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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나이든 아이들’의 불장난

[한겨레신문] 2012.2.16의 '야!한국사회' 칼럼으로 게재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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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든 아이들의 불장난

 

 


119일 오후, 공부모임이 거의 끝날 무렵 대학생쯤으로 보이는 남녀 한 쌍이 교회를 방문했다. 호감을 갖고 찾아왔음을 밝힌 그들에게 한 사람이 열심히 설명을 했다. 그리고 이틀 뒤 한 극우파 인터넷신문에 교회에 관한 기사가 실렸다. 그들이 그날 찍은 사진들과 함께. 이 뜬금없는 기사의 제목에는 한명숙 권사가 다니던이라는 설명이 붙어 있다.

그 후 안철수재단(가칭) 설립에 관한 기자회견 다음날인 27, 또 다른 극우파 인터넷 신문에 앞의 기사의 상당부분을 통째로 실어 나른 기사가 실렸다. 이 기사의 제목은 “... 박영숙 이사장 이런 사람’?”이고, 부제는 남편 안병무 교수가 세운 ... ‘이상한 교회’”.

묘한 기사다. 내용은 수상한 교회라는 논조로 가득하다. 첫 번째 기사에는 수십 개의 댓글이 달려 있는데, 그 대부분은 가짜 교회에 대한 비난 일색이다. 하지만 기사의 과녁은 교회가 아니라 한명숙과 박영숙에 있다. 그 과녁에 꽂힌 화살에 기자들이 바른 독극물은 이단심판론이 아니라 이념색깔론이다. 그럼에도 기사의 대부분은 마치 근본주의적 신앙 잣대의 이단심판관처럼 추궁하는 내용으로 점철되어 있다.

아마도 이 인터넷 신문들은 기독교계 극우파와 밀접한 매체인 듯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색깔론을 펴는데, 신앙문제를 이렇게 길게 늘어놓을 리 있겠는가. 권사라는 직함은, 설사 내용이 교회와 관련된 것이라 하더라도, 제목에 들어가기엔 그다지 적합하지 않은 것 아닌가. 이런 호칭은 기독교계 매체에서나 자연스러운 것이다. 요컨대 형식은 종합매체인 듯하지만, 이런 표현들 하나하나에 그다지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도 되는 그런 매체라는 것이겠다.

두 번째 기사가 실린 뒤 한 주 내내 주변 사람들로부터 축하를 받았다. 그런 공짜 광고, 너무도 허술한 논리로 해주는 매체들이 있으니 이 무슨 횡재란 말인가. 어떤 이는 왜 자기 교회에는 이런 행운이 따르지 않는지 모르겠다며 가벼운 탄식을 내뱉었다.

그런데 한편, 강도 높은 교리적 생트집이어서 비위가 적잖이 상하지만 도무지 반론을 펼 생각이 들지 않는다. 기자는 기독교 신학에 대해서 거의 무지에 가까운, 단지 자기에게 익숙한 신앙언어 만으로 세상을 강도 높게 재단하는 데 익숙한 이다. 게다가 기사를 쓰면서 사실관계를 놓친 게 여러 개다. 쭈삣거리며 단 한 번 취재처를 방문하고, 얻어들은 내용만을 가지고 기사를 창작해낸것이 명백해 보인다.

오히려 씁쓸하다. 보수와 진보는 논쟁하면서 대화를 해야 하는데, 대화보다는 생트집에 익숙한 이들이 바로 우리에게 말을 걸어온 상대이니 말이다. 그들은 국가보안법의 폐지론이 이념의 문제로 환원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생각조차 못하고 있다. 또 이념의 문제로 34년간 복역하다 출소한 80대 노인에게 호의를 베푼 행위를 종북주의적 행동으로밖에 해석할 줄 모른다.

더욱이 그들 중 다수가 기독교도라는 점이 더욱 그렇다. 그들에게 기독교 신학과 신앙의 핵심은 을 만들어내고 그이에게 저주를 쏟아붓는 것 외에는 없어 보인다. 또한 현대의 다양한 신학적 해석이 교회의 전례들 속에 어떻게 함축되어 있으며, 그것을 둘러싼 토론과 논쟁이 어떻게 기독교를 성숙하게 할 수 있는지를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고 있다.

그들의 지나친 순진함은 자신들의 말과 행위가 얼마나 폭력적인지 모른다. 몸은 성인인데, 정신이 유아 수준이다. 근본주의적 기독교도들, 특히 함부로 말하는 걸 즐기는 이들에게 부탁한다. 제발 말하기 전에 생각해주길, 그 말로 인해 이웃이 적이 되고 적이 이웃이 된다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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