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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오늘의 임마누엘을 찾아서

[공동선] 2022년 11+12월호에 게재된 글.

2012년부터 만 10년간 거의 빠짐없이 매호마다 글을 게재했는데, 이 글로 [공동선]과의 쓸쓰기 인연을 마무리하기로 했다. 이제 글쓰기를 가능한 한 자제하려 했기 때문이다. 매후 글을 쓴다는 게 쉽지 않아서 힘들기도 했지만, 그 동안 행복했다. 더 멋진 잡지로 계속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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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임마누엘을 찾아서

 

 

 

주님께서 친히 다윗 왕실에 한 징조를 주실 것입니다.

보십시오,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며, 그가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할 것입니다.

―〈이사야서7,14

 

알마는 누구인가

 

그리스도인 중 이 구절을 모르는 이가 있을까. 필시 마태복음1,23 “보아라, 동정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니,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할 것이다.”, 이 구절이 위의 이사야서텍스트를 유명하게 만든 절대적 이유였을 것이다. 무려 7백 년이나 전에 예수의 탄생을 예고하는 문서로 해독한 것이다.

한데 이사야서7,14에서 처녀라고 번역된 히브리어는 알마(עלמה)인데, 이 단어는 처녀(virgin)라는 뜻도 포함하지만 좀더 넓게 젊은 여자(young woman)라는 함의를 갖는다. 창세기24,43이나 출애굽기2,8에서 보듯 말이다. 한데 기원전 2세기경 이집트에서 만들어진 제1성서의 헬라어 번역본인 ‘70인역성서(셉투아긴타)는 이 단어를 파르떼노스(παρθενος), 처녀로 번역하였다. 히브리성서가 아닌 헬라어번역본인 70인역성서만을 알고 있던 마태복음저자는 이 번역본을 토씨 하나 바꾸지 않고 그대로 옮긴 것이 1,23이다. 물론 70인역성서 저자들이 두 세기 이후의 인물인 예수를 알 턱이 없었을 터이니, 그대로 옮겼다고 해도 마태복음처럼 70인역성서가 예수를 예고하는 구절로 이 텍스트를 번역한 것을 아니다. 그렇게 번역한 것은 전적으로 마태복음저자의 해석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사야서알마는 원래 누구를 가리키는 것이었을까, 또 그녀가 낳은 임마누엘이라는 아기는 누구를 지칭하는 것일까. 우리는 여기서 이 문제에 집중해보려 한다.

 

항아시리아연합군의 침공

 

기원전 740년 어간, 그때는 격변의 시대였다. 저 멀리 동쪽 티그리스강 상류 지역에서 발원한 강력한 제국 아시리아가 메소포타미아와 아르메니아 일대를 휩쓸었다. 이제 시리아-팔레스티나, 아나톨리아(오늘의 튀르키아 지역)와 이집트에도 전란의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이미 기원전 9세기 중반에도 시리아-팔레스티나의 소국들은 연합하여 아시리아 제국 군대와 맞서서 결전을 벌인 바 있었다. 그리고 그때 연합군은 아시리아를 패퇴시켰다. 한데 8세기 중반 더 강력해진 아시리아의 침공이 임박했다. 다시 연합전선이 결성되었다. 물론 이번에도 다마스쿠스를 중심으로 하는 아람국과 사마리아 중심의 이스라엘국이 연합군을 주도했다. 많은 소국들은 이 연합에 참여하여, 얼마 되지 않지만 나름 힘껏 군대를 파병하였다.

한데 연합군에 가담하지 않는 소국들도 있었다.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하는 유다국이 그랬다. 매우 유력한 정치세력이자 강력한 종교적 영향력을 갖고 있던 이사야 가문이 항아시리아연합(Anti-Assyrian Union)에 가담하는 것에 반대했다. 그러자 항아시리아연합군은 유다를 공격했다. 사방에서 쳐들어오는 적군을 막아낼 힘이 없는 유다는 모든 전력을 예루살렘에 결집시켜 도성을 사수하는 데 총력을 다했다. 지리한 공성전이 계속되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포위하고 있던 연합군도 초조해졌지만, 성안에 고립되어 있던 유다의 왕과 귀족들과 군인들과 백성들은 더욱 불안에 휩싸여 있었다. 이사야서7,6에 의하면 연합군은 막 즉위한 아하스 왕을 폐위시키고 다브엘의 아들(son of Tabeel)을 새 군주로 즉위시키고자 했다고 한다. 아마도 그는 선왕인 요담의 또 다른 아들일 것이다. 한데 고대아시리아의 문헌에서 다브엘이라는 이름이 아람국의 귀족가문으로 등장한다. 이는 유다국이 아람국과 혼인동맹을 맺은 흔적일 것이다. 하여 아람국이 연합군을 주도했으니, 아람계 왕자를 유다국 왕으로 옹립하는 일은 친아람정권의 등장을 의미할 것이다. 한데 그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유다국의 아하스 왕은 일종의 궁중모반 혹은 모의를 잘 극복했다. 그때 그는 자신의 아들을 속죄재물로 바치는 의례를 주관했던 것으로 보인다. 필시, 이런 극한적 조치로 그는 분열될 뻔 했던 유다국 백성의 총화단결을 이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얼마후 연합군은 포위를 풀고 철수했다. 아시리아군대가 어느새 코앞에 다가왔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아들을 제물로 바쳐 불사른 왕의 절박한 신실함을 신께서 받아주셨다고 믿게 되었다.

