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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우리'라는 신화의 폭력 - 한국의 인종주의와 그리스도교 (제2권)

['우리'라는 신화의 폭력 2 - 한국의 인종주의와 그리스도교]가 발간되었습니다. 1권을 펴낸 것이 지난 6월인데, 마지막 두 번째 책이 드디어 출간되었네요. 저자들 모두 숨넘어갈 듯 바쁜 중에도, 원고료 한푼도 못 받는 책에 글을 싣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했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자캐오 신부님의 글을 수록하지 못한 것입니다. 알다시피 그는 이 책의 저자로서 더 없이 필요한 사람입니다. 그 역시 적극적인 의지를 표명했고요. 상당부분 원고를 쓴 상태였지만, 책이 펴내야 하는 일정이 그의 바쁜 상황을 허락하지 못했지요. 저자 모두가 미안해 하는데, 그는 우리에게 미안해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글을 싣지 못함으로써, 이 책의 기획진은 할 일을 또 남겨둘 수 있었습니다. 그게 무엇일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남겨둔 것이 있다는 건 행운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아래에, 이 책의 머리글로 쓴 나의 글을 올립니다. 모든 저자들의 글과는 비할 수 없지만, 이곳에 공개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 이것이어서 할 수 없네요. 물론 저자들의 인터뷰나 영상물이 공개될 것이니 그때마다 공아할 예정입니다. 암튼 우리의 바람은 조금이라도 이 책을 읽는 분들이 생겼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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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글

