 유력한 국제영화제들에서 극찬을 받으며 많은 상을 수상했다. 하지만 비판 또한 적지 않았다. 특히 올해 3월 10일(미국시간)에 열린 오스카어워드에서 장편국제영화상과 음악상을 수상했는데, 감독 조나단 글레이저(Jonathan Glazer)의 수상소감을 둘러싸고 보수파 인사들과 유대계 커뮤니티에서 격렬한 비판이 제기되었다. 유대계 강경시온주의자이며 신보수주의 논객인 벤저민 샤피로(Benjamin Aaron Shapiro)도 그중 하나인데, 그는 글레이저를 ‘악한’(the villain)이라고까지 비난하면서, 유대계 출신으로서 어떻게 아우슈비츠 소재의 영화에 유대인을 등장시키지도 않느냐며 영화 곳곳에서 들리는 비명소리의 주인공들인 이름도 얼굴도 없는 희생자들(nameless, faceless victims)이야말로 그가 클로즈업했어야 했던 존재들이라고 추궁했다.(02) 그를 포함한 유대계 보수파 인사들의 격렬한 비판 탓인지 주관방송사인 ABC는 감독의 수상소감을 유튜브에서 삭제해버렸다. 아래 인용문은 논란이 된 그 소감 연설의 일부다.
우리의 모든 선택은 “그때 그들이 한 일을 보라.”가 아니라 “지금 우리가 하는 일을 보라.”고 말하기 위해 현재를 반성적으로 직면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우리 영화는 비인간화가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우리의 과거와 현재가 모두 그렇습니다. ...... 10월 7일(03) 이스라엘의 희생자든, 현재 진행 중인 가자지구 공격의 희생자든, 모두가 이 비인간화의 희생자들인데 우리는 어떻게 저항할 수 있을까요?(04)
영화는 독일이 제2차세계대전에서 패망한 직후인 1945년 7월까지 아우슈비츠 수용소 소장으로 4년 7개월간 재직했던 루돌프 회스(Rudolf Höss) 중령 가족이 관저에서 살아가는 풍경을 다룬다. 역사 속의 회스는, 마치 1940년대 후반 남한의 서북청년단원처럼, 청년 시절 궁핍과 정체성 해체의 위기를 백색테러를 일삼는 정치깡패로서 만회하려 했고, 그 폭력적 열성의 대가로 준군사조직인 SS부대(Schutzstaffel)의 간부가 되어 공식적이면서도 비공식적인 폭력의 화신이 되어갔다. 마치 ‘여순’을 거쳐 제주로 파송된 준군사조직인 서청특수부대원들이 그랬던 것처럼. 그들의 일부는 제주 여성과 결혼해서 정권의 특혜를 받으면서 지역 유지로 살아갔다고 한다. 그 직전 자신들이 무자비한 폭력을 자행했던 바로 그곳에서. 1940년대 중반 탈북하여 가족의 해체와 장소성의 유실로 존재론적 위기에 처해 있던 그들은, 자신들이 계획한 방식은 아니었지만, 가족을 복원하고 새로운 장소성을 획득하게 된다. 영화가 재현한 루돌프 회스도 히틀러가 그의 영혼 속에 심어놓은 단란한 쁘띠부르주아지의 꿈을 실현했다. 계획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에게 귀속성의 안위를 선사한 곳은 아우슈비츠 수용소 담장을 끼고 그 바깥에 세워진 관저였다. 그의 아내는 열과 성을 다해 그곳을 정원과 풀장이 딸린 중산층의 단란한 가족의 공간으로 만들었다. 비록 살육의 소리가 담장 저편에서 끊임없이 들렸지만 아무런 동요 없이 행복을 구가하는 단란한 가족이 되었다.
나는 기억한다. 1970년대 초 어느 때 10월 유신의 홍보 전단이 집집마다 배달되었다. 일러스트 몇 개가 들어간 전단에 새겨진 카피 문구들이 강렬하게 뇌리에 꽂혔다. ‘수출 1백억 달러, 국민소득 1천 달러, 마이카 시대’!. 이 숫자들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당연히 몰랐다. 또 영문 알파벳도 모르던 초등학생이 ‘마이카’라는 단어를 알 리도 없었다. 하지만 막연하게나마 부자가 될 거라는 꿈을 품었다.
