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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한국의 ‘작은 독재자들’ - 정치종교와 문화종교 개념으로 살펴보는 퇴행적 대중의 출현 [우리 안의 파시즘 2.0](휴머니스트 2022)에 수록된 글 ---------------------------------------------------------------------- 08. 한국의 ‘작은 독재자들’ 정치종교와 문화종교 개념으로 살펴보는 퇴행적 대중의 출현 권력도 없고 자원도 없는 자들, 사회적으로 멸시의 대상이 되어야 했던 자들, 그런 이들이 다수인 대중이 왜 또 다른 누군가를 혐오하는 방식으로 주체화되고 혐오를 부추기는 정치세력의 적극적인 지지자가 되었을까. 대중은 그 과정에서 ‘작은 독재자들’로 군림했다. 모든 권력과 자원을 독점하고 그것을 위해 폭력을 아낌없이 발산시켰던 독재자를 선망하고 모방한 탓일 수도 있다. 그런데 꼭 그렇게 볼 것만은 아니다. 독재자를 향한 선망과 모방.. 더보기
アンタクト時代の韓国プロテスタント教会 감사하게도 일본그리스도교계 잡지인 [キリスト教文化] 20(2022)에 나의 글이 번역게재되었다. 우리신학연구소가 발행하는 [가톨릭평론]에 지난 2021~2022년에 6회에 걸쳐 연재된 '언택트 시대 한국개신교 1~6' 중 본론에 해당하는 2~5를 일본어로 옮긴 것이다. 번역자는 일본의 신학자인 가야마 히로토(香山 洋人) 선생이다. 릿교대학 출신이고, 한국 성공회대학교에서 민중신학으로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은 분이다. 그이는 이미 나의 책 [시민K, 교회를 나가다] (市民K、教会を出る: 韓国プロテスタントの成功と失敗、その欲望の社会学)와 내가 기획자이자 저자로 참여한 [바이러스에 걸린 교회](ウイルスにかかった教会)를 번역한 바 있고, [東北アジアにおいて聖公会であること]와 [聖公会神学 アジアからの再検討]를 저술한.. 더보기
민중, 처음이 되다 : 민중신학, 시작에 관한 하나의 내설 원고를 넘긴 지 꽤 오래 되었는데 이제야 발간되었다. 들춰보니 늦은 이유의 하나는 알 만하다. 섬세한 편집의 손길이 돋보였다. 제작비도 꽤 들었겠다. 거의 비영리사업에 가까운 잡지에 이 만큼의 정성과 제작비를 쏟아붇다니 놀랍다. 경기민예총이 발간하는 '다다'라는 연간지다. 편집장인 김종길 선생이 청탁을 했다. 뛰어난 미술비평가로 알고 있었기에 그가 기획책임자인 잡지도 신뢰가 갔다. 물론 기꺼이 참여하기로 했다. 특집의 글 한 편을 청탁받은 것인데, 주제가 '처음'이라고 한다. 신선했다. 역시 그의 명성은 허명이 아니다. 게다가 민중신학도 그 '처음' 마당에 한 자리를 준다니 감사했다. 내 블로그에 글을 올리겠지만 시기는 좀 지나서, 이 잡지 4호에 대한 기억이 희미해질 때로 미룰 예정이다. 4호 특집에 .. 더보기
한국전쟁과 ‘한경직의 종교’, 그 적폐의 기원 [녹색평론] (2020 여름)에 게재된 글 ---------------------------------------- 한국전쟁과 ‘한경직의 종교’, 그 적폐의 기원 긴급전문 뉴욕시간으로 1950년 6월26일, 국제선교협의회(International Missionary Council, IMC)와 국제문제교회위원회(The Commission of the Churches on International Affairs, CCIA) 사무실로 두 줄짜리 급전이 당도했다. 북한이 대규모 침공을 감행했고 미국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긴박한 내용이다. 발신자는 한국기독교연합회다. 당시 이 기구의 총무는 남궁혁 목사였으니 이 전보는 그의 책임 아래 작성되어 발신되었겠다. 하지만 고령(69세)인 탓에 그는 피난길에 오르지 못했고 .. 더보기
권력이 잔인해질 때 [맘울림] 2022년 10월호에 실린 글. 통권59를 내기까지 거의 빠짐없이 글을 기고했다. 그리고 이 글을 마지막으로 [맘울림]과의 글쓰기 인연을 마무리하려 한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연속간행물을 내온 신앙인아카데미 운영진에 경의를 표한다. 비록 내 글을 연속으로 기고하는 건 이번으로 끝내게 되었지만, 신앙인아카데미가 언제나처럼 빛나는 단체로 살아있기를 바란다. 이 모임에서 만만 아름다운 사람들은 내게 행복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 권력이 잔인해질 때 피투성이 남자는 쇠사슬이 묶인 채 맨발로 예루살렘 거리를 이리저리 난폭하게 끌려다녔다. 살기등등한 병사들이 도열한 광장에 이르자 또 다시 고문이 시작되었다. 상처투성이인 몸둥이에 잔인한 채찍질이 이어졌다. .. 더보기
