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평론] (2024 여름호)에 실린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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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사역자, 민중사역에 실패하다
필리피의 바울(2)
소아시아의 갈라티아 지역 선교를 하면서 바울은 복음이 누구에게도 차별없이 선물처럼 주어지는 것임을 주장했다. ‘자존적 이스라엘 남성만이 복음의 수혜자가 되는 자격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다, 신은 누구에게도 벽을 만들지 않았다, 율법을 몰라도, 율법 수행을 날마다 하지 않아도, 율법 준수를 상징하는 표식(할례)을 몸에 남기지 않아도 신은 그들을 의롭다고 보아준다’,라고.
갈라티아의 이스라엘계 이민자들의 회당에서 바울은 이런 말을 했던 것 같다. 바울에 분노한 이들도 있었지만, 환호한 이들도 적잖았다. 환호한 이들 중에는 재건되고 있는 이스라엘 성전사회를 이스라엘 민족만의 공동체가 아니라 ‘만민’의 공동체여야 한다는 ‘제3이사야’의 이런 예언을 받드는 이들도 있다.
주님을 섬기려고 하는 이방 사람들은, 주님의 이름을 사랑하여 주님의 종이 되어라. “안식일을 지켜 더럽히지 않고, 나의 언약을 철저히 지키는 이방 사람들은, 내가 그들을 나의 거룩한 산으로 인도하여, 기도하는 내 집에서 기쁨을 누리게 하겠다. 또한 그들이 내 제단 위에 바친 번제물과 희생제물들을 내가 기꺼이 받을 것이니, 나의 집은 만민이 모여 기도하는 집이라고 불릴 것이다.”
쫓겨난 이스라엘 사람을 모으시는 주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 “내가 이미 나에게로 모아들인 사람들 외에 또 더 모아들이겠다.” (〈이사야서〉 56,6~8)
요컨대 그들은 배타적 야훼주의자들인 극단파 유대아 중심주의자들과 대비되는 포용주의적 야훼주의자들이다. 바울을 추종한 다른 이들도 있었다. 할례의 구원담론에서 제외된 자들, 곧 여성과 성소수자들(〈이사야서〉 56,3)이 그랬다. 또한 이방인들, 특히 아무것도 갖지 못해 어디든 소속되고 싶은 무지렁이 이방인들이 그랬다. 이런 이들을 만나면서 바울의 메시지는 점점 자신만의 색깔을 갖추어갔다. 특히 그리스도파 민중사역자가 되어갔다.
그럴수록 유대아 중심적 극단파들은 바울을 미워했고, 때로 과격하게 공격을 가하곤 했다. 중도적 협상파들도 바울을 더 이상 감싸고 있기에 껄끄러워지자 일정하게 거리를 두곤 했다. 해서 바울은 그곳을 떠나 머나먼 낯선 땅 마케도니아로 향했다.
당혹스러웠다. 그곳엔 이스라엘계 회당이 없다. 아무리 적대자가 횡행하더라도 디아스포라 회당사회에는 기댈 곳이 있었다. 한데 여기선 먹을 것도 묵을 곳도 막막했다. 그러던 중 뜻밖에도 강가에서 야훼예배를 드리는 이들을 만났다. 심지어 그들 중 하나는 부유하고 지체 높은 이들과 친밀한 관계에 있는 귀부인이었다. 그녀를 사람들은 ‘리디아 여사’라고 불렀다. 민중사역자로서 민중을 주요 사역대상으로 삼고자 했지만, 공격자들로부터 자신을 보호해줄 방패 같은 존재가 절실했는데, 그런 이가 나타난 것이다. 이제 복음사역에만 충실해도 될 것만 같았다.
어느 날, 민중을 만나다
그렇게 한 주가 지났을까, 혹은 두 주? 바울이 리디아 여사와 함께 지각티스 강가의 그 기도처로 가는 길이었다. 그때 “점치는 귀신에 붙들린 어떤 여자종”과 마주쳤다.