그 꿈은 소년을 국민으로 소환했다. 근데 그 소년 국민의 영혼 속에 새겨진 애국심은 국회가 해산되고 기본적인 표현의 자유도 심각하게 침해되는 국가를 향한 것이었다. 그 무렵 한 노동자가 분신하면서까지 외쳤던 최소한의 기본권도, 그것을 옹호하는 어떤 외침에도 아무 동요도 하지 않는 그런 애국심이었다. 이 애국심에 내포된 무심한 각박함을 소년이 간파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었겠다. 하지만 전혀 몰랐던 것도 아니다. 동네 형이 경찰에 잡혀갔다는 소문이 돌았고, 전봇대에 붙은 수배전단을 보는 것은 전혀 낯선 일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장밋빛 미래’의 욕구와 결착된 애국심은 그런 ‘하찮은’ 것에 동요하도록 허락하지 않았다.
회스도 그의 아내 헤트비히 헨젤 그랬겠다. 히틀러에서부터 괴링, 아이히만으로 이어지는 학살 명령과 기획의 최종단계에서 가장 효과적이고 신속하게 대량살상을 구현해낸 루돌프 회스를, 영화는 이런 ‘평범한 악마성’(banality of evil)의 발현으로 해독해낸다.
한데 이 영화의 메시지는 마지막 씬에서 불쑥 우리 시대의 아우슈비츠 풍경을 보여준다. 회스 가족의 평범한 욕망을 수용소 담장 저쪽의 살육의 소리에 무심한 일상과 연계시킴으로써 악마성과 평범성의 ‘공간적 겹침’을 보여주었는데, 마지막 씬은 그것을 우리 시대와 연계시킴으로써 시간적으로 겹쳐놓은 것이다. 그렇게 우리를 이 살육의 현장으로 불러냄으로써 그는 한나 아렌트류의 악의 평범성 테제에 관한 가장 중요한 문제의식 속으로 바로 우리를 소환한다.
전출명령을 철회시키고 수용소 소장 관저에서 계속 살 수 있게 된 회스가 아내에게 그 희소식을 전화한 뒤 계단을 내려오면서 헛구역질을 하는 장면을 박물관이 된 현대의 수용소 풍경과 연결시킨 것이다. 뒤엉킨 희생자들의 뼈다귀 더미, 그들의 가방, 신발, 옷가지들이 꾸역꾸역 쌓인 채 전시된 관람 공간을 청소노동자들이 깨끗하게 청소한다. 그 죽음의 난장을 바라보는 무수한 관람객들의 헤집어진 심사도 닦아내려는 듯, 혹은 사진으로, 이야기로 접한 무수한 사람들, 그들의 영혼까지 세탁하려는 듯 진공청소기는 박물관 구석구석의 흔적들을 모두 빨아들인다.
그 세탁의 메커니즘이 추구하는 것은 무엇일까. 성공욕구와 잘 결합된 애국심, 시민의식, 종교성 등은 그 뒤편에서 보일 듯 말 듯한 살육의 흔적들로 얼룩져 있다. 바로 이 얼룩들을 제거하여 무균질의 애국심, 시민의식, 종교성으로 만들어주는 것이 아닐까. 그 과정에서 평범한 악마성에 관한 성찰도 세탁되었다. 회드 가족이 그랬고, 오늘의 우리가 그러하다고 감독 조다단 글레이저는 영화를 통해서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를 비판한 벤저민 샤피로는 아우슈비츠의 이름도 얼굴도 없는 희생자들을 ‘유대인’으로 동일시했다. 해서 유대인이 등장하지 않는 아우슈비츠 영화는 ‘영화’일 수 없다고 일갈했다. 결국 그는 아우슈비츠 담론을 우리로부터 타자화한다. 그 희생자들은 숭고한 것이고 우리는 그 숭고함을 우리 시대의 무엇과 연관시켜서는 안 된다고 말이다. 이는 마치 교조적 그리스도인들의 절대타자로서의 예수에 관한 믿음처럼 신이 된 그이를 우리로부터 타자화시킴으로써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역사에 오염되지 않는 순수한 그이(the Real Jesus)를 숭배하는 것뿐이다. 다른 고통을 이것과 연계시키는 일체의 상상력은 이단적인 상상에 다름 아니라고.
그런데 실은 아우슈비츠를 비롯한 수많은 절멸수용소에서 죽임당한 이들은 유대인만이 아니었다. 정치범, 소종파 신자, 성소수자, 부랑자, 집시, 전쟁포로 등도 무수히 죽었다. 또한 모든 유대인이 죽임당한 것이 아닌 것처럼, 아우슈비츠에서 죽임당한 유대인들은 유럽 전역에서 온 유대인들이라기보다는 동구권 출신 유대인들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유대인’이라는 상상적인 종족성인가 동유럽 유대인이라는 특정 지역에 접속된 유대인인가. 이런 중첩된 요소는 지역만이 아니다. 정치범인 유대인, 성수수자인 유대인, 전쟁포로인 유대인 등등, 다양한 요소가 상상적 종족성과 연계되어 있다. 샤피로가 주장하는 ‘순수한 유대인 희생자’라는 상상은 현실을 반영하지 않는다. 그들은 무수한 소수자성과 겹쳐 있는 존재들이었다. 그런 교차적 타자성의 존재들을 순수한, 교조주의적 인종주의로 무장한 극단주의 파시스트들이 학살했다.
