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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린디와 포르노의 상상력 [서울신문](2004 06 02) 칼럼 원고 ---------------------- 린디 일병과 포르노의 상상력 린디 잉글랜드 일병은 어느 날 갑자기 미국의 이라크 전쟁포로 학대의 상징이 되었다. 전 세계인들은 드디어 미국에 대한 분노를 터뜨릴 대상을 찾았다는 듯 린디를 향해 맘껏 저주하였고, 악을 응징하는 세계의 보안관으로 스스로를 기억하고 싶었던 미국의 자존심을 여지없이 무너뜨린 그녀에게 미국인들 또한 관대해야할 이유를 찾지 못한 듯이 보였다. 이제 그녀는 포로학대의 혐의를 받고 있는 다른 동료들과 함께 법의 심판대에 올랐다. 하지만 이미 린디 텍스트는 법의 문제는 아니다. 다각도에서 해명되어야할 문제를 안고 있는 것이다. 내가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린디의 저 엽기적인 사진들이 ‘포르노적 텍스트’로.. 더보기
단지 그가 그 자리에 있었을 뿐이다 이 글은 [서울신문](2004 06 25) 칼럼 원고입니다. ----------------------------------------- 단지 그가 그 자리에 있었을 뿐이다 지금 막 김선일 씨가 처형당했다는 급보를 들었다. “죽고 싶지 않다”고 처절한 절규를 내뱉던 그 청년은 끝내 처참한 시신이 되고야 말았다. 납치부터 처형까지 5일 간 체험했을 통제되지 않는 극도의 무력감과 공포감은 ‘단지 그때 거기 있었다는 이유’ 때문에 그에게 날아들었다. 근년에 아프간이나 이라크 등에서 스러진 수많은 주검도, 그리고 주검 같은 절망도 단지 거기에 있음으로 말미암은 것이었다. 미국 정부와 이라크 저항무장단체, 그리고 한국 정부 등이 각자의 이해관계 속에서 공모해낸 세계의 규칙이다. 단지 거기 있음으로 해서 ‘불행한 자.. 더보기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와 교회에는 예수가 있는가 [서울신문](2004 05 01) 칼럼 원고 ---------------------------------- 와 교회에는 ‘예수’가 있는가? ‘붕어빵에는 붕어가 없다’는 말에 의아해할 사람은 없다. 모양이 닮았지만, 양자는 서로 별개임을 사람들은 이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한데 ‘교회에는 예수가 없다’고 누가 말한다면 이 말은 매우 심각한 문제제기로 들린다. 예수와 교회는 서로 깊게 연루되었다,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상식이기 때문이다. 영화 가 한참 시사회를 할 무렵 한 영화 잡지가 내게 글을 청탁하면서, 최근의 ‘예수에 관한 역사적 연구’의 관점에서 이 영화의 예수를 다루어 달라는 요청을 했다. 그것은 이 예수에 관한 ‘사실적’ 묘사를 위해 치밀한 고증을 거쳤다는 주장의 타당성을 점검해보라는 얘기겠다.. 더보기
다시 ‘희생자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자 이 글은 [서울신문](2004 04 17) 칼럼 원고입니다. ----------------------------------------- 다시 ‘희생자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자 드디어 총선이 끝났다. 항상 그런 느낌이지만, 휘몰아치듯 지나간 선거 태풍은 퍽도 거세다. 방송은 저녁 6시를 카운트다운으로 시작하더니, 밤새도록 누가 당선됐고, 어느 당이 성공했고, 지방색은 어땠고, 계급적 성향이 어떻게 영향을 미쳤고, ‘탄풍’, ‘박풍’, ‘추풍’, ‘노풍’ 등등은 어땠는지를 분석한다. 아마 며칠이 지나도록 신문과 방송은 이 얘기를 끝도 없이 우려먹겠지. 물론 나도 예외는 아니다. 공적이든 사적이든 만남이 있는 곳곳에서 사람들과 그 얘기를 나눴고, 얼마간은 그렇게 하겠지. 선거 결과는, 대체로 주변 사람들 거.. 더보기
탄핵 그 역겨운 추억의 정치는 이미 우리를 오염시키고 있다 [서울신문](2004 03 18) 칼럼 원고. ---------------------------- 탄핵, 그 역겨운 추억의 정치는 이미 우리를 오염시키고 있다 은 잘 알려져 있다시피 이른바 화성 연쇄살인사건에 수사관으로 참여했던 한 전직 형사의 ‘추억’에 관한 영화다. 즉 화성연쇄살인사건이라는 사회적이고 역사적인 사건을 한 형사가 개인적 체험을 통해 기억해내는 것이다. 그런데 추억은 항상 정감이 넘친다. 거기에는 과거에는 있었을 법한 고통이 망각되어 있다. 즉 추억하는 자는 피해자와는 다른 시선에서 과거를 회상한다. 그것이 꼭 가해자의 시선이라고 할 수는 없으나, 가해자의 시선에서 본 후일담으로 나타날 가능성이 항상 있기 때문에 추억은 항상 불온성 시비에 휘말리게 된다. 그런데 내가 여기서 말하고 싶은 .. 더보기