‘점치는 귀신’으로 번역된 헬라어 어구는 ‘프뉴마 퓌쏘나’(πνευμα Πυθωνα)다. 여기서 ‘프뉴마’는 ‘영’이라는 뜻이다. 문제는 ‘퓌쏘나’다. 이는, 아폴론(Απολλων)을 숭배하는 델피 신전 여사제를 가리키는 ‘퓌씨아’(Πυθια)와 연계된 단어로, 델피 신전에서 신탁을 전하는 영적 존재를 가리킨다.(1) 그런 점에서 퓌씨아와 퓌쏘나는 거의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주지할 것은 퓌씨아가 환각 상태에서 신들린 채 예언을 하는 존재라는 사실이다. 고대의 역사가로 바울보다 한 세대쯤 후대의 인물인 플루타르코스는 델피 신전 사제이기도 했는데,(2) 그에 의하면 퓌씨아는 아폴론에 빙의된 채 신탁을 발화했다고 한다. 흥미롭게도 이런 이들을 그는 종종 ‘복화술사’(εγγαστριμυθοι, 엥가스트리뮈쏘이)라고 표현했다고 한다. 그것은 퓌씨아가 예언을 마치 복화술 하듯 말했다는 뜻이겠다. 그것을 본 사람들은 그녀의 몸에 빙의한 아폴론이 그녀 안에서 말하고 있다고 믿었을 것이다. 아무튼 바울이 만난 ‘프뉴마 퓌쏘나’ 들린 여자는 복화술사처럼 예언을 하는 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그녀는 ‘여자종’이라고 번역되었다. 이것은 ‘파이디스케’(παιδισκη)를 옮긴 것이다. 이 단어는 〈루가복음〉의 깨어 있는 종의 비유에도 나오는데(12,45), 타인에게 인신이 종속된 미성년의 여자를 가리킨다. 그러니까 바울이 만난 이는 12세 미만의 복화술처럼 점술을 이야기하는 여자 노예라고 할 수 있겠다.
이어지는 내용은 이렇다. 그 소녀가 바울 일행을 졸졸 쫓아다니면서 ‘이분은 하느님의 종이예요. 구원의 길을 전하려 온 분이예요.’라고 웅얼거렸다. 여러 날 이런 일이 반복되었다. 바울은 몹시 성가셔서 그녀의 영에게 소리쳤다. 그러자 접신한 영이 떠나갔고, 소녀는 신령한 능력을 잃게 되었다. 소녀의 주인들은 이 일로 수입이 끊겨 버렸다. 하여 그들은 바울 일행을 붙잡아 당국에 고발했고 당국은 바울을 구금했다. 한데 지진이 일어났고 바울은 탈옥했다. 그리고 감옥을 지키던 간수와 그의 식구들에게 세례를 주었다. 그러자 시당국자들은 바울 일행에게 도시를 떠나달라고 부탁했다.
납득이 가지 않는 대목이 하나둘이 아니다. 우선 예언하는 여자종이 바울을 쫓아다니며 한 말이 바울의 입장에서 그리 틀린 말이 아닐 텐데 왜 그는 성이 나서 소리쳤을까? 또 소녀의 예언 능력이 사라지자 그것으로 수입이 끊긴 주인들이 바울 일행을 당국에 고소했다고 하는데, 그것이 구류에 처할 이유가 될까? 그리고 지진이 일어나 탈옥하게 되자 당국자들이 떠나달라고 부탁했다는 것도 비약이 있다. 신령스러움 때문이라면 더 있어 달라고 부탁해야 할 것이 아닌가.
말했듯이 〈사도행전〉의 바울 이야기가 후대에 만들어진 영웅설화를 발전시킨 것이니, 그 내용이 사실 그대로를 보여주고 있지 않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역사가의 관점에서 흐름을 끊는 부자연스러운 대목들은 역사적 해석의 실마리가 되곤 한다. 해서 우리는 바로 이런 점들을 주목하게 된다.
먼저 프뉴마 퓌쏘나 들린 소녀로 이윤을 취하는 주인이 ‘복수’로 표기되어 있다는 점에 주목해보자. 한 소녀로부터 이윤을 취하는 여러 명의 남자들, 그들은 누구일까. 소녀가 너무 용해서 고용자에게 많은 이윤을 주었을지라도 왜 그런 이가 여러 명일까.