오늘의 임마누엘을 찾아서 [공동선] 2022년 11+12월호에 게재된 글. 2012년부터 만 10년간 거의 빠짐없이 매호마다 글을 게재했는데, 이 글로 [공동선]과의 쓸쓰기 인연을 마무리하기로 했다. 이제 글쓰기를 가능한 한 자제하려 했기 때문이다. 매후 글을 쓴다는 게 쉽지 않아서 힘들기도 했지만, 그 동안 행복했다. 더 멋진 잡지로 계속되기를 기대한다. ----------------------------------------- 오늘의 임마누엘을 찾아서 주님께서 친히 다윗 왕실에 한 징조를 주실 것입니다. 보십시오,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며, 그가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할 것입니다. ―〈이사야서〉 7,14 ‘알마’는 누구인가 그리스도인 중 이 구절을 모르는 이가 있을까. 필시 〈마태복음〉 1,23 “보아라, 동.. 더보기
언택트 시대 한국개신교(6) - 언택트 시대 계급적 경계짓기, 성공의 위기 [가톨릭평론] (2022.가을호)에 실린 글. '언택트시대 한국개신교'라는 주제로 연재된 마지막 글. ----------------------- 언택트 시대 계급적 경계짓기, 성공의 위기 2021년 봄호부터 시작된 ‘언택트 시대 한국개신교’는 이번 글을 끝으로 마무리될 예정이다. 애초에는 4회로 기획된 것이었다. 하지만 중요한 것들을 언급하지도 못한 채 마감하기가 못내 아쉬워하던 차에 편집진이 먼저 제안해 준 덕에 두 번을 더 쓰기로 했다. 물론 그것으로도 부족하다. 만일 조금 더 쓰겠다고 하면 관대한 편집진은 내게 더 기회를 주었을지도 모른다. 한데 연재 도중에 불쑥 찾아온 마음의 질환이 나의 정신의 집중력을 한껏 흩뜨려버렸다. 두 번이나 약속된 원고를 ‘펑크’내는 대형사고를 치고 말았다. 이제는 마음.. 더보기
단에서 브엘세바까지 - 평등한 포용주의에 관한 성서의 상상력 며칠 전, 아마도 개신교계의 밴댕이 아무개들이 나의 글에 대한 권리침해 신고를 또 했다. 몇번째인지 헤아리기도 귀찮을 정도다. [경향신문](2019 10 05)에 실렸던 컬럼 가 그 글이다. 오래된 것이고 실패한 칼럼이어서 굳이 페북이나 다른 sns 공간에 공개할 것까지는 못 되지만, 내용은 사법개혁에 대한 문재인 정부에 대한 낙관적 기대와 그것을 반대하는 이른바 '반조국연대'에 대한 비판적 문제제기, 특히 여기에 한몫하고 있던 한기총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는 글이다. 한데 문재인 정부는 사법개혁에 대한 우리의 기대를 배신했다. 집권 말기에 가서야 누더기 같은 사법개혁을 했을 뿐이다. 그뿐 아니라 집권 기간 내내 인권 친화적인 개혁입법을 거의 하지 않았고, 몇 안 되는 개혁도 실제적으로 진척시키지 않았으.. 더보기
떠돌이 예언자와 지역협력자 - 예수운동 활동가의 두 범주 [공동선] 2022 07+08에 실린 글 ------------------------------------ 떠돌이 예언자와 지역협력자 예수운동 활동가의 두 범주 “내 뒤를 따르라” + “버리고 따랐다” 예수는 어떤 이를 제자로 부를 때 ‘듀테 오피소 무’(Δευτε οπισω μοη) 혹은 ‘아콜류쎄이 모이’(Ακολουθει μοι)라고 말했다. 우리 말로 옮기면 모두 ‘나를 따르라’라는 뜻이다. 이 부름을 받은 이는 놀랍게도 자신의 것을 ‘버리고 따랐다’(아피에미 카이 아콜류쎄오, αφιημι και ακολουθεω)고 한다. 낯선 이가 와서 다짜고짜 자기를 따르라고 하자,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따랐다는 말은 좀처럼 이해하기 어렵다. 이에 대한 하나의 해답은 그들이 서로 알고 있는 사이였다는 것이다.. 더보기
예수의 제자들, 그들과 그녀들 [공동선] 2022. 03+04와 05+06에 나누어 실린 글 ------------------------------------------------------------------- 예수의 제자들, 그들과 그녀들 ‘장소’와 예수운동 대중활동 주요 거점(장소)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살펴보는 것으로도 예수운동이 어떻게 전개되었는지를, 그 특징을 이해하는 데 퍽 유용하다. 첫 번째 주요 거점은 세례자 요한과 함께 했던 베레아(Perea) 지방의 요르단강 인근 지역이었고, 요한이 당국에 체포된 이후 갈릴래아의 마을회당에서 활동했다. 하지만 마을회당에서 바리사이와 회복할 수 없는 갈등 상황에 직면하게 된 이후 예수 일행은 갈릴래아의 호숫가를 중심으로 활동한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예루살렘에서 활동을 벌이다 최후를..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