고구려 연구 기금의 함정 이 글은 [서울신문](2004 02 19) 칼럼 원고입니다. ----------------------------------------- 고구려 연구 기금의 함정 고대 이스라엘사 연구는 한갓 ‘역사적 발명품’에 불과했다는 도발적인 주장을 담고 있는 휘틀럼의 《고대 이스라엘의 발견》은 결코 센세이셔널리즘의 산물이 아니다. 이 분야에서 가장 명성 있는 연구자의 한 사람인 저자는 고대 이스라엘의 형성에 관한 현대의 가장 대표적인 가설들이 동시대의 정치학과 어떻게 연루되었는지를 꼼꼼하게 분석하고 있다.구체적으로 현대의 국민국가 이스라엘의 시오니즘과 유럽 중심주의적 가치가 성서의 역사적 맥락을 추적하려는 역사가들의 심성 속에 어떻게 스며들어 있는지를 그는 세심하게 분석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심성이 반영된 연구는 결.. 더보기
이혼 유예제도보다는 성찰적인 헤어짐의 제도가 필요하다 이 글은 [서울신문](2004 01 14) 칼럼 원고입니다. ------------------------------------------ 이혼 유예제도보다는 성찰적인 헤어짐의 제도가 필요하다 지난해 12월 말, 2002년 한국 사회의 총 결혼 건수에 대한 이혼 건수의 비율이 47.4%이며, 이는 세계 3위 수준이라는 보건복지부가 관련된 한 보고서 내용이 신문에 보도되었다. 게다가 보고서는 조만간에 세계 최고의 ‘이혼 국가’가 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이 통계 수치는 매우 ‘심각한 것’임을 지적했다고 한다. 이 통계나 순위가 적절한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없지 않지만, 최근 이혼 비율의 급증을 강변하려는 취지라는 점을 감안해서 받아들인다 해도, 나로서는 이 ‘심각하다’는 표현은 좀처럼 공감하기가 어렵다. .. 더보기
내 영혼을 울린 한 마디 - 너는 안다, 말 하나에 ― 주검 하나 [한겨레신문]의 '내 영혼을 울리는 한 마디' 코너에 실린 것.2002년 초쯤으로 기억되는데 정확한 날짜는 기억나지 않음. -------------------------------------------- 너는 안다, 말 하나에 주검 하나 파울 첼란의 시 의 전 7연 중에 제6연이다. 시인 자신이 나치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숱하게 경험했던 것을 이렇게 표현하였다. 가스실로 가는 대열에 속했던 그가 노무자로 팔려가는 대열로 몰래 옮겨가자 나치 장교는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노무자의 대열에 속한 한 사람에게 죽음의 선고를 내린다. 말 한마디로. 일상의 일부인 말, 그래서 숨쉬기만큼이나 쉽게 던질 수 있는 말. 그 말이 얼마나 치명적인지를 깨달은 시인은 평생을 ‘말 하나에 주검 하나’를 낳은 폭력의 세계와 싸웠.. 더보기
‘예수는 없다’ 신드롬은 기독교의 닫힌 문을 열라는 대중의 요청이다 이 글은 [주간기독교] 2002.9(날짜는 미상)에 기고된 원고입니다. ------------------------------------------------ ‘예수는 없다’ 신드롬은 기독교의 닫힌 문을 열라는 대중의 요청이다 최근 한 학술토론 모임에서 나는 논문 발표자와 가벼운 언쟁을 벌인 적이 있다. 그와 나의 의견 차이는 오늘의 한국 기독교를 어떻게 평가해야 하느냐의 문제였다. 그는 더 나빠졌다고 했고, 나는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라고 주장했다. 외국에서 학위를 받고 귀국한 지 얼마 안 되는 연구자인 그는 오랜만에 실제로 접한 한국 기독교에 적지 아니 실망했던 모양이다. 어쩌면 지난 몇 년간 경험한 서양의 기독교에 비해 형편없이 초라한 한국 교회의 신학적․신앙적 천박함을 느끼는 순간, 유학을 떠나기.. 더보기
한기총 시청집회에 관하여(제목 미상) [진보정치] 2003년 초에 기고된 원고 제목도 시기도 확인이 안 됨. --------------------------------------- 한국교회는 심각한 선교의 위기감에 빠져 있다. 선교의 여러 지표 가운데 그간 유일하게 약진해온 수량적 확대가 감소 추세로 반전되고 있다. 아직 고속 성장의 꿈속을 헤매고 있는 교회는 매년 과도하게 예산을 증액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교회는 그것을 실행하는 데 번번이 실패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교회에 대한 신자들의 충성도 또한 약화되는 현상이 뚜렷하다. 주5일 근무제나 대중가요, 영화 등에 시비를 거는 교회의 과잉반응은 최근의 문화 현상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을 수 없는 교회 엘리트의 내적 위기감의 표현이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가 주축이 된 시청 집회는 그 의제의.. 더보기