이 대목에서 보스턴대학에서 극우 인종주의 성향의 몇몇 학생조직들이 강연자로 샤피로를 초청했을 때 벌어진 논쟁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05) 극우인종주의 성향의 청년층 사이에서 인지도 놓은 그를 둘러싸고 격렬한 반대시위가 벌어졌다. 그들에게 그는 흑인이나 이민자들, 성소수자 등에 대한 혐오주의자에 다름 아니었다. 요컨대 그는 아우슈비츠의 순수한 희생자 유대인을 추모하고 있다는 듯이 이야기하지만, 또 그것을 옹호하는 자신은 순수한 진리를 이야기하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그는 수많은 혐오주의적 배타주의를 상징하는 인물로서 혐오주의 담론 속에 끼어든 것이다.
정리하자면 이렇다. 샤피로 류의의 순수한 희생자 담론은 언제나 순수함, 원본성을 강조한다. 이런 주장은 그 사건을 읽는 이들로부터 희생자들을 타자화시킨다. 그 희생자들은 절대타자다. 또한 그들은 순수하다. 다른 요소가 끼어들 여지가 없다. 독서자에게 필요한 자세는 그 사실을 그대로 재현해내고 그렇게 구성된 ‘진리’를 숭배하는 데 있다고 그는 주장한다. 한데 문제는 그 순수함이란 실은 구성된 것이나는 데 있다. 그때 그 현실은 좀더 복잡하고 다층적이다. 인류학자 클리포드 기어츠(Clifford Geertz)가 제시한 ‘두텁게 서술하기’(thick description)는 바로 이런, 순수함을 가장한 구성된 사실로부터 벗어나 그 속에 내포된 다양한 현실관계를 해독해 내는 데 초점이 있다. 거기에서 출발점은 독서자 자신이 그 사건에 개입하는 것이다. 성화된 불가침의 진실에 대한 신봉자로서가 아니라 그 현장의 일원이 되는, 복잡한 경험자의 일원으로 참여하는 것이다. 이때 독서자는 순수한 독서자일 수 없다. 독서자 자신이 서 있는 복잡한 ‘지금’을 몸에 새기고 있는 자로서 그 사건 속으로, 그 사건의 기억 속으로 끼어드는 것이다.
글레이저는 바로 그런 모범의 하나를 보여준다. 그는 그때 거기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말하기 위해 지금의 일원으로서 그때 거기의 사건을 성찰하려 했다. 그가 주목한 것은 평범한 악마성이다. 소시민으로서 결핍을 극복하기 위한 소박한 열망이 비인간화라는 악마성과 연계되어 버렸다고.
소박한 열망은 배후에 끊임없이 들리는 처절한 생존의 소리를 깊이 경청하고 분석하며 공명하려 하지 않는다. 그 소리에 경청하지 않는 방법으로 선택된 것이 소리를 타자화하는 것이다. 타자화한다는 것은 자신이 거기에 개입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뜻한다. 그 타자화된 소리는 숭고한 희생자의 소리 혹은 혐오적인 악마의 소리이기에, 그렇다고 믿어 버리기에 나는 그 소리에 별개의 존재인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 소리의 사회역사적 내력을 읽어내기 위해 경청하기 않아도 된다. 하여 그 소리에 무감각한 채 자신의 소박한 욕망에만 집중할 수 있다. 문제는, 이미 말했지만, 그런 무감각은 그때 거기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는 데 있다. 우리 모두가 지금 여기서 그렇게 살고 있다.
