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에세이

인터컬처럴한 시각으로 개신교의 뿌리를 읽다 [웹진 제3시대] (2019.05)에 기고한 글. 글에 몇 군데 오류가 있다는 지적을 받아서, 그 지적이 적절하여서 수정하였습니다. ----------------------------------------- 인터컬처럴한 시각으로 개신교의 뿌리를 읽다 토착문화에 적대적인 근본주의적 담론을 실어나른 도교적 문화혼합주의적 양식, 그 사이에서 억압된 체험의 종교성으로 읽어낸 성서 읽기 변찬린의 《성경의 원리, 상・중・하》와 《요한계시록 신해》(한국신학연구소) 1900년대 평안도의 개신교 성장사에서 가장 주목할 두 곳이 있다. 평양과 선천이다. 두 곳 다 미국 북장로회 선교국의 영향권 아래 있었고, 특히 미국 중북부 지역의, 아시아 선교에 유난히 힘을 실었던 기독교계 대학들에 많이 기대면서 놀라울 만큼 포교에 성.. 더보기
리메스를 확장하라 - 5.18사건에 대한 망언을 둘러싼 규제논쟁에 대하여 [공동선] 2019년 05+06월호에 실린 글 2015년 1월7일 오전 11시30분, 두 명의 남자가 회사에 난입해서 총기를 난사했다. 이들의 총탄에 사옥 안에서 열 명, 건물 밖에서 경찰관 2명이 사망했고, 10명이 부상당했다. 범인들은 이틀 후 경찰특공대와 교전 끝에 사살되었다. 세계를 경악케 했던 풍자전문 시사주간지 《샤를리 에브도》(Charlie Hebdo) 테러 사건이다. 2012년 이 잡지에 실린 한 컷의 풍자만화가 직접적 원인이었다. 이슬람의 절대 예언자 무함마드가 나체로 엎드려서 백인인 듯 보이는 카메라맨을 향해 “내 엉덩이 맘에 들어?”라고 말하는 장면. 당연히 이것은 전 세계 무슬림들에게 커다란 충격과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수많은 항의와 시위가 잇달았다. 그리고 표현의 자유, 그것이 어.. 더보기
그이가 살렸듯이 한백교회 2019년01월06일에 했던 하늘뜻나누기 원고를 수정 보완하여 신앙인아카데미가 발행하는 비정기간행물 [맘울림]의 2019년 상반기호에 게재하였음. 그이가 살렸듯이 ‘패싸움’을 아시는지? 여러 사람들이 서로 뒤엉켜 한판 싸움을 벌이는 것을 말하는 게 아니라, 바둑에서 쓰는 전문용어다. 서로 한 수만 두면 상대의 패(들)을 잡을 수 있게 되었을 때 그 패를 잡기 위해 벌이는 고도의 수 싸움을 말한다. 한쪽 편이 상대 패를 잡으면 다른 편은 한 수 건너뛰어서 그 수를 잡을 수 있다. 하여 그는 자신이 다른 곳에 패를 둘 때 상대가 패싸움을 해소할 수 없도록 해야 한다. 고수들 간의 패싸움은 그 바둑의 가장 최고의 장면이 되는 경우가 많다. 한 수 한 수 둘 때마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다 승부가 결정되.. 더보기
악마의 유혹 2 - 타인을 배려하지 않는 효율성의 체제에의 매혹에 대하여 악마는 다시 아주 높은 산으로 예수를 데리고 가서 세상의 모든 나라와 그 화려하 모습을 보여 주며 “당신이 내 앞에 절하면 이 모든 것을 당신에게 주겠소” 하고 말하였다. ―〈마태복음〉 4,8~9 급한 일이 있어 택시를 탔다. 시청 앞을 지나는데, 별나게 많은 교통경찰들이 도로에 짝 깔려 있었고, 경찰 오토바이 십여 대가 도열해 있는 것이 보였다. 택시 기사는 ‘귀빈’이 곧 지날 것임을 짐작했고, 교통통제 전에 그곳을 지나칠 수 있는 것을 다행으로 여기는 눈치가 역력했다. 물론 한 시가 급한 내 입장에선 훨씬 더한 안도의 숨을 내쉬어야 했다. 얘기는 자연 자기가 경험했던 교통통제에 관한 얘기로 옮겨갔다. 환영객으로 동원됐으면서도 그것에 대해 불평할 줄 몰랐던 학창 시절 얘기나, 공항에도 도착 안 한 대통.. 더보기
악마의 유혹 1 - 군사주의적 신앙에 관한 짜릿한 가학성의 기억에 대하여 ‘전쟁은 살아 계신 하나님께 속한 것이다’. 한 기독교계 신문에 실린 기사 제목이다.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린가? 반전, 평화 사상은 기독교 신앙의 근간이 아니던가? 군 계통의 신문이라면 모르겠지만, 기독교계 신문에서 어떻게 이런 유의 기사 제목이 올라올 수 있을까? 그래도 전쟁을 미화하는 기사를 쓰기야 하겠나 싶었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제목엔 물음표가 붙어 있지 않았다. 어법상 전쟁 옹호 입장임이 분명하다. 필경, 전쟁‘도’ 하느님의 섭리에 속한다는 주장인 듯하다. ‘별 정신 나간 놈 다 있군’ 하는 꼬인 심사로, 기사를 읽기 시작했다. 제목 바로 위에 “양심적 병역 거부에 대한 성경적 견해”라는 조금 작은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옳거니, 이 엉뚱한 제목의 정체는 ‘여호와의 증인’에 대한 비판적 견해였.. 더보기