이번엔 연합군이 아시리아군에게 대패했다. 아시리아는 항복하지 않는 나라들에 대해서는 처절한 응징을 가했다. 아람국과 이스라엘국은 회복할 수 없는 파멸을 겪어야 했다. 또 연합군에 가담한 수많은 나라들도 역사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유다는 처음으로 번영기를 맞았다. 아하스에서 히스기야, 므낫세, (아몬), 요시야에 이르는 4명의 군주들의 시대는 유다국이 발전된 국가로서 발듣음하던 시기였다.(1)

 

알마가 낳을 아들, 임마누엘

 

항아시리아연합군에게 전 국토가 유린되고 오직 하나 남은 도성 예루살렘이 고독하게 국가의 명운을 지켜내고 있을 때 이사야 예언자가 절체절명의 위기에 놓인 아하스와 신하들에게 신탁을 내렸다. “주께서 다윗 왕실에 한 징조를 주실 것이오. ‘보시오, 알마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오, 주께서는 그이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하실 것이오.’” 문맥상 절망에 빠진 이들에게 주는 어떤 희망의 메시지인 듯하다.

여기서 키워드는 임마누엘(עמנואל)이다. 우리에겐 너무나 익숙하지만 성서 전체에서 이사야서에만 단 두 번, 그리고 이사야서를 그대로 베낀 마태복음까지 포함하면 총 세 번 나오는 희소한 단어다. 아무튼 하느님이 우리와 함께 한다는 뜻이다. 아들을 제물로 바친 왕에게 새 아들을 주면서 그것이 신이 함께 한다는 희망의 징조이니 잘 버텨내라는 의미의 신탁인 셈이다.

근데 그 아들을 낳은 이가 알마라고 한다. 이는 왕의 부인들 중 (가장 혹은 더) 젊은 여성을 가리키는 말일 것이다. 그녀는 필시 항아시리아연합에 반대하는 집안의 여성일 것이다. 어쩌면 이사야 가문의 여자로 어린 나이에 왕녀가 된 이일 수도 있다.

그러니까 항아시리아연합에 의해 휘둘려 국가가 존망의 위기에 놓여 있을 때, 아들까지 제물로 바치면서까지 겨우겨우 나라를 지켜내고 있던 즈음, 이사야는 왕과 귀족들에게 굴하지 말고 버텨낼 것을 권고하면서 신의 신탁을 말했다. 어린/젊은 여자가 잉태할 터인데, 그이의 탄생은 신이 이 나라를 지켜준다는 표징이라고......

그가 누구인지 또 그녀가 누구인지 우리는 모른다. 하지만 그 신탁을 듣고 있는 이들은 짐작하였을 것이다. 특정할 수는 없지만 필시 그와 그녀는 항아시리아연합에 반대하는 세력에 연계된 이들일 것이다.

 

요시야 왕의 서기관들의 재해석

 

그런데 이 예언자의 신탁을 수집해서 문서를 만든 이들은 그로부터 한 세기 정도 지난 요시야 왕정 서기관들이었다. 그 이후 수세기에 걸쳐 전승되면서 증보된 것이 우리가 읽고 있는 이사야서. 그러니까 이 문서의 초판은 요시야 왕실의 서기관들에 의해 편찬되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문서를 편찬한 이들은 이 구절의 알마를 얘기하면서 어떤 상상을 했을까? 말할 것도 없이 그들의 주군 요시야 왕을 떠올렸을 것이다. 마태복음저자가 이 구절에서 예수를 임마누엘과 동일시한 것처럼 말이다. 이사야가 신탁을 외치던 아하스 왕의 시대에는 태어나지도 않았지만, 요시야 왕의 서기관들은 요시야 왕이 바로 유다국의 구원을 약속하는 신의 징표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겠다. 물론 요시야에게는 그렇게 해석할 소지가 충분하다. 그것을 위해서는 조금 시간을 앞으로 돌려서 요시야가 왕위를 승계하던 때로 돌아가 볼 필요가 있겠다.

아하스 왕은 멸망의 위기를 헤쳐나갔을 뿐 아니라 약소국 유다국의 번영의 기틀을 마련한 인물이다. 그의 시대에 유다국은 비로소 국가다운 국가로 발돋음하게 되었다. 그것은 귀족층이 등장하고 수많은 소농들이 왕과 귀족들의 예속농이 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즉 유다국이 국가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사회는 양극화가 심화되었던 것이다.