해서 무엇을 기억하고 기린다는 것, 그 첫 번째 원칙은 나 자신이 그 사건의 일원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의 장소, 나의 시간을 그때 그 장소와 시간에 포개는 작업이다. 그것은 그 사건을 숭고한 것으로 박제하거나 악마의 짓이라고 단정하기보다는, 지금 여기서 계속되는 사건들과 연계하여 생각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제주평화신학포럼의 첫 번째 문제의식은 ‘4.3사건을 박제화’하고 그 원본성에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화’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기억하기의 원칙 두 번째, ‘국가화’ and ‘로컬화’
제주4.3사건의 현재화를 위한 역사이론적 논의를 펴고자 나는 ‘기억의 파편’ 프로젝트를 우선 떠올린다. 그것은 이제까지 제주4.3사건을 다루어온 평화운동가들의 활동을 잘 반영한 이론적 논의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리유 드 메므아르’(lieu de mémoire)라는 용어는 프랑스 역사학자 피에르 노라(Pierre Nora)의 용어로, 그의 또 다른 주요 개념인 ‘밀유 드 메므아르’(milieux de memoire)와의 언어유희로 사용된 것이다. ‘밀유 드 메므아르’는 기억들이 모여 사는 주택단지 같은 뉘앙스의 어구이고, ‘리유 드 메므아르’는 흔적만 있고 아무 기억도 거주하지 않는 공허한 터를 시사한다. 하여 ‘밀유 드 메므아르’에서는 기억들이 서로 조합되면서 서사가 만들어진다. 이때 그 서사적 이야기의 질서가 생기고 인식의 체계가 형성된다. 그중 사실을 반영하고 있다고 널리 받아들여지는 이야기는 ‘역사’의 지위를 얻는다. 그리고 역사는 기억공동체의 과거와 미래를 연대하게 하는 정체성의 핵심 역할을 한다. 그래서 나는 ‘밀유 드 메므아르’, 이 어구를 ‘서사적 기억’이라고 번역하고자 한다.
한데 역사가 신뢰를 잃게 되었을 때, 곧 사회가 정체성의 혼돈에 직면하게 되었을 때 서사적 기억은 무력해진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에서 역사는 더 이상 회복할 수 없는 것일까. 공동체는, 국가는 더 이상 과거와 미래의 연대를 구축할 담론적 계기를 찾을 수 없게 되는 것일까. 이것을 역사학계는 ‘역사학의 위기’라고 불렀다.
한데 피에르 노라는 이것을 근대성의 위기로 보았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근대주의적 역사의 자리를 대체할 실마리를 ‘리유 드 메므아르’에서 찾았다. 기억들이 주택단지처럼 모여 있어서 그것들끼리 이리저리 조합되면서 서사가 만들어져야 하는데, 그런 서사적 이야기가 신뢰를 받지 못하게 되는 상황이 되면 사람들의 뇌리에서 질서도 인식의 체계도 무너져버리고 기억들의 집이 하나둘 폐허가 된다. 하지만 그 폐허가 된 곳, 즉 ‘리유 드 메므아르’에서 새로운 역사의 실마리가 존재한다고 그는 주장하는 것이다. ‘밀유 드 메므아르’에 대비되는 어구인 ‘리유 드 메므아르’를 나는 ‘파편적 기억’이라고 옮기고자 한다.
서사적 기억이 산산이 부서진 곳, 그러니까 전통적 역사가 더 이상 의미를 만들어내지 못하게 된 곳에서 기억의 파편들이 나뒹굴고 있다. 그것들은 단지 파편조각이기에 그 자체만으로는 조합되어 하나의 서사, 곧 이야기의 저택으로 축조될 수 없다. 더욱이 그 파편들은 원초적 사건의 흔적조차 희미해졌다. 하여 전통적 역사학에 의하면 파편적 기억으로는 역사가 될 수 없었다.
그런데 그렇지 않다는 것이 피에르 노라의 주장이다. 기억들끼리 조합되어 역사가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기억의 파편은 ‘다른 만남’을 통해 이야기가 되고 역사가 된다는 것이다. 이 다른 만남이란 (기억들끼리의 만남이 아니라) 그것 외부와의 만남이다. 그 외부가 바로 ‘현재’다. 그 파편을 발견하게 된 이의 현재 말이다. 요컨대 ‘기억의 파편’은 그 파편이 발견된 바로 그곳, 그 발견자들의 현재와 조우하면서 서사가 만들어지며, 이것에서 기억의 파편들은 역사가 될 기회를 얻는다는 얘기다.
피에르 노라는 이런 파편적 기억들이 현재를 사는 이들의 문제의식과 연결되면서 자신의 원초적 시공간성 대신에 그것에 대한 해석이 자리잡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새로운 역사라고 보았다. 이렇게 현재의 문제의식을 개입시킴으로써 새로운 역사를 발견하는 작업을 그는 ‘기억의 파편 프로젝트’(lieu de mémoire project)라고 불렀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는 사람들이 유실된 정체성을 회복하는 데 기여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보았던 것이다.