아버지의 이름으로? - 예수가 왔다 한 포악한 왕이 있었다. 그는 자신이 지고의 절대자라고 믿었고, 또 번번이 그것을 확인하고자 했다. 혹 누가 왕 자신이 생각하는 스스로의 품격을 조금이라도 손상시킨다면, 고의든 실수든 간에, 왕은 이 사람을 결코 용서하지 않았다. 점차 신하들은 ‘어떻게 하면 이 왕에게 지존무상다운 격식을 차릴 수 있을까’만을 궁리하게 된다. 그래서 날마다 열리는 어전회의 때마다 왕의 등장을 기리는 특별한 요식 절차가 벌어졌고, 점점 길고 복잡해져 갔다. 우선 왕의 등장 시에 불리는 수많은 칭송의 노래들이 있었다. 그 중에는 이런 노랫말이 있다. “지고하신 왕, 백성의 단 한 분이신 아버지, 진정한 구원자시여, 어서 납시오소서. 세상의 모든 골짜기가 메워지리다.” 그런데 그의 포악성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 모반이 일어난다.. 더보기
누가 내 ‘대신’ - ‘대속 신앙’에 대한 하나의 상상 [공동선] 2019년 03+04월호에 실린 글-------------------------------- 누가 내 ‘대신’ ‘대속 신앙’에 대한 하나의 상상 나는 그를 내 곁에 두고 내가 복음을 위하여 갇혀 있는 동안에 그대를 대신해서 나에게 시중들게 하고 싶었으나,―〈빌레몬서〉 1,13 한 남자를 한 여자가 공항으로 마중 나온다. 4년 전에 그 도시를 떠났다가 잠시 들른 남자는 그 여자가 자기를 대신해서 묵을 호텔 예약을 할 줄 알았는데, 여자는 떠날 때까지 자기 집에 머물라고 한다. 그들은 어떤 사이일까?집에는 딸 둘과 어린 아들 하나, 그리고 동거 중인 남자가 살고 있다. 그리고 4년 만에 돌아온 남자는 그 여자의 남편이다. 4년 전에 그 남자와 여자는 별거를 시작했고, 4년 후 남자는 이혼 절차를 .. 더보기
3·1운동의 기억과 극우의 실패 [창비주간논평] 2019.03.07에 실린 글http://magazine.changbi.com/190306-2/?cat=2466-------------------------------- 3·1운동의 기억과 극우의 실패 탑골공원 뒷길 까페에 앉아 창밖을 몇시간째 바라본다. 태극기를 든 긴 행렬이 지나가고, 그 방향과 같거나 다르게 움직이는 행인들이 태극기를 손에 쥐고 수없이 오간다. 낯설다. ‘태극기집회’에서 흔히 보았던 이들과는 다른 풍모의 사람들이 적잖다. 내가 모르는 사이에 세상이 달라졌나? 당혹감이 머릿속을 스쳤다. 서둘러 까페를 나와 그 대열에 다가가보았다. 이상하다. 과장된 비장함도, ‘증오’를 부추기는 구호도, 시끄럽게 내지르는 고함도 없다. 조곤조곤 정담을 나누며 걷는다. 그들에게 물을 것도.. 더보기
서론, 역사로서의 십계명 [가장 많이 알고 있음에도 가장 숙고되지 못한 ‘십계’에 대한 인문학적 고찰](글항아리, 2018.2)의 서론.-------------------------------- 서론, 역사로서의 십계명 모세가 먼저 (…) 말을 거니, (…) 모든 이스라엘 자손이 그에게로 가까이 갔다. 모세는, 주님께서 시내 산에서 자기에게 말씀하신 모든 것을 그들에게 명하였다. ―〈출애굽기〉 34,31b~32 출애굽 이야기, 법 수령 설화와 만나다 먼저 이주하여 성공적으로 정착한 요셉 덕택에 이집트로 이주한 야곱의 식구들은 요셉과 그의 가족을 포함해서 70명이었다.(〈출애굽기〉 46,27) 한데 요셉의 형인 레위의 증손자 모세가 이스라엘을 이끌고 출애굽할 때는 성인 남자만 60만 명에 이르게 되었다고 한다.(〈출애굽기〉 12,.. 더보기
‘그런 회심’의 역사, 그 만들어진 기억에 대하여 '창비'에서 3.1운동에 대한 기획서에 필자로 참여하게 되면서 이것저것 자료를 찾는 중에 길선주에 주목하게 되었다. 그가 3.1운동이 가장 활발히 벌어졌고 가장 적극적으로 참여한 평안도 개신교를 대표하는 인물이었고, 1920년대 이후에는 그와는 정반대의 길에서 활약한 이라는 극적인 반전에 관심이 끌렸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국개신교는 3.운동을 정점으로 해서 철저한 비참여의 종교가 되었고, 해방 이후에는 극우반공주의의 아성이자 독재정권의 열혈 지지자 역할을 했다. 해서 오늘날의 한국개신교 반공보수주의의 역사를 길선주를 상징적 중심으로 하는 3.1절의 기억의 정치로 살피면 되겠다는 심사였다. 그 논문은 한국사회사학회와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수립 100주년기념사업추진위원회가 공동주최한 심포지엄 에서 발..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