하나의 가능성은 필리피의 아폴론 신전에서 일하는 신전 엘리트들이 그 소녀의 ‘주인들’로 표기된 것일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최근, 필리피에서 기원전 2세기 정도로 추산되는 아폴론 신의 두상이 발굴되었다. 이는 서기 1~2세기경 이 도시에 아폴론 신전이 있었다는 점을 시사한다. 성서는 예루살렘 성전의 대제사장을 종종 복수로 표기하고 있다. 그들은 전현직 대제사장을 가리키는 것일 수도 있고 고위급 제사장들일 수도 있다. 혹은 둘 다일지도 모른다. 마찬가지로 필리피의 델피 신전을 위해 일하는 대제사장도 하나가 아니라 여럿일 것이다. 해서 프뉴마 퓌쏘나 들린 소녀의 주인들이 그 성전의 대제사장들을 가리킨다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또 다른 가능성으로 그들은 점술조합의 지도층일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될 수 있다. 고대로마 사회에는 수많은 조합들이 있었다. 그것을 가리키는 라틴어가 ‘콜레기아’(collegia)이다. 정치적으로 방대한 영토가 몇몇 제국 아래 통합되고 바다를 통한 교류가 폭발적으로 증대하던 헬레니즘 이후의 지중해권 사회는 일종의 세계화가 물결치고 있었다. 해서 대도시들을 중심으로 인구 이동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이는 도시사회가 인종적으로나 계층적으로, 또 직능적으로 굉장히 복잡해졌다는 것을 뜻한다. 하여 전통적인 질서로 사회는 잘 통합될 수 없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도시들마다 생존을 위해 자생적으로 만들어진 이익집단을 가리키는 용어가 콜레기아다. 이스라엘계 디아스포라 공동체는 종족적이고 종교적으로 결속된 콜레기아의 하나다. 또 제조업 혹은 서비스업 콜레기아들도 있었다. 그 중에는 점술 콜레기아도 있었을 법하다.
한데 필리피에 점술조합이 과연 있었을까. 이 가설은 도시 전체에 민간 점술업이 대단히 성행하고 있었다는 것을 전제할 때 개연성이 생긴다. 점술이 만연하다는 것은 그 사회 구성원들의 현실이 매우 불안정했다는 것을 암시한다. 한데 그 시대 필리피는 바로 그런 곳이었다.
기원전 42년, 카이사르 암살을 주도한 브루투스와 카시우스가 이끄는 공화파(republicanism)와 그들을 섬멸하려는 안토니우스와 옥타비아누스가 이끄는 카이사르파(Caesarism)의 대병력이 필리피 도성 앞으로 속속 집결하였다. 양군 병사들은 무려 20만 명에 달했다. 당대에 가장 잘 훈련된 정예부대인 로마 군단병력들이다. 당시 필리피의 전 주민이 1만 명 정도였으니, 도성 앞에서 벌어지는 초대규모의 전투에 주민들이 겪었을 공포와 고초는 상상을 초월한다. 피투성이가 된 병사들이 미친 사자처럼 날뛰며 성 안팎을 뛰어다니며 닥치는 대로 살상을 자행했을 것이다. 이 전투에 대한 상세한 기술을 남긴 플루타르코스에 의하면 전사자만 무려 2만 명이 넘었다. 10월, 섭씨 20도를 넘나드는 기온에 늪지가 많은 곳이니 전염성 질병이 창궐했을 법하다. 전투 기간만 1개월 정도 계속되었다고 하니 그 전후로 몇 달 동안 도성은 완전히 고립되어 있었겠다.