그를 승계한 이는 그의 아들 히스기야다. 한데 히스기야는 부친의 자산을 물려받았지만 부친과는 달리 소농의 몰락을 억제하는 정책을 편다. 그것은 분배정책을 통해 왕실의 경쟁세력으로 부상하는 귀족의 세력화를 억제하는 것이기도 했다.

하지만 히스가야의 꿈은 아시라아국의 침공으로 산산이 부서졌다. 그는 말년에 왕궁의 한 폐쇄공간에 유폐된 채 쓸쓸한 최후를 맞아야 했다. 그리고 그를 승계한 이는 그의 아들 므낫세였다. 12살에 왕이 되어 무려 55년간 군주였던 이다. 한데 그는 반개혁-귀족당파의 지지를 한 몸에 받던 인물이었다.

그렇게 기나긴 반개혁적 시대의 종말은 그가 죽던 때 갑자기 닥쳤다. 그의 아들 아몬이 왕위를 승계하였는데, 그는 불과 2년이 못되어 궁중 변란으로 살해당한다. 아마도 이 시기에는 궁중뿐 아니라 전국 곳곳에서 무수한 변란이 벌어진 듯하다. 므낫세 치하에서 지배세력인 귀족당파들도 분파들로 나뉘어 세력다툼을 벌였던 것 같다. 귀족들에 의해 잔혹하게 착취당하던 농민들은 오늘의 ‘N포 대중처럼 자포자기의 나락으로 추락하고 있었는데 그들 사이에서 일단의 집단들이 이것이 국가인가를 외치면서(사무엘상8), 착취하는 신이 아닌 땅을 나누어주는 신에 관한 기억들(여호수아기13~19)을 서로 되새기며 데몬스트레이션을 일으켰던 듯하다. 열왕기는 이들을 가리켜 암하아레츠(עם הארץ)라고 쓰고 있다. 직역하면 땅의 사람들인데, 열왕기에서 이들은 데몬스트레이션에 참여하는 정치화된 농민세력을 가리킨다.

그런데 아몬이 죽었을 때 이들 암하아레츠들이 왕을 살해한 저 변란의 주역들을 처형하고 새 왕을 추대한다. 8살짜리 왕자인 요시야가 바로 그다. 그는 보스갓 출신의 아다야의 딸 여디다의 아들이다. 보스갓은 유다국의 거의 유일한 농촌지역에 위치한 성읍이니 어쩌면 그이는 암하아레츠를 이끄는 가문 출신의 왕비인지 모르겠다. 남편 아몬이 젊어서 죽었으니 그의 부인 여디다도 당연히 젊었겠다. 이때 암하아레츠들은 백년 전의 이사야의 신탁을 떠올리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그들은 이런 구호를 외쳤을 것이다. ‘알마가 낳은 아들이 우리를 구원할 신의 징표다라고.

이렇게 추대된 요시야에게는 이사야의 저 신탁이 붙어 다녔을 것이다. 해서 몇십 년 후 그의 서기관들이 이사야의 신탁집을 만들 때 암하아레츠들이 왕을 향해 외쳤던 그들의 꿈이 담긴 이 구절을 신탁집에 새겨 넣었던 것이 아닐까.

요시야 왕의 개혁세력들인 암하아레츠와 서기관들은 요시야 왕이 대중의 꿈을 저버리지 않고, 대중에게 밥을, 땅을, 권리를, 신을 선사하는 정치를 펴기를 바랐다. 하여 그런 신학의 기반을 둔 개혁의 밑그림을 그려서 왕에게 제안했을 것이다. 그렇게 하여 요시야 정권은 단지 정권을 교체한 것만이 아니라, 정치를, 사회를 교체하고자 했다.

 

임마누엘의 신탁을 재해석해야 하는 시대

 

2018년 전국을 가득 채웠던 촛불의 꿈은 한 정권을 탄핵했고 새 정권을 출현시켰다. 하지만 그 정권은 거의 아무런 개혁도 실현시키지 못한 채 사라졌다. 그리고 다시 새롭게 출현한 정권은 시대를 역진하는 정치를 시작하고 있다. 그 정권은 인간에게, 아니 모든 존재에게 무례하고 폭압적이기도 하다. 또 그 정권은 사회를 또 다시 심각한 절망에 빠지게 할 만큼 위기로 몰아가고 있다.

다시 임마누엘의 신탁을 재해석하지 않으면 안 되는 절박한 시간이 도래했다. 절망에서 벗어날 위로가 필요하고, 그것을 확신할 징표가 필요하다.

 

[주후]

(1) 므낫세의 아들이자 요시야의 부친인 아몬은 즉위한 직후 궁중모반으로 살해되었으므로, 유다국 번영기를 주도한 군주 목록에서 제외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