최근 한국에서 기억의 파편 프로젝트와 유사한 문화상품이 쏟아지고 있는데,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가 대표적 예다. 이 시리즈가 방영된 2012・2013・2015~16년 현재의 시점에서 30대 중반 혹은 40대로 살고 있는 사람들은 이 드라마를 시청하면서 20대 시절의 사회적, 역사적 사건들과 접속된 자신들의 기억을 재구성하게 된다. 이렇게 형성된 기억공동체는 자신이 직접 관여하지 않았던 것에 대해서도 실제 그랬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과거 상을 공유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그 과거 상은 ‘현재적 과거’다. 노라를 포함한 ‘기억의 파편’ 연구자들은 이것을 ‘재기억화’(remémoration)라고 불렀다. 이러한 재기억화는 다시 현재의 사회를 구성하는 집합적 인식의 자원이 된다.
하지만 문화상품의 역사화(historicization)뿐 아니라, 피에르 노라가 했던 것(06) 같은 기억의 파편 ‘역사 프로젝트’도 많은데 그중 하나가 제주4.3사건과 관련된 것들이다. 우선 이 사건에 대한 서사적 기억들의 역사서들, 즉 공식화된 낡은 역사적 담론이 있었다는 것을 주지하자. 그런 역사적 담론에 의하면 ‘무장공비(arming communist guerrilla)의 폭동’이라는 명제와 결착되어 있었다. 이것은 그때 벌어진 국가에 의한 살육과 폭력을 정당화하는 논리로 작동했다. 2003년에 와서야 국가는 공식적으로 사과를 표명했고, 이후 제주4.3평화공원 조성을 포함한 역사 수정작업에 돌입했다.(07)
한데 이 프로젝트는 ‘파편화된 기억들’에서 시작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이 작업에 뛰어든 이들 중 다수는 자신들이 발견하고 수집한 기억들이 서사적 기억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미래와의 멋진 연대를 이루는 어떤 역사에 대해서도 시민사회의 합의는 이뤄지지 않았다. 전통적 역사관을 담은 해석이든 수정주의적 역사관을 표명한 해석이든 말이다. 해서 파편적 기억을 현재의 문제의식과 직접적으로 조우하게 함으로써 의미를 만들어내고 재기억화하는 방식의 역사 수정작업이 진행되었다고 할 수 있다.(08)
이런 역사 수정사업들은 궁극적으로 역사 공식화 작업에 수렴되었다고 할 수 있다. 진상규명, 가해자 처벌, 희생자와 피해자의 명예회복과 보상, 그리고 치유 등이 그 작업과 연관된 핵심 과제들이다. 역사학이 추구하는 이런 과제들은 하나같이 국가가 중심이 되어야 가능하다. 즉 기억의 파편 프로젝트는 ‘기억의 국가화 프로젝트’인 셈이다. 실은 피에르 노라의 기억의 파편 프로젝트가 바로 그랬다. 노라의 기억 연구는 니체의 기억 논의의 연장선상에 있는데, 니체는 무엇을 기억한다는 것은 다른 무엇을 망각한다는 것이라고 보았다. 해서 노라의 기억하기는 동시에 망각하기이기도 했다. 여기서 노라가 기억하기를 통해 추구했던 것은 ‘민족사의 재건’에 있었다. 국가의 형성이 민족의 형성과 병행하였던 유럽의 역사를 고려한다면 노라의 기억의 파편 프로젝트는 기억의 국가화에 다름 아니었다고 할 수 있다.(09) 제주평화신학포럼이 지향하는 것도 이와 일면적으로는 병행한다.
