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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2015 인구센서스’의 종교조사, 그 불편한 진실

이 글은 [경향신문]의 토요일판 칼럼 코너인 '사유와 성찰'의 2017년 02월 11일에 게재된 글입니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702102059015&code=99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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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인구센서스의 종교조사, 그 불편한 진실

 


얼마 전 발표된 ‘2015 인구센서스종교통계 결과에 대해서 적지 않은 이들이 당혹해 했다. 애초에 일반적인 예측은, ‘가톨릭 신자 상당수 증가, 불교 소폭 증가 혹은 정체, 개신교 대폭 감소였다. ‘2005 인구센서스와 큰 틀에서 엇비슷하리라고 본 것이다. 단 개신교의 감소폭은 훨씬 더 깊어질 것으로 보았다.

한데 예측은 완전히 빗나갔다. 지난 두 번의 인구센서스(19952005)와 한국갤럽 등 신뢰할만한 조사들에서 거의 예외 없이 한국의 제1종교이던 불교가 파국적인 감소를 했고, 교세가 크게 위축될 것이라고 보았던 개신교는 상당한 성장을 이룩하여 한국 최대종교가 되었다는 것이다.

불교계가 충격에 휩싸였으리라는 것은 충분히 예측할 만하다. 반면 개신교는 뜻밖의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은 셈일 텐데 반응이 냉랭했다. 개신교 각 교단들의 교적자 통계에 따르면 2011년 이후 거의 모든 교단들에서 지속적으로 신자가 감소했고, 체감되는 현실도 엄혹했다. 해서 많은 개신교 교단 당국자들은 그 고무적인 결과(?)를 공공연히 부정하지는 않았지만 내심 믿겨하지도 않았다.

비판적인 개신교 신학자들과 목회사역자들의 당혹스러움은 더 컸다. 이명박박근혜 정권으로 대표되는 보수주의 정치가 사회적 탄핵의 대상이 되고 있는 마당에, 이 정권들의 가장 노골적인 동맹세력으로 낙인찍힌 개신교의 교세가 증가했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이미 참여정부 시절부터 하루가 멀다 하고 터져 나오는 교회의 추문들, 개신교 성직자들과 장로들의 막말과 비리, 성추행 사건들 등등, 하여 개신교의 사회적 신뢰도는 바닥으로 끝없이 추락하고 있지 않았는가. 그런데 왜?

한데 ‘2015 인구센서스결과를 면밀히 검토하면서 나는 이 믿겨지지 않는 수치들이 어쩌면 한국 종교와 사회에 대한 불편한 진실을 폭로하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이르게 되었다. 이번 인구센서스에서 자신이 개신교 신자라고 밝힌 이들의 수는 거의 1천만 명에 근접한다. 흥미롭게도 이 수치는 2014년의 한국갤럽의 조사나 2012년의 한국목회자협의회의 조사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났다.

한편 다른 조사들에 따르면 개신교 신자의 45~75%가 교회를 옮겨 다녔다고 한다. 그러니까 1천만 명의 신자들 중 거의 500만 명 이상이 교회간 수평이동을 경험한 이들이다. 그들 가운데는 수평이동을 거듭하는 중에 종교의 국경을 넘나들게도 된 이들이 적지 않다.

바로 이들이 불교와 가톨릭, 개신교, 그리고 종교 없음에 그때마다의 인구증감의 중요한 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2005 인구센서스에선 다른 종교에 속한다고 말했던 이들이 많았다면, ‘2015 인구센서스에서는 개신교에 속한다고 하는 이들이 더 많았다는 것이다.

물론 개신교의 사회적 신뢰도가 더 높아서는 아니다. 또 개신교 목사들의 설교나 그들이 대표하는 이념과 가치에 동조한 것도 당연히 아니다. 알다시피 개신교의 이데올로기적, 도덕적 위상은 다른 종교들에 비해 형편없이 낮다.

나는 여기서 2005년과 2015년의 시대성의 차이에 주목한다. 2005년 무렵엔 많은 사람들이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지고 더 나은 사회를 설계하고자 노력했다. 그리고 낡은 체제의 청산에 큰 관심을 기울였다. 그때 개신교 교회는 청산의 주요 대상이었다.

그런데 2015년 무렵의 대중은 미래에 대한 기획이나 이념에 대한 관심이 현저히 줄었다. 그보다는 신자유주의의 혹독한 자본의 착취 아래에서 몸과 마음에 병이 깊어진 이들로 들끓었다. 또 친밀함으로 엮인 공동체가 산산이 깨지고 있음을 체감하는 이들이 많았다. 보수주의 정권들은 그런 이들을 치유하는 데 관심이 없었고 공동체의 회복을 위해서 거의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았다. 그 속에서 대중은 횡포 부리는 자본의 노리개였을 뿐이다.

바로 이런 2015년의 대중, 그들 중 적지 않은 이들이 공적, 사적 모임으로 얽힌 공동체 프로그램이 많은 개신교 교회에 속하고자 했을지 모른다. 그들은, 비록 교회의 이데올로기적 포지션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속해 있음을 더 많이 확인할 수 있는 종교성이 필요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지배적 개신교회들은, 알다시피, ‘괜찮은공동체가 못된다. 또 이런 교회들이 제공하는 치유는 부작용이 크다. 배타주의적 편견이 어느 집단보다 많은 종교성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국가나 종교, 시민사회가 사람들이 겪고 있는 사회적 고통에 무관심한 가운데, 치유와 공동체성을 배타주의적 종교상품으로 만들어낸 개신교가 대중이 선호하는 첫 번째 종교로 부상한 것, 이것이 ‘2015 인구센서스가 증언하는 불편한 진실일 수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