이후 도시 지배층의 강제적 교체가 있었다. 새로 지배층으로 편입된 이들 중에는 퇴역한 로마병사들이 다수 포함되었다. 평생 전쟁터에서 잔뼈가 굵은 이들이니, 그들은 보통의 사람들보다 훨씬 폭력적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한 세기가 흐르는 동안 도시의 지배층의 대대적인 교체가 수차례 일어났다. 그것은 로마제국 지배층간의 권력투쟁의 따른 결과였다. 그러니 필리피 사람들은 최상층에서 취하층까지 그들 자신의 선택과 무관하게 엄청난 재앙을 여러 번이나 맞닥뜨려야 했다. 바로 이런 일로 많은 사람들은 자신에게 닥칠 처절한 운명에서 보호받고자 점술에 의존하는 일이 만연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신령스런 점술가에 적합한 부류의 사람들은 어떤 이들일까. 일상에서 광기가 넘치는 사람들이 신령스러운 존재로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높았다. 평범한 사람들은 타인을 눈치 보며 말을 자제하지만, 그런 관계의 경계선을 무시하고 말하는 사람들이 신령스러운 자로 주목받곤 했다. 현대 정신의학적 용어로 표현하면 경계선 장애를 갖는 정신질환자일 수 있는 이들이 고대사회, 특히 필리피 같은 점술이 만연한 사회에서는 신령한 이로 주목받았을 것이라는 얘기다. 게다가 당대 사람들 사이에서 아폴론 신전의 퓌씨아가 유명한 점술가 전형으로 여겨졌으니, 퓌씨아처럼 복화술사 같이 말하는 여성들, 특히 소녀들이 민간 점술계에서도 신령한 이로 주목을 끌었을 것이다. 〈사도행전〉 16,16의 소녀가 바로 그런 이였다.
이 두 가설 중 어느 것을 택해도 〈사도행전〉 본문에서 납득되기 어려웠던 요소들이 잘 해명된다. 그 소녀의 신령스런 능력을 무력화시킨 바울은 강제구금될 만한 충분한 짓을 저질렀다. 꽤나 힘 있는 리디아 여사도 힘쓸 수 없을 만큼 도시 지배층과 전 주민의 역린을 거스른 행위이기 때문이다. 지진 얘기는 영웅전의 상투적 묘사이니 그 이야기는 역사적 해석에서는 주의를 기울일 필요는 없어 보인다.
한데 바울이 소녀의 신통력을 무력화시켰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소녀가 따라다니면서 자신의 말을 번번이 가로챘을 때 바울의 상태를 〈사도행전〉 본문은 ‘디아포네쎄이스’(διαπονηθεις)라고 표현했다. 이것은 감정표현에 방점이 찍힌 분사형인데, ‘엄청 짜증났다’는 뉘앙스의 단어다. 그래서 바울은 소녀에게 ‘파르앙겔로’(Παραγγελλω)했다고 한다. 이것은 명령형인데, 위압적으로 소리쳐 명령하는 표현이다. 이런 말이 사용되는 흔한 사례는 성서에서 예수님이 악령에게 위압적으로 소리지르는 장면에서 볼 수 있다. 또 군대에서 장군이 병사들에게 위압적으로 명을 내릴 때도 이 단어가 사용될 법하다. 요컨대 짜증이 폭발한 바울이 소녀에게 위압적으로 소리쳤다는 얘기다. 정신적으로 불안정하여 말을 하기는 하되 입을 벌려 당당히 말하지도 못하고 복화술사처럼 보일 듯 말 듯 응얼대며 말하는 소녀에게 성인 남자가 불같이 화를 내며 위압적으로 소리쳤다면, 그 소녀는 어땠을까. 아마도 심한 공황증상을 나타내지 않았을까. 공포에 휩싸여 집안 깊은 구석으로 숨어들어가 이불을 뒤집어쓰고 아무 말도 못하게 되었을지 모른다. 만약 그랬다면 민중사역자인 바울은 그날 마주친 민중을, 더 악화시켜 아무것도 못하게 만들어버린 셈이 된다.
실패한 민중사역
바울의 소아시아 선교는 많은 이들이 그를 공공연히 적대하게 했다. 하여 바울은 그들로 인해 사역에 심각한 제지를 당했다. 또 생명이 위험할 정도로 극단적 공격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이 시기를 꼭 그렇게 볼 것은 아니다. 바울은 점차 자신이 그리스도의 사역자로 구체적으로 어떤 메시지를 누구에게 해야 하는지를 발견한 시기였고, 그것은 초기 그리스도파의 존재감 없던 변두리 사역자로 하여금 논란의 중심에 서게 했다. 적잖은 이들이 바울을 주목했고 그의 위상도 상당히 격상했다.