한데 이것은 어디까지나 일면이다. 평화운동이 지향하는 기억의 역사화는 기억의 국가화에 국한될 수 없다. 가령 구술사 연구자인 권귀숙 선생의 역작 《기억의 정치―대량학살의 사회적 기억과 역사적 진실》(문학과지성사, 2006)은 제주4.3사건에 대한 기억이 사람들마다 서로 다르게 재현되고 있다는 점을 구술사적 작업을 통해 보여주었다. 즉 로컬기억은 국가적 기억과 다르게 형성된다는 얘기다. 또 4.3문학의 정수라고 할 수 있는 현기영 선생의 《순이삼촌》은 다른 방식으로 기억의 국가화로 단순화시킬 수 없는 요소들을 보여주었다. 가령, 토벌대였다가 이후 ‘제주의 사위’로 살게 된 서북청년단 출신의 고모부는 학살자이자 보호자의 이중성을 지닌다. 또 주인공인 순이삼촌은 자신의 두 아이가 집앞 옴팡밭에서 토벌대에 의해 죽임당하는 것을 목격한 이후 정신이상증세를 보이며 살아가는데, 그 질환은 종종 가족과 이웃에 대한 폭력적 행동으로 표출되었다. 요컨대 그녀는 피해자이지만 동시에 다른 누군가에겐 가해자다. 그리고 4.3사건을 겪고 있는 제주의 청년들 다수가 해병대에 자원입대하여 ‘귀신 잡는 해병’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용맹무쌍한 전사가 되었다고 하는데, 여기에는 그들이 전쟁의 폭력에 얼마나 적극적으로 가담했는지를 시사한다. 즉 제주의 청년들 역시 피해자인 동시에 누군가에겐 가해자였다. 실은 제주4.3사건의 가장 치명적인 가해자의 하나인 서북청년단원들도 분단의 역사 속에서 고향을 떠나 생면부지의 낯선 곳으로 이주해와야 했던 역사의 피해자였다. 이것은 제주4.3의 기억을 역사화하는 데 있어서, 그리고 그것을 통해 현재의 갈등에 개입하고 트라우마를 치유하며 흔들리는 정체성을 재구축하는 데 있어서, 국가적 기억으로 일원화하여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하고 모순적인 다중적 기억들로 뒤엉켜 있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게 한다. 즉 다양한 로컬기억들도 국가적/민족적 기억만큼이나 유의미한 변수인 것이다. 하여 로컬기억들을 생략한 채로 진행된 제주4.3사건의 수정주의적 역사화는 제한적이다. 나아가 이것은 제주에 유입된 이주민들, 그리고 난민들도 제주4.3사건의 재기억화에 참여해야 한다는 뜻을 포함한다. 특히 타자화된 내부인과 외부인의 존엄이 유린되는 것에 무감각한 제주4.3사건의 재기억화는 또 다른 원리주의적 시오니즘처럼 될 우려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바로 이런 문제인식에서 기억하기의 두 번째 원칙이 제기된다. 기억의 국가화에 국한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 특히 ‘기억의 로컬화’가 중요한 과제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니까 제주평화신학포럼은 목회자로서, 교인으로서, 시민으로서 자신이 마주했던 기억의 파편들 속에서 로컬기억의 서사를 읽어내는 작업을 필요로 한다. 그것은 피해자 대 가해자의 이분법을 넘어서 폭력의 트라우마가 작동하는 모든 가능한 현상을 읽어내려 하고 증언하는 방식을 찾아내며 치유의 길을 모색하는 것이 평화신학운동의 과제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기억하기의 원칙 세 번째, ‘포스트휴먼적으로 기억하라!’
그런데 제주평화신학운동은 제주4.3사건과 더불어 너무나 중요한 두 가지 ‘기억의 파편’을 더 갖고 있다. 강정 해군기지 사업으로 파괴된 ‘구럼비 바위’와 제2공항 건설프로젝트에 의해 훼손된 ‘비자림’이 그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이 두 ‘기억의 파편’들에서 제주의 평화활동가들은 매우 중요한 인식론적 전환에 도달하게 되었다. 이제까지는 희생자와 피해자의 고통에 주목하고, 그들의 트라우마적 체험으로 잃어버린 기억을 복원하는 데 주목했던 평화운동이 구럼비 바위나 비자림 같은 비인간적 존재 나아가 비생명체적 존재의 고통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사실 권귀숙 선생의 구술사 연구 등을 통해서 로컬기억을 주목하게 됨으로써 제주4.3사건 논의는 희생자와 피해자의 범주를 가해자와 단순이분화하는 논리를 넘어서 좀더 복잡한 배제의 작동 메커니즘을 다룰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여전히 그 논의가 그리 활발하지 않았다. 특히 제주4.3과 관련해서 그랬다. 그럼에도 인권활동가, 영화제작자, 연구자 등에 의해 이 논점이 꾸준히 제기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한데 로컬기억에 대한 관심의 환기만으로 소수자 논의가 깊고 넓게 활성화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이에 대해서는 여러 분석이 제기될 수 있겠지만, 나는 인간 중심주의적 인식의 한계도 중요한 원인이 된다고 본다. 이 점에서 리처드 로티(Richard McKay Rorty)의 인권 담론에 대한 해석이 주목된다. 그는 누군가가 다른 누군가를 잔인하게 파괴할 때 그 파괴자가 피해자를 인간으로 생각하지 않았다면 그것도 인권의 문제인지를 되묻는다.(10) 가령 한국개신교를 대표하는 인물로 많은 이들의 존경의 대상이었던 아무개 목사는 ‘빨갱이는 사람이 아니라 악마’라고 설교했다. 그런 식의 악마 담론은 무수히 많다. 그리고 서북청년단 같은, 빨갱이 도살꾼 역할을 한 이들 중에는 개신교인들이 특별히 많다. 이것은 우연일까. 물론 개신교도인 학살자들이 피해자들을 잔혹하게 학살할 때 그들이 사람이 아니라는 말을 진짜로 믿을 만큼 정신이 비정상적인 이들이라고 폄하할 수는 없다. 하지만 학살의 순간 혹은 그 이후에라도 자신을 정당화하는 누군가의 속삭임은 그들의 학살행위를 정당화하는 장치로 강력한 힘을 발휘했을 법하다. 더욱이 그 속삭임의 주역이 평범한 아무개가 아니라 누구에게나 존경의 대상이 된 아무개라면 더욱 그렇다. 무의식적인 선택적 지각(unconscious selective perception)이 작동한 결과라는 얘기다.