인종주의 책을 기획할 때 한국사회는 이 주제에 대해 거의 준비가 되어 있지 못했다. 드물게 인종주의를 다루는 학술대회나 출판물이 있기는 했어도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뜬금없는 논점처럼 여겨졌다. 혹자는 지나치게 서양적 논점이 아니냐고 되묻기도 했다. 이 책의 저자로 참여하기로 했던 이들도 어떻게 생각을 모아갈지, 어떻게 자신의 관심과 연계시켜 구체화할지 고민이 컸다. 해서 온라인으로 수차례에 걸쳐 내부 세미나를 했다.
허덕이면서 하나씩 하나씩 험난한 고개를 겨우 넘어가고 있을 무렵, 느닷없이 계엄이 포고되었다. 그날 밤, 나는 심사가 복잡했다. 막연히 어디론가 숨어야 할 것 같았다. 그 밤 여의도로 가던 이웃들의 불안해하던 행렬을 보면서 나의 비겁함에 혼자 자책도 했다. 뉴스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세상 돌아가는 걸 알아내려 안간힘을 썼다. 외신도 검색해보려 떨리는 손으로 키워드를 찍어댔다. 귀는 티비 소리를 듣고, 눈은 모니터를 보고, 손은 키보드를 어지럽게 두둘겨 댔다. 생각은 오만가지 갈래로 뒤엉켜 있었다. 그러는 중에 불쑥 끼어든 상념 중 하나는 ‘이 책을 못내겠구나, 고생한 저자들에게 어떻게 말하지, 지금 미리 메일이라도 보낼까, 기획자들에게 먼저 상의해야 하나 ......’ 혼자 갈팡질팡 아무 생각이나 해댔다.
다행이었다. 계엄은 미수로 끝났다. 역사는 중단될 뻔했지만, 신은 우리에게 기회를 주었다. 하지만 이후 하루하루가 썩은 나무다리를 건너는 느낌으로 전 국민이 불안한 행보를 했다. 그렇게 여섯 달 남짓 지나서 제1권이 발간되었다. 어느새 쿠데타의 시간은 거의 끝난 듯하고, 이제 포스트쿠데타의 시간을 어떻게 맞이해야 할지를 고민하는 과제에 직면하던 시절이었다. 한데 그 와중에 우리들의 머리를 거세게 후려치는 가시방망이 하나가 시야에 뚜렷한 형체로 들어왔다. 이미 허빵친 계엄의 날 이전부터 거센 폭풍우가 예감되었지만 둔한 우리는 알아채지 못한 것이다. ‘파시즘’,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신이 우리에게 준 기회의 시간은 여전히 유효했다. 아직은 유럽이나 미국, 그밖의 세계 이곳저곳을 휩쓸고 있는 만큼의 강력한 기세는 아직 여기선 현실이 되지 않았다. 하여 지금은 포스트파시즘의 시간 또한 우리에게 주어진 숙제의 시간이다.
그런 일을 겪다 보니 어느새 ‘인종주의’는 더 이상 서양 얘기가 아닌 게 좀 더 명확해졌다. 많은 이들이 그렇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끊임없이 ‘적’을 발굴하려 안간힘을 쓰고, 그이들에게 우리 모두가 짊어져야 할 짐을 떠넘겨 왔다. 그러는 와중에 ‘적에 대한 증오와 폭력의 정치’를 전문으로 하는 정치꾼들과 그런 광기에 몸을 싣고 있는 이들이 도처에서 난폭한 말과 행동을 내지르고 있다. 이제 인종주의는 먼 얘기가 아니라 바로 우리의 얘기이고, 우리 주변에서 우리 모두를 위태롭게 하는 사태로 체감되고 있다.
1권이 나오고 거의 반년 가까이 지나서 2권이 발간되었다. 1권은 다분히 이론적이거나 큰 틀의 역사 혹은 사회 현상에 초점이 있었다면, 2권은 다분히 현장적이다. 물론 모든 원고가 그런 것은 아니다. 다만 비중이 1권보다 2권이 구체적인 인종주의적 현장에 대한 분석을 다루는 글들이 더 많다.
내용은 읽으면 될 일이고, 여기선 특별히 언급할 사담을 조금만 늘어놓으려 한다. 우선 저자로 참여하기로 했던 민김종훈 자캐오 성공회 신부는 글을 마무리하지 못했다. 해서 그의 완성된 글은 부득이 나중에야 독자와 만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지금까지 한국사회에서 벌어지는 숱한 인종문제에 그가 얽히지 않은 게 없을 정도로 많은 일을 해왔는데, 글을 마무리해야 할 즈음엔 더 큰 과제들이 휘몰아쳤다. 그는 우리에게 너무나 미안해 했는데, 저자들 모두는 그에게 미안했다. 그리고 독자들이 그 소중한 글을 이 책에선 볼 수 없게 되었기에 모두 마음이 아팠지만, 그를, 그의 건강을 기도했다. 또 하나 소식은, 가톨릭 인권활동가이자 난민연구자인 강슬기 선생은 만삭의 상태에서 글을 썼다. 그리고 글의 최종 교정원고를 넘기고 이틀 뒤에 출산을 했다. 그 절묘한 타이밍에 모두 환호성을 질렀지만, 더 감사한 일은 엄마와 아기 모두 건강하다는 점이다. 이 아기가 성장하는 모든 순간이 인종주의적 배제와 폭력이 없기를 우리 모두는 간절히 기도했다. 마지막으로, 미국에서 대학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조민아 선생은 미국발 계엄사태가 벌어질 것 같은 불길한 하루하루를 견뎌내며 매순간 호흡이 멈춰버릴 것 같은 압박감에 괴로워했다. 아마도 말을 하지 않았지만, 미국에서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이 두 책의 나머지 네 명의 저자들도 비슷한 심사로 하루하루를 견뎌내고 있을 것이다. 조민아 교수는 학교 온라인게시판에 마음이 닿는 이들은 함께 기도회를 갖자고 하는 안내장을 내걸었다. 파시즘의 폭력은 어려 모양으로 각자의 삶게 끼어들어 오고 있다. 우리 각자는, 그의 기도회에 참여하진 않겠지만, 각자 뭐든 하고 있다. 그리고 이 책의 발간도 ‘그 뭐든 하는 것’의 하나다.
1권에서도 했던 말을 여기서도 거의 그대로 덧붙인다. ‘기사연 책 시리즈’의 첫 번째와 두 번째 책으로 출간하도록 허락해준 신승민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 원장님과 최형묵 책임연구원께 감사드린다. 그리고 지나치게 진지한 책을 제작해준 도서출판 동연의 김영호 대표께 감사드린다. 그이들은 이 책 저자들의 무모한 도전에 공모한 무모한 용기의 장본인들이다. 또 동연의 박현주 편집장님을 포함한 모든 분께도 감사드린다. 이 책은, 더 괜찮은 것으로 만들어보려는 그이들의 한숨 없이는 결코 나올 수 없었다.
책을 펼쳐보는 모든 이들, 그들이 읽어주는 글자 하나하나, 그것을 이야기하는 말 하나하나를 통해서만 이 책은 세상에 존재하는 것이 된다. 이들 모두가 책의 저자들이 됨으로써 이것은 비로소 살아 있는 책이 된다. 저자가 된 모든 이들과 함께, 더 나은 세상을 꿈꾸면서 유쾌한 웃음을 나누게 되었으면 좋겠다.

2025.10.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