하지만 바울은 이런 상황을 결코 만족스럽게 생각하지 않았다. 해서 그곳을 떠나 생면부지의 땅으로 갔다. 아무런 연고도 없는 곳에서 기댈 곳이라곤 일도 없는 막막한 며칠이 지나자, 마치 복권이 터지듯 행운이 찾아왔다. 강력한, 그리고 믿을 만한 후원자가 생긴 것이다. 바울은 자신감이 넘쳤다. 이제야 비로소 그리스도로부터 부름받았다고 믿는 그 일을 본격적으로 벌일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하고 싶은 말도 많았고 그것으로, 바르나바가 안티오키아에서 거둔 성공처럼, 대단한 결실을 거두고 싶었다. 자신감이 넘치는 만큼 조바심도 컸다. 해서 조급함의 장벽에 스스로를 가두었다.
그러던 어느 날, 민중을 만났다. 민중사역자가 지난 한두 주 동안 만난 이들은 부유하고 품격 있고 겸손한 이들이었다. 그들에게 민중을, 그리스도가 전파하는 민중 해방 이야기를 전했을 때, 몇 사람들은 감동을 받았다. 또 몇 사람은 새로운 가르침을 진지하게 숙고했다. 그중에는 바울의 주장이 마뜩치 않은 이도 있었지만 그이들도 예의 바르게 반대 의견을 펴고 또 바울의 재반론을 경청하곤 했을 것이다.
한데 안식일에 강가의 그 기도처로 가다가 민중인 소녀를 만난 것이다. 소녀는 바울을 추앙하게 되었던 모양이다. 해서 그를 따라다니며 추앙의 말을 웅얼거렸다. 아마도 군중은 바울보다 그 소녀를 더 주목했을 것이다. 바울은 전파해야 할 말이 산더미처럼 많은데, 번번이 소녀로 인해 흐름이 깨졌다. 심지어 사람들의 이목이 그녀에게로 향했다. 하여 그는 점점 치밀어오르는 화를 참을 수 없게 되었다.
그 순간 민중사역자였던 바울의 가슴엔 민중이 아니라 민중사역이라는 대의가 지배했다. 그는 소녀의 내밀한 현실을 돌아보지 않았다. 또 바울이 보기엔 허무맹랑한 가짜 신앙에 빠져든 대중만 보였을 뿐, 그런 점술에 의지하게 되었던 대중의 막막한 불안을 조금도 이해해보려 하지 않았던 것 같다.
한데 그가 소녀에게 소리친 순간, 예상 못한 일이 벌어졌다. 사람들이 들고 일어나 바울을 고발했고 기소했다. 리디아 여사가 손을 쓴 덕인지 아님 진짜로 지진이 일어난 것인지 알 수 없다. 아무튼 그렇게 감옥에서 탈출한 바울은 서둘러 도시를 빠져나갔다. □
[후주]
(1) 아폴론 신전이 되기 이전에 델피 신전의 신은 퓌쏜(Πυθων)이라는 뱀신이었다. 한데 아폴론이 퓌쏜을 죽이고 이 신정을 장악한 뒤, 이 신전에서 아폴론을 대리하여 신탁을 사람들에게 전하는 여사제를 ‘퓌씨아’라고 불렀다. 퓌쏜의 여성형 단어인 ‘퓌쏘나’는 죽은 퓌쏜의 분신으로, 아폴론의 신탁을 전하는 여성적 존재를 가리킬 것이다. 그런 점에서 퓌씨아와 같은 의미의 단어일 수 있다. 아무튼 이 단어는 단순한 인간이 아니라 신적 존재로 간주된 인간이다.
(2) 남자 사제는 귀족이거나 중산층 출신이 많았다. 물론 그들은 지도자급 사제다. 반면 퓌씨아는 주로 중하위층 여성이다. 해서 그녀들은 성전에 예속된 하위사제로, 주로 예언의 역할을 수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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