한데 특정한 소수자는 일상 속에서 혐오와 배제의 대상이 된다. 위에서 로티가 주목한 사례는 보스니아 내전 당시 보스니아 인들을 잔혹하게 학살한 세르비아 병사에게 ‘어떻게 인간이 이런 잔혹한 살상을 할 수 있었느냐’라고 묻는 기자에게 그가 ‘내가 죽인 저자는 인간이 아닙니다’라고 답하는 탐사기사였다. 그런데 이념이나 인종 담론뿐 아니라 수많은 혐오 담론들도 마찬가지로 작동했을 것임을 의심의 여지없다. 소수자를 향한 파괴적 공격이 이런 혐오 논리와 무관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얘기다. 그리고 이 혐오 논리는 특정 학살 사건 때에 비로소 등장한 것이 아니라 좀더 폭넓게 그리고 좀더 긴 시간 동안 작동해온 것이다. 요컨대 제주4.3사건에서 배제와 혐오의 메커니즘은 이런 장구하고 광범위한 인간중심주의적 배타성과 관련이 있다는 얘기다. 해서 로컬기억을 통해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복원하는 것만으로 배제의 논의가 충분치 않은 것이다.
바로 이 점에서 구럼비와 비자나무의 고통에 관한 ‘기억의 파편’ 담론은 인간중심주의적 사유의 한계를 넘어서는 데 중요한 계기가 된다. 로티는 니체를 독해하면서 인간이라는 동질의식은 언어적 자기 서사와 관련이 있음을 논하였다. 언어적 동질의식은 추상적인 도덕공동체를 구성하는데, 이것은 공동체 내의 누군가의 고통에 도덕적 책임감을 느끼는 범주가 된다. 반대로 도덕공동체 바깥의 존재에 대해서는 그 고통을 공감하지 않을 수 있다는 얘기다. 여기에 인간 중심주의적 언어가, 언어를 통한 서사 능력이 중요하다. 그런 서사가 불가능한 대상, 가령 동물이나 식물, 혹은 돌, 바람, 물 등등에 대해서는 도덕감정을 느끼지 않으며 그것들의 존엄을 고려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게 된다는 얘기다. 한데 제주평화활동가들은 구럼비 사건과 비자림 사건을 접하면서 의도치 않게 감수성의 혁명에 동참하게 되었다.(11) 이렇게 기억의 파편은 그 안에 함축된 원초적 시공간성(인간 중심적 언어의 서사성)이 거의 훼손된 상황에도 불구하고, 다른 언어적 소통에 성공하는 감수성의 혁명을 체감하게 되고, 그것이 확대된 도덕공동체를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하여 구럼비와 비자림에 관한 기억의 파편은 제주의 평화활동가들에게 포스트휴먼적 기억을 가능하게 했다. 캐서린 캘러(Catherine Keller)는 그런 포스트휴먼적 타자를 ‘언더커먼스’(undercommons)라고 명명했다. 그리고 그것을 넘어서는 신학적 체험을 종말론적 사건으로 해석했다. 민중신학자 안병무는 도덕공동체의 바깥으로, 그 비인간의 영역으로 추방된 타자를 ‘오클로스’(οχλος)라고 명명했는데, 이를 오늘의 용어로 다시 표현하면 언더클래스(underclass)다. 한데 안병무는 언더클래스의 자기초월사건을 예수사건이나 민중사건으로 명명했다. ‘민중의 자기초월’이라는 용어는 선생의 마지막 저서인 《선천댁》의 중심 주제인데, 언더클래스의 임파워먼트(empowerment)가 그들을 (타자에 대한) 파괴적 주체로 만들기도 하지만, 〈마가복음〉을 구성하는 데 이르기까지 예수 이야기를 전달하고 해석(전달자이자 해석자)했던 예수사건의 전승모체가 된 오클로스는 언더클래스들의 임파워먼트가 평화를 만들어내는 예수적 민중사건의 주체이기도 했음을 증언한다.
이렇게 기억하기의 세 번째는 파편적 기억에서 포스트휴먼적 서사를 만들어내는 것을 의미한다. 극우주의적 포퓰리즘 정치가들은 언더클래스의 임파워먼트가 타자에 대한 가학성을 강화하도록 역사를 구성하려 했다. 그렇게 그들의 역사, 그렇게 재기억화된 과거는 폭력적 미래와 연대를 했다. 현대 이스라엘의 시오니즘적 파괴가 그런 전형적 예다. 반면 민중신학은 예수와 오클로스가 열망했고 난민활동가 바울이 꿈꾸었던 차별없는 복음의 세계에 관한 역사를 발견하고자 했고, 그런 현재적 과거의 기억을 전유한 언터클래스의 임파워먼트는 그들로 하여금 그런 미래의 예수사건의 일원이 되도록 조력하는 신학적 담론이다. 제주평화신학포럼이 추구하는 신학운동도 바로 이런 포스트휴먼적 기억하기를 구체화하는 과정이어야 할 것이다. □
[후주]
(01) Fatima Al-Kassab, “A top U.N. court says Gaza genocide is 'plausible' but does not order cease-fire” (Net Protein Ratio (JANUARY 26, 2024) [https://www.npr.org/2024/01/26/1227078791/icj-israel-genocide-gaza-palestinians-south-africa]
(02) Ben Shapiro “Ben Shapiro: Jonathan Glazer's evil Oscars display”, The Marshall News Messenger (Mar 19, 2024) [https://www.marshallnewsmessenger.com/opinion/ben-shapiro-jonathan-glazers-evil-oscars-display/article_5dc99af4-e55a-11ee-94f0-7783986f5327.html]
(03) 하마스가 이스라엘인들의 마을을 습격하여 살상과 납치 행위를 벌인 날.
(04) Zoe Guy, “Joaquin Phoenix, Chloe Fineman, and More Support Jonathan Glazer’s Oscars Speech in Open Letter” [https://search.naver.com/search.naver?sm=tab_hty.top&where=nexearch&ssc=tab.nx.all&query=vulture&oquery=the+marshall+news+messenger&tqi=ip3bBspzL8VssmTxMTGssssssql-516494]
(05) Joel Brown Amy Laskowski, “Ben Shapiro: the Speech, the Protests, the Reactions : Conservative firebrand parries hecklers from the left, and right, during speech on the legacy of slavery”, US Today November 13, 2019 [https://www.bu.edu/articles/2019/ben-shapiro-at-boston-university/].
(06) 노라의 프로젝트에는 백명 이상의 전문연구자들이 참여하여 136편의 논문을 엮은 전집으로 출판되었다. Pierre Nora(dir.), Les Lieux de mémoire(3tomes: La République/La Nation/Les France) (Paris, Editions Gallimard, 2005). 그 한글 번역본은, 피에르 노라 외, 김인중・유희수・문지영・양희영 옮김, 《기억의 장소(1-5)》 (나남, 2010)이다.
(07) 노무현 대통령은 2003년 제주4.3사건에 대하여 공식적인 사과를 표명했고, 2005년에는 제주를 세계평화의 섬으로 선언하여 국제적인 평화담론의 거점으로 발전시키기로 하였으며, 2008년에는 제주4.3자료관을 확대개편하여 제주4.3평화공원을 조성했다.
(08) 서사적 기억에 기반을 둔 프로젝트는 여러 역사적 주장들에도 불구하고 단 하나의 역사적 해석만 진정하다는 생각을 반영하는 역사적 작업인 데 반해, 파편적 기억을 현재화하는 역사학은, 현재를 어떻게 해석하는지에 따라 수많은 역사가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독일 학계는 전자에 해당하는 역사학을 Historie이라고 불렀고, 후자를 복수형인 Geschochten이라고 표현했다.
(09) 양재혁, 〈기억의 장소 또는 망각의 장소〉, 《사림(성대사림)》 57(2016) 참조.
(10) Richard Rorty, “Human Rights, Rationaloty, and Sentimentality”, Truth and Progress (Cambridge Univ. Press, 199) 참조.
(11) ‘감수성의 혁명’이라는 용어는 김승옥의 단편소설 〈무진기행〉에 대한 문학평론가 유종오 선생의 찬사가 담긴 용어다. 특히 가상의 공간, 아마도 순천 지역을 ‘무진’(霧津)이라고 명명한 데서 드러나듯, 안개가 심상에 일으킨 삶에 대한 성찰과정을 ‘감수성의 혁명’이라고 본 것으로 보인다. 인간 중심적 언어로는 이를 수 없는 감수성이 만들어낸 사유의 도약에 관한 평가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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